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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한 줌 얻고자 창고를 부수나?
천헌옥 목사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의 일은 교계뉴스뿐 아니라 일반 언론에서도 다루어진 사건으로 교계에 큰 충격을 안긴 사건이었다. 그가 미국에서 이미 목사가 되어 남가주사랑의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던 중에 청빙을 받아 사랑의교회로 부임하였고 당시 노회는 정식 절차를 밟아 그를 영입하였으며 총신대에 편입한 것은 사실로 확인되었다. 다만 누구의 실수인지는 모르지만 대학원에 편입학한 것인지 아니면 편목으로 입학한 것인지가 불분명하여 목사가 된 이를 고법이 다시 목사 안수를 받지 않았다고 위임목사 된 것이 불법이므로 이를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물론 고법의 원심은 기각이었지만 대법에 항소한 이들의 청구를 받아들여 대법이 파기환송한 데 따른 재심 판결이었다.

사법부가 교회의 직분까지 관여하는 판결을 내린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사람들이 논박을 하였기에 필자는 생략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동안 정교분리라는 원칙이 그나마 지켜져 왔던 것이 이번에 깨져 버렸다는 안타까움이 많고 대법원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금할 길이 없지만 그보다 정말 쌀 한 줌을 얻고자 창고를 부수어 버린 이들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반성을 짚어 보려고 하는 것이다.

필자는 교인들이 교회가 해결할 수 없는 민사상의 문제들을 가지고 아니면 형사상의 문제로도 법정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이미 그리하고 있을뿐더러 몇몇 교단(고신을 포함하여)들도 가이드라인을 두고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세상법정도 하나님이 주신 일반은총으로 본다면 우리가 병원을 이용하듯 그리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고전 6:1-8절에서 교회를 두고 세상법정으로 달려가는 성도들과 그것을 방관한 교회를 엄히 꾸짖었다. 그것은 성도끼리의 어떤 문제였을 것이다. 형사상의 문제는 고소가 없더라도 사법부가 범죄자를 체포하고 정죄하는 일이 당연하게 행하여 졌겠지만 민사상의 문제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 고소하지 않으면 세상법정이 나서지 않는다고 보면(지금도 그러하지만 고린도 교회도 그랬을 것이다) 민사상의 문제로 세상법정에 나가는 일이라도 바울이 볼 때는 창피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6:5절에서는 “교회가 형제간의 일을 판단할 만한 지혜 있는 자가 이같이 하나도 없느냐”고 고린도교회를 책망한다. 아마 그렇게 책망한 바울의 근심은 그런 일로 인하여 세상이 교회를 사사건건 판단하려 들고 업신여기게 되면 복음을 가볍게 생각하는 일이 일어날까 염려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바울의 근심은 그래도 지금까지는 잘 지켜져 왔다. 차라리 속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양보하는 덕스러움이 교회 안에 있었고 말씀을 지켜 살자는 신앙이 그래왔을 것이라 본다. 그런데, 이번에 일어난 일은 그런 것이 아니다. 사건의 성격이 다른 것이다.

오정현 목사 한 사람을 죽이고자 이미 목사가 된 사람을 목사가 아니라고 하는 판결을 내려 달라는 소송을 냈다는 것이다. 고등법원이 기각을 했으면 그만 두어야 할 것을 대법원에 항소하였고 그리고 대법원은 교회의 직원을 세우는 문제는 교회의 일이기에 우리는 거기에 대해 송사를 가리지 않겠다며 기각을 했어야 하는데 파기 환송하여 오늘의 사태를 빚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교회가 스스로 대문을 부수어 버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이제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사건건 사회법정으로 달려 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교회의 직분자를 일일이 세상법정에 물어보고 세워야 하도록  교회의 대문을 스스로 부수어 버린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교회의 성직은 안수하여 세우는 것이고 그것은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공포하여 효력을 가지는 것인데, 불신자의 손에 넘겨주어 판단을 받는 일이 온당한 것이고 성경적인 일이며, 그 일을 성도라는 사람이 하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말이다.

이런 식으로 나가면 교인으로 위장한 이단이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얼마든지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침례교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교회들이 세례를 행하고 있다. 만약 세례는 무효라고 하는 소송을 제기한다면 어찌 할 것인가? 성경에는 침례인데 세례는 성경적이지 않으니 무효라고 판결해 달라는 소송도 가능할 것이다. 성경책의 세례라는 단어도 침례로 바꾸어야 한다는 소송을 낸다면 어찌 할 것인가? 세상법정에 의해 성경책도 바꾸고 예식도 바꾸고 직분자를 세우는 일도 판단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너무 비약된 말이라 할지 모르지만 세상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교회 돌아가는 것을 보면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자신 할 수 있겠는가?

고등법원의 판결문을 받아든 원고들은 환호하며 기뻐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이겼으니까 당연히 그랬을 것이다. “아버지여 우리가 이겼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기도했을까? 그 기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셨을까? 차라리 속는 것이 낫지 아니하냐? 그래서 도대체 너희들이 얻은 것이 무엇이냐? 2천 년 전 바울의 입을 빌어 말씀하신 하나님의 음성이 귀에 쟁쟁하다.

천헌옥  choug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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