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은 왜 에베소교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렀을까?  /.천헌옥

"바울이 앗소에서 우리를 만나니 우리가 배에 태우고 미둘레네로 가서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바울이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 배 타고 가기로 작정하였으니 이는 될 수 있는 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감이러라.  

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사도행전 20:14-21)

 

밀레도의 원형 경기장

3차 전도여행길에 오른 바울은 에베소에 도착하여 회당에서 3개월, 두란노에서 2년 6개월, 거의 3년 동안 복음을 전합니다.(행20:31) 그러다가 데메드리오 소요 사건으로 위기를 맞이합니다.(행19장) 그리고 급히 에베소를 떠나 2차 전도여행 때에 개척한 교회들을 두루 다니며 교제를 나눕니다(행20:1-3)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기 위해 빌립보로 돌아가 배를 타고 드로아에 상륙하여 1주일간을 체류하고(행20:3-6) 떠나던 전날 밤에 말씀을 길게 강론하다가 유두고라는 청년이 3층에서 떨어져 죽은 것을 다시 살려내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행20:7-12) 바울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앗소, 기오, 시모를 거쳐 밀레도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고별설교를 했던 것입니다.(행20:14-21)

약 15,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은 지금은 많이 허물어졌다. 앞쪽으로는 돌기둥 위를 덮어 무대로 썼고 그 아래는 맹수를 두어 사형수들이 먹이감이 되었다고 한다.

에베소 남쪽 45㎞ 지점에 위치한 항구 도시인 밀레도는 '피난민'들이 모여와 살았다고 하는데, 아폴로의 아들 밀레투스로부터 그 이름을 가져온 것으로 추정합니다.

밀레도는 아시아의 해양도시이며 터키 남부의 미안데르 강의 입구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밀레도는 B.C. 5세기경 헬라에 멸망할 때까지 천 년 역사를 자랑할 만큼 일찍부터 문명화되었으며, 그 결과 아폴로 신전, 경기장, 야외극장 등 문화, 종교 시설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야외극장은 소아시아에서 그 규모가 가장 컸다고 알려집니다. 바울 일행은 3차 선교여행 후 귀향길에 밀레도에서 에베소 장로들을 불러 교회를 잘 다스리도록 당부했습니다. 

과거 신전터들은 아직 복원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바울은 왜 에베소 장로들을 밀레도로 불렀을까요? 첫째는 아마 드로아에서 얻어 탄 배가 에베소를 지나 밀레도로 직행하는 이유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아시아에서 지체하지 않기 위하여 에베소를 지나가기로 했다고 말씀합니다.(행2016) 에베소에 들리려면 기오에서 하선하여 에베소로 가야 하는데, 그 시간을 벌고자 함이었다고 보여집니다.(아래 지도 참고) 그리고 둘째 이유는 일행 중 병들어 함께 갈 수 없는 드로비모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딤후 4:20)

에베소는 육로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었기에 장로들이 하룻길이면 충분히 도착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 당시 에베소교회는 아시아에서 중심교회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에 주신 말씀은 아시아 전체 교회에 주신 말씀이라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바울의 고별설교를 들은 장로들은 주야로 그것이 기도제목이었을 것이고 후일 요한이 부임해 왔을 당시도 그것을 강조하였을 것입니다. 요한도 특히 이 부분(행20:29-30)을 마음에 두고 일곱 교회를 살폈을 것이고 그것이 요한계시록에서 아시아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 속에서 반영되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교회는 그런 일에는 단호하였음이 나타납니다.(계2:2) 다만 풍요로 인한 나태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계2:4) 에베소 장로들은 이단으로부터 교회를 지키는 일에 충성스러웠을 겁니다. 하지만 이로 인하여 어린 디모데 목사에게는 부담도 되었을 것이라 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딤전4:12절에서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라고 용기를 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의 선교여정을 보면 그는 철인이었다고 할 만큼 대단했습니다. 오죽하였으면 바나바의 조카 마가가 도망을 갔을까요?  사도행전 15:36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 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그 마가 요한으로 인하여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서기 까지 했으니 이해할만 합니다.

바울의 여정을 따라가 보면 정말 수많은 위험들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1: 23-27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 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에베소 장로들에게 말합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바울은 그렇게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체포되어 마지막 전도지인 로마로 향하게 됩니다.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은 주후 47-49년까지 2년여 간 2,240Km를, 2차 전도여행은 주후 49-52년까지 3년여에 걸쳐 장장 4,500-5,600Km를, 3차 전도여행은 주후 53-58년까지 이때 나이 52세로 5년여 동안 5,500-5,500Km를 여행했다고 합니다. 필자가 그를 철인이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이제 에베소를 중심으로 밀레도까지 살펴보았고, 다음에는 다시 요한이 계시록에서 언급한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 남은 어섯 교회를 하나씩 방문해 보려고 합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 등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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