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채 목사(사단법인 산돌손양원기념사업회 회장, 사단법인 여명 이사장, 바른교회 아카데미 이사장, 본지 발행인)

나의 어린 시절은 가난하였다. 영양부족으로 아이들의 얼굴엔 마른버짐이 피고 눈에는 눈곱이 끼였다. 겨울이면 따뜻한 옷 하나 변변히 없어 뛰어놀지도 못하고 양달을 찾아 거기서 서로 몸을 붙이고 밀치락거리며 시간을 보낼 때가 많았다. 우리는 시골 벽촌에서 문명을 모르고 자랐다. 우리 마을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였다. 그런 세상에서는 먹을 것 입을 것이 항상 가장 큰 문제였다. 그땐 성공이란 아주 단순했다. 잘 먹고 잘 입는 것이었다. 명절에 새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을 배부르게 먹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없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우리들에겐 물질적인 성공관이 살에 물들고 뼈에 새겨졌다. 그러기에 오직 돈 벌기에 매달려 살고, 돈 생기면 먹고 입고 즐기는데 쏟아붓는다. 그것도 한계가 있으니까 집 짓는 것으로 한을 푸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런 것으로 자신의 성공을 자랑하고 과시한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면서도 여전히 이런 가치관을 벗어나지 못하고 살 때가 많다. 이것이 우리 현대 기독인들의 큰 약점이고 문제다. 그러면 성경이 가르치는 성공은 무엇일까? 먼저 성경에 나오는 두 인물을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다. 곧 모세와 솔로몬이다.

노예였던 히브리인의 아들 모세는 나일강에 버려진 아이였으나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 된다. 그가 왕가의 가족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큰 행운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절하였다.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자기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선택하였다.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모당하는 일을 선택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는 심히 어리석은 선택을 했고 그런 면에서 그는 실패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세가 과연 실패한 사람인가?

모세에 비해 솔로몬은 아주 화려하게 살았다. 그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것들 곧 명예와 부귀와 권세와 영광을 다 소유하고 누렸다. “나의 사업을 크게 하였노라 내가 나를 위하여 집들을 짓고 포도원을 일구며 여러 동산과 과원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각종 과목을 심었으며 나를 위하여 수목을 기르는 삼림에 물을 주기 위하여 못들을 팠으며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 내가 이같이 창성하여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 더 창성하니 내 지혜도 내게 여전하도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마음이 기뻐하였음이라 이것이 나의 모든 수고로 말미암아 얻은 몫이로다”(전 2:4-10)

그러나 과연 그는 성공한 사람이었나? 그는 스스로 실패하였다는 것을 거듭거듭 확인하고 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b)라고 하였고,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8)라고 결론하였다.

무엇이 성공인가? 첫째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경은 사람을 살리고 온전케 하는 일에 대해 많은 말씀을 하고 있다. 구원사역의 중심에 바로 사람이 있다. 사람을 살리시려고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사람들을 온전케 하시기 위해 성령을 보내셨다. 성경말씀을 주신 것도 이 일을 위해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롬 8:29)라 하였고,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함이라”(딤후 3:6-17)고 하였다.

성령의 열매는 예수님의 성품을 말한다. 그리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숙하게 된 사람의 성품과 인격을 말한다.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품으로 변화되고 성숙된다. 곧 예수님을 닮는 것이다. 우리는 소유보다 존재, 능력보다 인격이 먼저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둘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와 사명을 알고 그 사명에 충성하는 것이 성공이다. 우리는 성공을 비교우위라는 상대적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잘해야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 성실하게 사는 사람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예수님은 달란트 비유와 열 므나 비유에서 성과의 다소에 관계없이 잘하였다고 동일하게 칭찬하셨다. 잠언에서는 자기 일에 성실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라고 하였다. 다섯 달란트냐 한 달란트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주신 대로 받은 것으로 충성하는 것이다. 성과보다 성실이 더 중요하다.

셋째는 선을 위해 희생을 많이 한 사람이 성공한 사람이다. 세속적인 성공은 많이 얻는 것이고 많이 누리는 것이고 크게 높아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에서는 그렇지 않다. 성공은 많이 나누는 것이고 많이 희생하는 것이고 크게 낮아지는 것이다. 섬기는 자가 위대하다고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희생하셨고 지옥에까지 낮아지셨다.

역사를 읽으면 예수님처럼 끊임없이 비우고 희생하며 산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이 그러했다. 세상의 부귀영화는 물론 사람에게 당연하게 주어지는 기초적인 삶의 필요까지도 다 내려놓고 지금도 도처에서 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결코 실패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죽기까지 충성한 예수님을 높이셔서 모든 무릎을 그의 무릎에 꿇게 하셨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은 희생의 크기가 좌우한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