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야 조디 길(Jodi Gill) 인터뷰

조디(Jodi Gill)의 한국 이름은 김지애이다. 1974년생이니 올해 45살이다. 그녀는 1976년 서울의 어느 경찰서에 버려졌다. 경찰은 버려진 여자 아기를 홀트 아동복지회에 맡겼다.

미국의 양부모에게 입양되기로 했지만, 수두와 기생충 그리고 심한 중이염 때문에 비행기를 탈 수 없었다. 당시 일산 홀트 아동복지회 의사에 의하면 비슷한 처지의 아기 13명이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디는 살아서 비행기를 탔다.

조디는 가정과 교회 그리고 학교가 만들어준 울타리 가운데 버림 받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고백한다.

미국 엄마에게 한국말로 잠 투정하는 아이를 품어준 가정 

조디는 드디어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사는 양부모(Ed and Evelyn Brubaker)를 만난다. 그러나 세 명의 오빠가 있는 집 막내딸로 입양된 조디는 쉽게 정착하지 못했다. 밤에 자주 일어나 미국 엄마에게 가서 한국말로 울면서 투정했다. 방에다 몰래 음식을 감추어 두기도 했다.

조디가 자란 동네는 1970년대만 해도 백인 외에 다른 인종은 거의 살지 않았다. 조디가 유치원 다니던 때 그녀의 양부가 일터에서 심각하게 다쳤다. 조디 가정의 시련이 시작되었다. 정부의 도움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인종차별도 겪었다. 그러나 조디의 가정은 믿음의 가정이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족들은 사랑으로 조디를 품었다.

성경의 가치를 가르쳐 준 기독학교

부모님은 조디가 고등학교만 마치고 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공부를 잘했던 조디를 눈여겨보았던 중학교 선생님의 권유로 대학에 진학했다. 기독교 대학이었던 노스웨스트 대학교(Northwest University in Kirkland, Washington)에서 성경과 신학 과목들을 많이 이수했다. 복음을 깨닫고 궁극적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훌륭한 교수님들께 지혜를 배우고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배웠다.

대학을 졸업한 조디는 고등학교 친구였던 마이크 길(Mike Gill)과 결혼한다. 16살 때 수학 교실에서 만난 마이크와 조디 사이에서 검은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3명의 자녀가 태어났다. 조디는 이 아이들을 자신처럼 기독교 학교에 보내서 키웠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니던 그 기독교 학교의 국제관계 담당자로 섬기게 되었다. 2004년부터는 미국에 공부하러 온 한국 학생들을 돌보기 시작한다. 2019년에는 열방교회 쉐마 초등학교와 연결되어 한국 학생들의 미국 연수를 돕고 있다.

조디 길(Jodi Gill)의 한국 이름은 김지애이다. 그녀는 1976년 서울의 어느 경찰서에 버려졌다 홀트 아동복지회에 의해 미국으로입양되었다.

입양아의 그림자 조차 찾아볼 수 없는 조디

지난 1월 12일 쉐마초등학교 교실에서 조디를 만나 인터뷰 했다. 입양아의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이 밝았다. 얼굴은 한국인이었지만 생각과 언어와 생활문화는 100% 미국인이었다. 스코틀랜드 혈통인 그녀의 남편에 대한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이해하기 힘든 백인들의 조용 조용한 생활문화를 이야기하며 큰 소리로 웃으며 인터뷰를 이어갔다.

미국 양부모에게 입양되고 나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신앙생활은 어떻게 시작했고 예수님은 언제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주세요.

제가 입양된 가정은 믿는 가정이에요. 교회에 매 주일 나가고 교인들과 강한 네트워크을 가지고 있었어요. 제가 4살 때 큰 오빠가 영접 기도를 시켜주어서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그러나 중학교 시절 사춘기 때문인지 입양아의 반항심 때문인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못했어요. 그러다가 고등학교 시절 예수님께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부모에게 버림당했다는 느낌, 그리고 미국 아이들의 인종차별적 행동 가운데 주님은 조디를 어떻게 위로해 주셨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가 입양되었을 때 좋은 일만 있었던 게 아니에요.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아저씨와 다른 친척들이 처음에는 저의 입양을 환영하지 않았다고 해요. 제가 입양되었을 당시에만 해도 전쟁으로 인해 아시아에서 죽은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아픔으로 아시아인들에 대한 증오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 부모님은 친척들을 설득하고 저를 환영받는 아기로 키워주었어요. 부모에게 버림당했다는 느낌을 전혀 갖지 않도록 키워주셨어요. 저는 저를 낳은 부모에게 죽음이나 가난 같은 피치 못한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끔 오빠들이 저를 심하게 놀릴 때면 저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나를 다시 데리고 돌아가는 꿈을 꾸곤 했어요. 버림당했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떨어지면 어떻하지?'가 아니라 '날아오르면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라  

입양아에서 이제 교사로 미국 학생뿐 아니라 한국 학생도 지도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한국 학생들을 지도하는 감회가 남다를 텐데 미국에 공부하러 온 한국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무엇입니까?

미국에 공부하러 온 한국 학생들이 “실패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까?” 미국에 공부하러 온 한국 학생들의 마음에 이런 의심이 있는 것을 봅니다. 저는 그들이 잘해 낼 것을 믿습니다. "내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라고 걱정하는 학생들에게 저는 이렇게 말해 주고 싶어요. “네가 날아오르면 어떻게 할 거야?” 믿음으로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탐험해 보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미국도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한 부분에 불과해요. 제가 여러분을 도울 수 있습니다.

미국식 교육으로 성장하셨고 교육 전문가가 되셨는데, 미국에서 기독교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자녀들을 위한 기독교 교육에는 5가지의 기본 요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먼저는 공동체의 기독교적 가치입니다. 두 번째는 크리스천 리더십 멘토링입니다. 세 번째는 성숙한 교과과정입니다. 네 번째는 학생들을 잘 돌보기 위한 선생님과 학생의 비율입니다. 마지막은 기독교 리더십 아래서 학생들에게 예술, 운동, 서클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일은 사랑으로 자녀의 마음을 넓혀주는 것이다. "- 조디 길

어려운 질문이지만 가장 정확한 답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교육에 있어서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부모는 가장 어려운 직업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첫 번째 선생님입니다. 우리는 그들의 태도를 헤아려야 하고 그들의 감정을 돌보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지적 능력 단계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어렸을 때는 그 상태에 맞게, 조금 크면 거기에 맞게 관계를 설정해야 합니다. 독서를 통해 그들의 어휘를 늘려주고 새로운 취미들을 통해 그들의 경험을 넓혀주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부모의 일은 자녀들을 사랑함으로 그들의 마음을 넓혀주는 일입니다. 이런 것들은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만 의지해서 얻을 수 없습니다. 부모와 교회 그리고 학교가 협력할 때 가능합니다.

 

조디가 주관하는 영어 캠프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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