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에서 빌린 3.1운동 자금 5,000원 한국교회가 갚아라?

한 달 후면 3.1운동 100주년이다. 문재인 정부는 3.1절 100주년 기념행사를 북한과 공동으로 개최하겠다고 한다. 기독교계는 광화문 광장에서 수십만 명이 모이는 집회를 준비한다고 한다. 북한과의 공동개최나 광화문 대형 집회나 모두 재정이 필요하다. 100년 전 3.1운동 당시에도 자금이 필요했다.

한국교회, 천도교에서 3.1운동 자금 5,000원 빌려?

‘2019 한목협 제38차 열린대화마당'에서 이만열 교수는 “3.1 운동 준비과정에서 자금이 필요했다.”며 “한국교회가 천도교로부터 자금 5000원을 빌렸다”고 전했다. 이 교수는 천도교에게 빌린 이 돈을 한국교회가 반드시 갚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교수는 2018년 3월 19일 천안 하나교회에서 있었던 미래교회포럼 준비세미나에서도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독립선언서명자를 모집키로 하여 16명의 기독교인이 서명했는데 5명이 더 서명자로 지원했으나 시간이 늦어 취소되었다. 점화단계의 48인 중 24명이 기독교인이다. 천도교와의 합작에 앞서 기독교계는 적어도 세 갈래(서북 장로교, 북감과 남감, 2.8독립선언에서 보이는 재동경Y 등)로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있었고, 첫날 봉화를 든 것은 기독교계였다. 그러나 중앙조직이 약한 기독교계가 천도교로부터 5천 원을 빌렸지만, 5천 원의 용도는 대부분 여행경비(중국 일본 만주와 국내 3,170원, 수감자 가족 생계비 640원, 독립선언서 발송비 250, 기타 경비 80원)에 사용되었다.”(원문 바로가기) 

3.1운동 천도교 대표 손병희(좌), 기독교 대표 이승훈(우)

당시 5,000원 현재 약 3억 6백만 원 가치

동아일보 "[토요기획] 3·1운동 100년 역사의 현장 “천도교-기독교 힘 합칩시다… 초유의 종교연대 운동 성사”라는 기사에 의하면 (원문 바로가기), 인촌 김성수도 당시 기독교 대표 이승훈 장로에게 3.1운동 자금을 지원했다고 한다.

“자나 깨나 민족의 독립을 꿈꾸던 이승훈의 시원시원한 말에 인촌(김성수) 역시 자금 제공으로 응원했다. 이승훈과 동향이며 오산학교 출신인 김도태는 ’이승훈 씨의 관서 방면 공작비로 김성수 씨가 2000원인지, 3000원인지를 내놓았다‘고 증언했다.(‘동아일보’ 1949년 3월 1일자) 당시 쌀 한 가마 값이 3원가량이었으므로 3000원은 쌀 1000가마 값에 해당하는 거액이었다.”

당시 3000원이 쌀 1000가마였으니 5000원이면 쌀 약 1700가마 값에 해당한다. 2018년 현재 쌀 80kg 한 가마니 값을 18만 원으로 계산하면 약 306,000,000원에 해당하는 큰돈이다.

빌린 것이냐 지원받은 것이냐?

위의 동아일보 기사에 의하면, 3.1운동에 대한 천도교의 태도가 미온적인 가운데 기독교 측이 단독으로 3.1운동을 결행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기독교 측의 단독 거사가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최남선이 소격동에 머물고 있던 이승훈을 찾아왔다. 2월 21일 마침내 최남선의 주선으로 이승훈과 최린이 만났다. 최린의 북촌 재동 집에서 이승훈이 단도직입적으로 따졌다.

‘천도교 태도가 흔들리는 것이 아니오? 기독교만으로 독립운동을 단독으로 결행할 것이오.’(김기석, ‘위대한 한국인, 남강 이승훈’)

‘독립운동은 민족 전체에 관한 문제인 만큼 종교의 이동(異同)을 불문하고 합동하여 추진합시다.’(현상윤, ‘3·1운동 발발의 개략’)

최린은 원래 계획대로 천도교와 기독교 합동으로 일을 추진하자고 이승훈을 달래듯 말했다. 이에 이승훈이 운동자금으로 5000원 정도가 필요하니 천도교 측에서 조달해 달라고 요청했다. 손병희의 재가를 받은 최린이 쾌히 승낙했다.”

위의 자료에 의하면 이승훈이 천도교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는 가운데 운동자금을 요청한 것으로 되어있다. 천도교 측은 손병희의 재가를 받아 운동자금을 쾌히 승낙했다. 천도교가 빌려줬다기 보다는 3.1운동 자금을 지원한 것이다. 인촌 김성수가 3000원을 지원하고, 천도교 손병희가 5000원의 3.1운동 자금 혹은 독립 자금을 지원했다고 할 수 있다.

현 천도교 교령 이정희 씨도 얼마 전에 있었던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천도교의 3대 교조 의암 손병희 성사가 개신교 쪽에 5천 원을 ‘지원’했다고 밝혔다(원문 바로가기).

“이 교령은 ‘3·1운동은 1919년 신도 300만명으로 최대 종교였던 천도교의 3대 교조 의암 손병희 성사가 개신교쪽에 지금으로는 100억원대에 해당하는 5천원을 지원하며 참여시켰다’고 했다. 그는 ‘당시 의암(손병희)이 독립선언서 3만5천장을 인쇄해 배포했으며, 이 사실이 사전에 조선인 형사에게 발각되자 그에게 거금을 주며 설득해 위기를 넘겨 거사를 성공시켰다’고 부연했다.”

천도교 이정희 교령에 의하면 5천 원이 현 100억 원대에 해당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런 계산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만열 교수가 밝힌 5000원의 사용처와 동아일보 기사를 근거로 하면 약 3억 6백만 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당시 5000원은 집 한 채 값 정도에 달한다는 역사가들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기독교는 인적 자원 천도교는 재정 자원으로 협력

아무튼, 당시 최대 종교였던 천도교가 제일 많은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3.1운동 인적 구성에서 볼 때 “민족대표 33인 중 천도교도 15명, 불교도는 2명에 불과했으나 기독교신자는 16명으로 50%를 점하고 있다.”

이상규 교수는 “33인을 포함하여 만세운동을 점화한 48인 대표로 볼 때도 기독교 대표는 24인으로 이 경우도 절반인 50%에 해당한다.”며, “기독교는 만세운동 준비단계에서 50%의 역할을 감당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규 교수는 기독교인의 참여가 많았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 비해 피해도 월등히 많이 입었다고 했다.(원문 바로가기)

그렇다면 천도교의 3.1운동 자금 5000원은 누가 갚아야 하나? 이 돈은 천도교 측의 말대로 당시 최대 종교로서 3.1운동을 성사시키기 위한 종단 차원의 지원이었다. 천도교의 지원으로 기독교는 3.1운동을 전 국민의 만세운동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기독교계가 돈을 모아 5000원을 갚기보다는 자금과 인력을 공유하며 나라를 위해 협력했던 그 협력 정신을 기리는 게 더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 자금을 갚아야 할 주체를 굳이 따지자면 3.1운동으로 태동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후손인 대한민국 정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무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정부는 3.1운동을 주도했던 기독교와 천도교를 비롯한 종교계의 역사적 공헌을 외면하지 말았으면 한다. 정부는 3.1운동 100주년을 국민 대통합의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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