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기념교회로 들어가는 문

[에베소에서 사도 요한을 만나다]   /천헌옥

누가는 확실히 바울의 주치의였고 바울과 동역자였으며, 바울의 행적속에 함께한 전도자였습니다. 그것은 사도행전이 바울행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바울을 주인공으로 썼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때 에베소에 왔고 3차 전도여행 때도 들렀습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은 사도행전에 별로 나타나지 않지만 에베소에서는 대단히 중요한 전도자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요한은 에베소교회를 거점으로 하여 바울이 1,2,3차 전도여행을 통해 세운 아시아 일곱 교회를 순방하며 목회를 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계시록에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곱 교회의 속속들이를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여러 기록들을 종합하여 보면 그는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을 충실히 이행하려 했으며, 밧모섬에 유배까지 갔지만 그의 생명이 남아 있는 동안 복음을 위한 열정이 식지 아니하였고 바울의 주치의로 활약했던 누가의 시신을 거두었던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를 사랑으로 실천한 사도였음이 틀림없습니다.

누가가 그리스에서 순교했다는 설에 좀 더 신빙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그가 사도행전을 바울의 마지막 순교까지로 기록하지 않고 바울이 감옥에서 풀려 잠깐 동안 사가에 머물면서 자유로운 몸으로 전도한 그 지점에서 기록을 멈추었다는 사실(행28:30-31)은 아마 그 기간 동안 바울의 심부름인지는 모르지만 마게도냐와 빌립보(이전에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누가가 상당 기간 머물며 목회했던)를 방문하는 중에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나 추리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바울의 3차 전도여행 때 로마로 동행했고 바울이 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누가의 시신을 사도 요한이 수습하여 에베소에 안장했다고 보여집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직접 불러 세운 12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지만 가장 총애 받는 제자였습니다. 세배대의 아들로 야고보 요한 두 형제가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요한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다른 제자들은 멀지감치 있었지만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수님 곁에 서 있다가 예수님의 유언을 들었고 그는 평생 그 유언을 실천하였다고 합니다.(요한복음 19:26-27)

요한은 마리아를 예루살렘에 있던 자기 집에 모시고 살다가, 바울의 전도 여행으로 말미암아 복음이 소아시아 지방에서 흥왕하게 되자, AD 60년대 중후반 경에 노구의 마리아를 모시고 에베소에 왔다고 합니다. AD 431년에 있었던 에베소 종교회의 회의록에 요한이 마리아를 위해 집을 한 채 지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으로 에베소에 도착합니다.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와 동행하였습니다.(행18:18-20) 바울이 떠난 뒤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가 남아 있었는데, 거기서 아볼로를 만나 교제를 하게 됩니다.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만 가르쳤습니다.(행 18:21-28) 

바울이 3차 전도여행으로 에베소에 도착하여 성령세례를 베풀고(행19:1-7) 복음을 전할 때 복음을 받은 마술사들이 책을 불사르며 기독교로 개종하자 위기의식을 느낀 아데미 조각상인들과 숭배자들이 소동을 일으켜 위기를 맞았으나(고전15:32) 서기장의 지혜로 위기를 모면한 뒤 마게도냐로 갔고,(행19:23-20:6)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고별 설교를 합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체포되어 로마로 가게 됩니다.

요한의 기념교회 안에 있는 세례장소, 물이 채워지면 저기서 세례를 베풀었다.

바울은 마게도냐로 갈 때 디모데에게 에베소에 머물며 목회를 하도록 맡겼습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딤전1:3) 그러나 바울이 마게도냐로 갈 때 디모데가 동행을 합니다.(행20:4) 그것이 배를 타기 전까지였는지는 모릅니다. 아마도 디모데에게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에 오라는 심부름으로 보내면서 너는 에베소에 남아 목회를 하라고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의 옥에 갇힌 후 세월이 흘러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알고(딤후4:6-8) 주변정리를 하면서 디모데에게 속히 오라고 말합니다.(딤후4:9) 그런 디모데는 주후 67년경에 바울이 순교하자 다시 에베소에 와서 목회를 하던 중 ‘5월 아데미 축제’ 때 축제에 모인 열광하는 군중들을 향하여 말씀을 선포하다가 군중이 던진 돌에 맞아 순교를 당합니다.

요한의 무덤이 기념교회 안에 있다.

디모데가 죽자 사도 요한이 이어서 에베소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도 도미티아누스 신전 앞을 지나다가 황제의 동상 앞에서 경배하기를 거부하므로 로마 군사들에게 연행되어 와서 다른 기독교인들과 같이 로마로 연행되어 가서 독배를 마셨으나 아무런 해를 받지 않아서 펄펄 끓는 기름 솥에 던져졌지만 기적적으로 죽음을 면했으며 나중에는 어쩔 수 없이 밧모섬으로 유배시켜 혹독한 채석장의 중노동을 맛보게 했다고 전해집니다. 요한은 밧모섬에서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를 기록합니다.

대체로 요한복음은 밧모섬으로 귀양을 가기 전인 주후 80-90년 경에 에베소교회를 목회하면서 기록하고 계시록은 밧모섬에서, 그리고 귀양 후에는 요한 1,2,3서를 기록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그리고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측근에 의해서 암살당한 후 요한은 밧모섬 유배에서 풀려나 에베소로 돌아와 제자들을 양육하다가 AD 100년경에 95세라는 나이에 주님 품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요한의 시신은 아야술룩 언덕 위에 묻힙니다. 현재 지명은 셀축으로 이즈미르 남서쪽 50Km 지점에 있습니다.  4세기에는 무덤이 있던 그 자리에 작은 요한 기념교회를 지었습니다.

그리고 그 작은 기념교회가 있던 자리에 6세기 들어 아야 소피아를 건축한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요한 기념교회를 건축했는데, 소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십자가 형태의 건물입니다. 안뜰, 현관, 본당, 부속 예배당, 세례장, 이렇게 다섯 부분으로 되어 있고, 본당 제단에는 특별히 복음서의 저자들을 상징하는 네 개의 기둥과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세 개의 기둥을 사용하였습니다. 교회 안에는 4세기경에 석조로 지은 작은 예배당과 요한의 무덤이 있습니다. 예전에 교회로 사용하였던 석조 건물 안에는 예수님, 마리아, 사도 요한의 초상이 그려져 있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 등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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