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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나, 폴리갑기념교회를 가다]

서머나교회에 보내는 편지(계2:8-11)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소아시아 일곱교회, 요한은 에베소교회를 시작으로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교회를 차례로 계2:장 3장에서 언급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에베소를 둘러보았으니 이제 서머나로 올라가서 버가모로 돌아 나머지 교회들을 살펴 보려 합니다.

[서머나, 폴리갑기념교회를 가다]   /천헌옥

사실 서머나는 신약성경에서는 요한이 쓴 계시록 외에는 그 기록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남아 있는 역사의 기록들을 더듬어 찾아보려 합니다.

서머나는 에베소 북방 80㎞ 지점의 소아시아 서안에 있는 항구 도시입니다. 도시가 파고스 산을 왕관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자연적인 조건이 매우 좋은 곳입니다. 또 내륙과의 교역이 주로 이 항구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서머나는 과학, 의술, 건축술 등이 발달했으며, 황제 숭배와 로마 여신을 위한 신전이 세워졌습니다.

역사적으로 서머나는 이오니아인들이 세운 도시 국가였으나 B.C. 6세기경 리디아 왕 알리앗테스(Alyattes)에 의해 멸망하였고, B.C. 3세기경 알렉산더 대왕의 후계자들인 안티고누스(Antigonus)와 리시마쿠스(Lysimachus)에 의해 재건되었습니다. 서머나는 현대어로는 이즈미르로 불러지고 있습니다.

폴리갑기념교회당

신약성경에서는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가운데 서머나교회가 언급되는데, 언제 누구에 의해 세워졌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바울이 에베소에 체류할 때 전도하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행 19:9-10).

교회사에는 서머나교회와 관련된 유명한 두 지도자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안디옥 교회 감독인 이그나티우스(Ignatius)입니다. 그는 순교하기 위해 로마로 압송될 때(A.D. 120년경) 서머나에 체류하며 소아시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4통의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또 드로아에서는 서머나 교인과 서머나 교회 감독인 폴리캅에게 각각 1통씩의 편지를 보내 권면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 편지에는 서머나교회의 직책들(감독, 장로, 집사회 등)이 소상하게 언급되어 있어 당시 서머나 교회가 잘 조직된 공동체였음을 보여 줍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캅(Polycarp, A.D. 69-156년)입니다. 폴리갑(AD.80-165)은 본래 안디옥 출신이었습니다. 구전에 의하면, 서머나의 어느 과부가 안디옥에서 폴리갑을 노예로 샀는데, 그가 너무 총명해서 그녀가 죽게 될 즈음에 폴리갑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젊었을 때 그는 에베소에서 목회하던 사도 요한을 찾아가 가르침을 직접 받음으로 요한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폴리갑은 서기 115년경부터 156년경까지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 되어 복음(특별히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후대에 전하고, 그 가르침을 그의 삶으로 증명했던 인물입니다.

교회당 들어가기 전에 여기가 폴리갑기념교회라는 간판을 마주할 수 있다.

주후 156년경 교회가 핍박을 받기 시작했고 86세 노령의 폴리갑은 지방 총독 게르마니쿠스(Germanicus)의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군중들은 그를 사자 밥이 되게 하라고 외쳤으나, 사자들이 폴리갑에게 달려들지 않자 총독은 경기가 끝났다고 선언 합니다. 그러나 성이 난 군중들은 물러가지 않고 그를 장작더미에 올리라고 외쳐댔습니다. 이때 서머나 교회를 훼방하던 유대인들은 안식일임에도 불구하고 총독에게 유죄 판결을 요구하며 사형이 선고되자 직접 산에서 장작을 마련하는 열성을 보였습니다.

장작더미에 폴리갑을 묶어 올려놓고 재판관은 폴리갑에게 마지막으로 “예수만 부인하면 살려주겠다.” 하였으나, “86년간 나는 그분을 섬겨 왔고, 그분은 나를 한 번도 모른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의 주님을 모른다고 하란 말인가?” 하고 기꺼이 화염 속에서 주님 품에 안겼다고 합니다. 폴리갑은 당당하게 믿음을 지켜 서머나의 12번째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폴리갑이 당당히 자기 신앙을 밝히고 화염속에서 순교의 길을 가는 장면의 벽화


서머나는 부유한 도시였지만 서머나교회는 가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이 실제로는 부유한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계 2:9). 왜냐하면 그들은 황제 숭배를 거부함으로 권력층과 사회로부터 따돌림을 당하여 가난할 수밖에 없었지만 신앙의 순결을 지켜 믿음에 있어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부자였기 때문입니다.

폴리갑기념교회당 내부

옛날부터 에베소 다음가는 부유하고 번창한 항구 도시로서 일찍부터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하고 살았는데, 로마정부와 결탁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의 순교의 피를 흘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고난과 박해 중에도 기독교인들은 신앙 고수에 더욱 충성하며 로마의 황제 숭배를 끝까지 반대하며 굴하지 않았기에 계시록에 소개되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빌라델피아 교회와 더불어 책망이 없는 칭찬을 받으며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계2:8-11)

몰약 나무

서머나'라는 이름은 "몰약"이라는 향료에서 유래됩니다. 8~ 9 피트의 높이로 아라비아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자라는 몰약이라는 가시 돋친 나무는 쓴맛을 지니고 있으나 이에서 나오는 몰약의 향기는 대단히 훌륭하여 예수께서 탄생하실 때 동방박사들이 예수께 드리기 위해 준비해 올 만큼 값지고 훌륭한 향료입니다.

특히 두드리고 으깰수록, 짓눌리고 부서질수록 더욱 아름다운 향기를 뿜어낸다고 합니다. 이런 특성을 생각하면 비록 고난과 핍박이 아무리 심할지라도 부활에 대한 소망을 순교의 향기로 승화시키며 역사를 장식한 서머나 교회는 몰약의 향기를 가졌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의 서머나, 현재명으로 이즈미르 도시

우리가 찾아갔던 서머나에 폴리갑 기념교회가 있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서기 100년부터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최초로 종교의 자유를 합법적으로 공인한 밀라노의 칙령을 반포한 313 년까지 혹독한 핍박을 치른 시대를 대표하는 교회입니다.

비잔틴 제국은 도시 곳곳에 기독교적 유적을 남겨 놓았으나 이후 아랍 및 터키인들의 침략으로 기독교 유적은 거의 사라졌으며 수차례의 지진으로 거의 모든 고대 유적지가 함몰된 데다가 현대에 와서는 터키에서도 큰 도시를 조성하느라 개발을 하다 보니 유적지들이 많이 소실되었지만 유독 서머나에는 아직도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는 17세기에 지은 폴리갑 기념교회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 등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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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헌옥  choug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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