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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 갑바도기아>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행2:9)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1:1)

갑바도기아 하면 우선은 열기구가 먼저 떠오른다. 호기심 많은 한국인들아 가장 애호하는 상품이고 그래서 많은 소문이 났기 때문이다.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 유럽 등 많은 사람들이 열기구를 타는데, 비용이 1인당 26만원 정도이다. 한 기구에 40여명이 타고 한 지역에서 거의 200개의 열기구 올라간다고 하니 대단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 갑바도기아>

오늘은 열기구로 유명한 갑바도기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터키에 가면 꼭 열기구를 타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지상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열기구를 타고 올라가면 2천 년 전 우리의 믿음의 선조들이 어떻게 신앙생활을 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여행에 함께 동행한 장남이 동영상으로 찍은 것을 사진으로 옮겨왔다. 새벽 4시에 일어나 현장으로 가서 여러가지 교육을 받고 탑승하면 1시간 정도에 걸쳐 갑바도기아의 전경을 내려다 보게 된다.

사도 시대에, 갑바도기아(카파도키아)는 소아시아 동부에 있는 큰 내륙 지방이었는데, 기후는 대체로 추웠고 나무가 드문드문 나 있는 삼림 지대였다고 합니다. 900미터의 고지들이 있는 고원이 그 지역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지역의 역사 전체를 통하여 경계의 변동이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북쪽 경계는 본도(폰토스)였고, 서쪽 경계는 갈라디아와 루가오니아(리카오니아)였으며, 남쪽 경계는 길리기아(실리시아)와 토로스 산맥이었으며, 동쪽 경계는 아르메니아와 유브라데(유프라테스) 강 상류였습니다. 주민들은 조방적(粗放的)인 목양업에 종사하였으며, 소와 좋은 말도 많았고. 따라서 밀이 주요 곡물이었습니다.

역시 장남의 동영상에서 캡쳐한 것인데, 바위에 난 구멍들은 모두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 살기 위해 파놓은 동굴집이다. 그 가운데는 교회당도 있다.

갑바도기아는 고레스(키루스) 치하에 있던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원래 지역은 본도와 갑바도기아라는 두 개의 지방총독 관할구역으로 편성되었습니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 기간에는, 분봉왕들이 통치하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기원 17년에 로마 황제 디베료(티베리우스)가 이것을 폐하였고, 갑바도기아는 행정 장관의 통치를 받는 로마의 속주가 되었습니다.

기원 70년에, 베스파시안은 이 속주를 아르메니아와 합병하여, 동부의 주요 변방 속주로 만들었습니다. 갑바도기아는 그 지역을 가로지르는 도로들로 인해 전략상 중요하였는데, 그러한 도로 중 하나는 지중해 연안의 다소(타르수스)에서 시작하여, 길리기아의 관문으로 알려진 토로스 산맥의 협곡을 통과하고, 갑바도기아를 가로질러서, 본도 속주와 흑해 연안의 항구들로 이어졌습니다.

갑바도기아의 원주민은 분명히 야벳 계통의 아리아인이었지만, 기원전 2세기에는 이미 유대인이 눈에 띄게 많이 정착하였습니다.

갑바도기아는 친절하고 사랑스러운 땅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사도행전 2장 9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온 사람 중에는 갑바도기아에 사는 유대인도 있었음이 나타납니다. 이들은 오순절에 복음을 받고 갑바도기아에 내려와 복음을 전하였고, 그리고 교회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것은 베드로의 서신에서 증명됩니다. (벧전 1:1) 예루살렘에 거주하고 있던 베드로의 귀에까지 갑바도기아교회의 소식이 전해졌던 모양입니다.

무른 바위가 사람을 살렸다. 사랑이 풍성한 만세반석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이 택한 모든 백성을 그 품에 안아 살리신 것이다.

그러나 저들에게도 박해가 찾아왔고 고난의 행군이 시작됩니다. 저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바위산으로 들어와 바위에 구멍을 파고 숨어 살면서 신앙을 지킵니다. 이 근방에는 약 365개의 동굴이 있었다고 하니 적어도 1,000여명 이상이 숨어 신앙을 지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법 큰 동굴은 교회당으로 사용했는데, 차르클러교회, 카란륵교회, 일란르교회, 바르바라교회, 엘말르교회, 바실리우스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파샤바 계곡 등 전체적으로 보면 동굴은 약 1천여 개 이상으로 조사되고 있으며 교회는 약 30여개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되기까지 근 300여년을 박해를 피해 동굴에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곳은 야외박물관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괴레메 야외박물관입니다. 그러기 얼마 전까지도 이곳 동굴에 주민들이 살았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깊은 우물이라는 데란구유 지하도시는 땅 밑으로 약 55m나 되는, 간격 4-5m의 한 층을 계산으로 12층 정도의 지하도시가 있는데, 이곳에는 예배당이 있어 구전과 예배로 그리고 벽화를 그려 신앙을 지키면서 후세에 계속 복음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지하도시에는 무덤도 함께 존재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 공개된 것은 1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하니 그렇게 추산하면 인구 약 3만 명이 숨어 살면서 신앙을 지켰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는 갑바도기아에서 데란구유지하도시를 거쳐 라오디게아로 이동했다.

신앙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고난의 삶을 살면서도 복음을 지키고 전수하였는지를 돌아보면서 부유함과 평화의 틀 속에서 안주하고 있는 오늘의 우리 자신이 부끄러울 뿐입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 등을 참고하였습니다.

 

천헌옥  choug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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