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서 목사(큰사랑교회 담임, 코닷연구위원)

지난 2년 동안 필자의 칼럼에 대해 비판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지금이 어느 땐데 철지난 공산주의 타령’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공산사상을 비판하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공산사상은 철지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계시록 13장에 등장하는 ‘바다와 땅에서 올라진 두 짐승’의 도구들 중 하나가 공산사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년간 40여 국가가 이 거짓 유토피아 사상에 미혹되어 1억 이상의 뼈아픈 희생을 치렀음에도 저주받은 인생들의 광기는 멈추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 미혹의 폭주는 계속될 것이다.

 

변신하는 막시즘

공산사상이 사라지지 않았다면 어떻게 존속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공산사상이 카멜레온처럼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경제’적 관점에서 계급혁명이론을 주장하며 역사예언을 했던 19세기의 마르크스 사상은 실패한 듯 보였지만, 20세기 들어 두 번의 변신을 꾀했다. 그 첫 변신이 프로이트의 ‘성’(性)과 ‘막시즘’을 접목해서 성정치, 성혁명이라는 선동질을 했던 ‘네오막시즘’(Neo-Marxism)이다. 네오막시즘은 서구 사회의 성적 타락에 큰 역할을 했다. 네오막시즘의 ‘성애화’(性愛化)라는 꼴을 먹고 자라난 세대가 바로 68혁명 세대다. 68세대는 서구의 구체제와 전통적인 가치를 거부하며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세대다.

이들 68세대가 1970년대 이후 학계, 정치, 경제, 문화예술계 등으로 진출하여 기득권층이 되면서 UN과 EU를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막시즘을 표출하길 원했는데, 그것이 ‘성’에서 ‘문화’(文化)로 확대된 ‘문화막시즘’(Cultural Marxism)으로 이것이 두 번째 변신이다. 이 세대가 오늘의 황폐한 영적 문화를 조장한 장본인들이다. 빌헬름 라이히, 루카치, 안토니오 그람시,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들,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등은 네오막시즘과 문화막시즘 그리고 미국의 신좌파 형성에 일조를 한 공산사상을 추종하는 일군의 학자들이다. 세계는 성(性)과 문화(文化)를 통한 사탄의 역사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대한민국도 지금 이들의 공세를 막기 위한 힘겨운 영적 전투를 하고 있다.

68세대가 만들어낸 문화막시즘의 도구들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보편적 도덕과 윤리의 가치체계를 해체하려는 흐름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젠더 이데올로기’와 ‘PC’(political correctness)다. 그 표면적 내용이 동성애, 급진페미니즘, 이슬람 난민문제 등이며, ‘언어’와 ‘법’의 힘을 간파한 저들은 ‘혐오’, ‘인권’, ‘차별’ 등을 내세우며 법제화에 힘씀으로써 법의 강제력을 동원해 새로운 형태의 전체주의 세상을 만들어왔다. 그 공세로 인해 서구와 전 세계는 무력하게 붕괴되고 말았다.

 

허망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

공산주의자들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평등’한 공산사회다. 그런데 실제 이 사상이 적용된 국가의 열매는 무엇일까? ‘하향 평등의 처참한 지옥’임에도 좌익은 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실패의 원인을 언제나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체제로 돌리며 그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을 저들의 목표로 삼았다. ‘어떻게 해야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을까?’ 저들은 자본주의체제를 떠받치는 기둥으로 ‘가족’과 ‘국가’와 ‘기독교’를 들고 있다. 그 기둥들만 무너진다면 자본주의체제는 필연적으로 붕괴될 것이라 믿으면서 말이다. ‘어떻게 해야 그 기둥들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그것은 자본주의체제의 중요 가치인 성경적인 결혼관, 가족관, 성정체성, 종교관 등을 와해시키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한 최적의 수단이 ‘성(性)’과 ‘물질’이며, 그것을 구체화한 무기가 ‘젠더 이데올로기’와 ‘젠더주류화’(GM)인 것이다. 저들은 이것들을 정착시킬 수만 있다면 자신들의 세상은 반드시 도래할 것으로 믿는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보자. 이 시대가 ‘문화막시즘 시대’라 한다면 그 꼴에 의해 양육되고 있는 미래 세대들은 어떤 세상을 만들까? 흔히 1980년 이후 출생한 40세 이하의 젊은 세대들을 ‘밀레니얼 세대’라 부른다. 20-30년 후 이 밀레니얼 세대가 기득권층으로 자리 잡을 때쯤 드러날 ‘밀레니얼 막시즘’(Millennials Marxism)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최악일 것이다. 앞선 두 세대의 막시즘을 기초로 자신들의 강력한 막시즘을 창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막시즘’이 연출할 세상

