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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영(靈)의 역사와 교회의 응전(2)

박광서 목사 (큰사랑교회 담임 코닷연구위원)

본지에 기고되는 나의주장,은 순수한 기고자의 주장임으로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2017년 10월말 필자는 ‘동성애 배후 사상’에 관한 책을 썼다. 그런데 출판사 선정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유는 출판사들이 현 정권을 의식했는지 출판을 꺼렸기 때문이다. 그때와 비교해 요즘 시류를 비판하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 어찌되었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들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다. 북한의 주체사상을 좇는 무리와 서구 좌익사상을 좇는 무리의 연합공세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년 보수우파는 좌익의 이런 움직임에 무지했다. 관심도 없었다. 그로 인해 오늘의 사달이 난 것이다. 최근 현 정권에 대한 지지도가 하락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국민 대다수는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18년의 대한민국’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민족과 통일’을 앞세운 종북세력의 ‘평화쇼’가 아닐까? 하지만 그 평화쇼에 변한 것이 있나? 전혀 없다. 오히려 국가경제와 안보만 처참하게 무너졌다. 그렇다면 2019년은 좋아질까?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종북쇼’가 먹히지 않음을 깨달은 좌익은 방향을 전환할 것이다. 어차피 파괴가 목적이기에 서구 좌익의 툴(tools)을 강제할 것이며, 좌파 홍위대 양성에 온 힘을 기울일 것이다. 저들은 지금까지 동성애, 급진페미니즘, 이슬람(난민) 등의 문제를 시차를 두고 적용해 왔지만 2019년부터는 한 세트로 묶어 압박할 것이다. 그 수단이 바로 ‘NAP’다. 이미 엄청난 예산이 준비되어 있고 그것을 지지하는 무능한 위장보수 세력도 국회 내에 존재한다. 좌익에 대한 보수정치인들의 무지가 위험 경계선을 넘은지 오래다.

그렇다면 교회의 분별력은 어떨까? 안타깝게도 교회 지도자들의 수준도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지난 3년간 영적 전방에서 좌익의 공세에 맞서 싸운 이들은 소수의 지도자와 성도들이다. 그들의 풍찬노숙(風餐露宿)의 수고가 없었다면 한국교회는 벌써 무너졌을 것이다. 아쉽게도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그 고마움을 모른다. 이유는 서구 좌익의 본질을 잘 알지 못할뿐더러 관심이 전혀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1. 교회 지도자들의 무지, 무관심, 무책임의 원인

첫째로 시대적 사명에 대한 무책임과 나태함이다. 거짓의 아비인 사탄의 목적은 오직 하나, 세상과 신자를 타락시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가로막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 지도자들은 시류를 잘 분별하여 잘못된 것을 바로 잡아야 할 책임과 사명이 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교회가 비난을 듣지 않은 때가 없었지만 오늘의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상태에 있다. 그것은 교회 지도자들의 영성이 깊이 병들어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둘째로 일반 학문보다 신학을 우월하게 여기는 왜곡된 태도다. 사람은 익숙한 것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목회자들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접해 온 익숙한 신학에만 안주하려 하거나 그것만을 추구하려 한다. 여기에 일반학문을 신학의 시녀로 여겼던 중세기적 병든 태도가 목회자들의 내면에 은근히 자리 잡고 있어 시대 분별에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목회자들은 그 누구보다 일반학문의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그리해야 하나님의 교회를 파수할 사명과 책임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

셋째로 사회참여에 대한 부정적이고 안일한 태도다. “목사는 정치설교를 해서는 안 된다. 세상 이야기 하지 말라. 오직 성경만 설교하라.” 그럴듯한 말이지만 전형적인 좌익의 프레임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갈등이 있게 마련이고 그것을 해결하는 행위가 정치다. 성경을 읽어보자. 사람 이야기에 정치와 관련이 없는 것이 있겠나? 판단 기준이 인간이냐 하나님이냐의 차이일 뿐 인간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교회가 좌익의 프레임에 사로잡혀 스스로 벙어리가 되려 한다. 그 때문에 종북, 젠더, 난민, 낙태와 페미니즘 등의 이슈가 득세해도 벙어리가 되거나 동조하는 철없는 언급을 한다. 교회는 세상을 변혁할 존재지 세상 가치에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다. 교회가 내세를 지향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사명적 공동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넷째로 마지막에 변하는 대상이 교회라는 보수성이다. 프란시스 쉐퍼는 인간이 절망선 이하로 타락하게 될 때 무너지는 순서를 ‘철학’을 필두로 ‘예술’, ‘일반문화’의 순서로 타락하되, 제일 마지막에 무너지는 것이 ‘신학’이라 했다. 그런 측면에서 신학의 타락은 세상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오늘의 대한민국의 위기는 새로운 인간, 새로운 세상에 진입했음을 뜻한다. 그런데 교회는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결국 고난을 당하기 전까지는 꿈적하지 않는 어리석은 역사를 교회가 또 다시 쓰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인지도 모르겠다.