제 3세대 막시즘이라 할 수 있는 ‘밀레니얼 막시즘’이 펼칠 세상은 과연 어떤 세상일까?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고려하면서 세 가지로 예상해본다.

첫째로 인간 본성의 짐승화가 가속화될 것이다. 이성을 강조했던 계몽시대와 달리 21세기의 인간상은 이성보다는 강화된 죄의 본성에 의해 더욱 더 본능을 추구하는 시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말세의 현상에 대한 바울의 언급처럼 인간은 지독한 ‘자기사랑’에 빠질 것이기 때문이다(딤후 3:2). 학자들이 분석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인 ‘게으름’, ‘SNS중독성’, ‘자신만 아는 이기심과 무책임성’을 고려할 때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결국 21세기는 구체제의 가치관을 부정하며 이성보다는 인간의 본능과 감성에 충실할 것을 촉구했던 니체의 악령이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견된다.

둘째는 무신론의 절정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서구의 ‘세속화’는 ‘탈종교’를 의미했다. 탈종교란 ‘기독교로부터의 해방’을 뜻했다. 지난 100년간 서구는 도킨스의 궤변처럼 인간이 중심이 된 무신론의 절정 시대를 누리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간이 무종교의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인간은 종교적일 수밖에 없다. 바울과 칼빈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종교의 씨앗’이 있으며, 인간이 하나님을 부인하면 그 자리를 다른 우상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밀레니얼 세대들은 지독한 무신론자가 될 것이다. 이는 역으로 지독한 우상숭배자가 될 것을 의미한다. 그 대상이 자신이건 무신론을 빙자한 우상이건 우상숭배 시대의 절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그 물결을 역류하는 그리스도인에게는 핍박의 시기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셋째는 더욱 국가 의존적 존재가 될 것이다. ‘개인’을 중시하는 서구사회와 달리 한국인은 ‘우리’라는 독특한 ‘집단의식’이 있다. 이런 정서는 공산주의자들의 프레임에 쉽게 영향을 받는 요소로 작용한다. 오늘날 한국사회에 저급한 좌경화 현상을 보이는 것도 이런 원인 때문이다. 만일 지금처럼 좌파정권의 폭주가 계속된다면 보수 우파적 가치를 간과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국가의존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질 것이다. 국가에 모든 것을 의존함으로 국가의 지시를 거절하지 못하는 좀비 같은 존재가 될 확률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보수 세계관으로 무장한 인재들을 키우지 않으면 이 민족의 미래는 암담하다. 밀레니얼 막시즘의 횡행을 막을 책임이 교회에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는 제2의 베네수엘라 같은 전체주의 국가가 될지도 모른다.

 

교회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 교회가 제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둡다. 어쩌면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사악한 영의 역사가 발악하는 때에 어떻게 해야 이 영적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시대를 대비할 수 있을까? 그 문제에 대해 필자는 다음 칼럼에서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성경적 영성과 실천적 전투력을 필요로 하는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다함께 우리의 사명을 돌아보고 하나님의 역사를 써 내려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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