 

2.‘밀레니얼 막시즘’을 대처해야 하는 한국교회

오늘날 세계교회와 한국교회는 계시록 13장에 나오는 두 짐승의 공세로 인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 당황스런 일들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다. 여기에 더욱 강화된 ‘밀레니얼 세대들의 막시즘’이 쓰나미처럼 밀려오고 있다. 어떻게 해야 교회가 승리할 수 있을까? 범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달려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도 신앙이 있는 곳에, 사명자의 충성이 있는 곳에 임하기에 네 가지를 제시해 본다.

첫째로 목회자의 각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교회는 목회자만큼 성숙해진다. 결국 한국교회의 위기는 목회자의 수준을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바른 신학, 바른 신앙, 바른 삶을 추구하는 영적인 목회자가 절실하다. 세속적 가치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득한 청렴한 카리스마를 겸비한 지도자를 이 시대는 요구한다. 따라서 목회자의 각성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그것이 한국교회 미래 결정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기독교 미래 인재 양육의 시급성이다. 최근 보수 우파 내에 보수 가치관을 가진 미래 지도자를 키워야 한다는 각성과 움직임들이 일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요 그동안 보수우파가 간과했던 어두운 부분이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다. 교회도 탄탄한 미래 인재 양육에 온 힘을 기울어야 한다. 그동안 교회가 나름 지도자를 키운다고 노력했지만 어쩌면 세속적인 리더에 부응한 것은 아닐까? 성경적 영성과 실천력을 가진 지도자 양성여부에 한국교회의 생사가 달려 있다. 사사시대가 왜 왔는가? 여호수아 사후를 책임질 지도자의 부재가 원인이었다. 지도자 부재는 무정부주의의 혼란으로 치닫게 한다. 하늘의 능력과 땅의 능력을 겸비한 미래 인재의 양육이 시급하다.

셋째로 무엇이 참 진리인지 분별해야 한다. 사람들의 큰 착각이 있다. UN과 EU의 지침이 참된 표준이요, 그 조직에 맞춰가는 것이 시대를 앞서가는 교양인인 것처럼 여기는 잘못된 태도다. 오늘의 UN과 EU는 전통적인 보편가치를 추구하던 그 옛날의 등대 같은 존재가 아니다. 좌익세력에 장악되고 온갖 로비로 가득한 사회주의 기득권세력들의 정치판이다. 그들의 권고와 가르침은 더 이상 절대 진리가 아니며, 회원국들이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도 없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UN과 EU의 실상과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진리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외에는 없으며 그 말씀 아래 있을 때 인간에게 참 평안이 따라오게 된다.

넷째로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이다. 세상과 구별되는 교회의 생명은 성경적 영성에 있다. 교회는 어두운 시대를 밝힐 소명을 받은 사명적 공동체다. “가장 귀한 보석이 타락하면 가장 추한 존재가 된다”는 말처럼 교회가 세속화 되는 순간 가장 무능하고 가장 추한 존재가 된다. 오늘의 교회는 어디서부터 멀어졌는지 스스로를 돌아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 본연의 본질로 돌아와야 한다. 지금처럼 탐욕에 집착한다면 교회는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산업재해에서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는 것이 있다. 큰 재해는 작고 사소한 일에서 시작한다는 경고다. 예를 들어 1인의 사망사고가 나기까지 그 이전에 29명의 중상자가, 또 그 이전에 경상자 300명이 발생하는 징후들이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작은 방심이 대형 사고로 귀결된다는 법칙이다. 한국교회의 영적 위기는 큰 문제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진 그 작은 하나에서 출발한다. 거짓과 음란과 탐욕에 쉽게 동요되는 국민의 특성 상 교회 지도자들마저 장단을 맞춘다면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내일의 참 교회는 오늘의 진리파수를 위한 순교의 영성에 달려 있음을 우리 모두는 마음 깊이 새겨두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결사항전을 해야 한다.

 

박광서  myr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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