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연 목사 2019 미래교회포럼 1차 준비세미나 발표 주해 보고서

내일을 위한 준비 (수 1:1-9) 

<본문 직역>

 

1.   주의 종a 모세가 죽은 후에 주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2.   나의 종 모세가 죽었으니 지금 일어나서 이a 요단을 건너라 너와 이 모든 백성은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b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대로 너희 발a바닥으로 밟는 모든 곳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다b

4.   광야에서부터 그리고 이a 레바논과 큰 강 유프라데스강까지 헷족속의 모든 땅b과 해지는 쪽(서쪽)으로 큰c바다까지가 너희의 경계가 될 것이다. 

5.   너의 사는 날 동안 어느 누구도 네a앞에 마주서지 못할 것이며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같이 너와 함께 하고 내가 너를 버리지도 않을 것이며 너를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 

6.   강하고 담대해라 왜냐하면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들의a 조상들에게 주리라 맹세한 이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해야해야 하기 때문이다

7.   오직 강하고 매우a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b 모든 가르침c(율법)대로 행하여 지키라 그것에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돌아서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리라. 

8.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행하여 지키기 위해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라. 그리하면 너의 길a에 성공할 것이며 너는 형통하리라b 

9.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해라 겁내지 말며 놀라 낙심치 말라 왜냐하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의 하나님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심이라. 

 

 

Textual and Exegetical Notes 

1 a. עֶבֶד יְהוָה]  LXX에 없음. 그러나 Syr. V. T.등에 있음. MT가 더 좋은 reading. 

E. Tov은 이 플러스가 신명기적인 영향으로 봄.  2절에서 LXX는 θεράπων 사용하는데 이것은 δοῦλος 와 대조로 servant라도 "free and honorable" 의 의미가 포함된다. Th. δούλου κυρίου 

2a  הַזֶּה LXX에 없음 

2b  לִבְנֵי יִשְׂרָאֵל]  LXX 에 없음 BHS-gloss

3a  רַגְלְכֶם] 일부 사본, LXX는 복수 (רגליכם)

3b  נְתַתִּיו] LXX에는 미래형으로 δώσω 표준 새번역은 LXX를 따라서 미래형으로 번역하나 그러나 이루어질 확실한 미래, 또는 하나님의 언약 율법 등은 아직 이루어진 과거가 아니라도 과거로 표현한다. (레 17:11, 신26:13 삿 7:9 등에 도 이러한 맥락에서의 완료형이 사용됨. 한글 개역과 같이 여기서는 과거로 번역되어야 함. 

4a  הַזֶּהLXX, V. Dt 11:7에 없음 BHS-지우라, Textual corruption (J.A. Soggin)

Small addition ( E.Tov) 

4b  כֹּל אֶרֶץ הַחִתִּים] LXX에 없음, BHS-gloss

4c  הַיָּם הַגָּדוֹל] LXX τῆς θαλάσσης τῆς ἐσχάτης  אחרון

신명기 11:24 과 비교하라 

WTT כָּל־הַמָּקוֹם אֲשֶׁר תִּדְרֹךְ כַּף־רַגְלְכֶם בּוֹ לָכֶם יִהְיֶה מִן־הַמִּדְבָּר וְהַלְּבָנוֹן מִן־הַנָּהָר נְהַר־פְּרָת וְעַד הַיָּם הָאַחֲרוֹן יִהְיֶה גְּבֻלְכֶם

 

5a  לְפָנֶיךָLXX, Syriac,V. 어미가 복수 לפניכם

*LXX는 신 11:25의 어미와 일치시킴 .

6a  אֲבוֹתָם] 다수의 사본들 אבותיכם 너희들의 조상들

7a  מְאֹד LXX에 없음. E.Tov의견해는 MT의 addition으로 본다.

(강조하기위해)  같은절 안에서의 병렬을 맞추기 위한 시도로 보임.

7b  כּכָל־הַתּוֹרָה אֲשֶׁר] LXX에는 καθότι  (כאשר

7c  תּוֹרָה Tanakh에는 teaching 으로 번역하고 NASB, RSV에는law로 번역

LXX에는 빠졌는데 이것은 MT의 후대 삽입설에 대한 논란을 야기시키는 근거가 된다. 

8a  דְּרָכֶךָ]  LXX , Targum 복수로 דרכיך

8b  תַּשְׂכִּיל תַּשְׂכִּיל 의 의미가 BDB에는 성공하다란 뜻으로 정의하고 있는데 (p.968b이에 따라 많은 영어번역 (NASB, RSV등)은 ‘success’ 로 번역한다. 

שָׂכַל이 성공하다, 형통하다 등의 뜻으로 쓰인 경우 (BDB 참조): 수1:8, 삼상18:5,14, 18:15, 사52:13, 렘10:21 , 20:11, 23:5, cf. 왕하 18:7, 잠17:8 

cause to prosper 신 29:8, 왕상2:3

LXX는 많은 경우 συνίημι  to understand 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히브리어 שָׂכַל을 어근 번역한 것이다.[1] 

개요

여호수아는 모세의 시종이었는데, 모세가 죽자 그의 뒤를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끌어 들여서 유업으로 받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다. 이 사명으로 인해 그는 당연히 많은 부담을 가지고 있었으나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잘 감당하도록 그를 격려하시고, 용기를 주신다. 하나님이 그에게 세 번이나 “강하고 담대하라 (חֲזַק וֶאֱמָץ)고 말씀 하시고 계신다구원은 받았으나 아직 들어갈 땅에 대한 과업은 성취되지 않았다. 하나님의 위대한 종 모세는 죽었다. 이스라엘은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서 답답할 수 밖에 없다. 모세 같은 위대한 인물이 이끄는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이 지금 이곳까지 나오는데 무려 40년이 걸렸다. 앞으로 더욱 어두워 질 수 있는 미래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세워서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위해서 새 시대에 새일꾼을 세우시고 언약과 사명을 주신다. 그리고 감당할 힘을 주시는 것이다.  

 

주해

1) 하나님의 맡기신 사명은 계속된다

1절.  주의 종a 모세가 죽은 후에 주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주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성경에 주의 종(עֶבֶד יְהוָה)’는 모세에 대한 특별한 용어이다. 구약에 20회 언급되는 표현인데 이중 모세를 위해서 18회가 언급된다(신34:5, 수1:1, 13, 15, 8:31, 33, 11:12, 12:6, 13:8, 14:7, 18:7, 22:2, 4, 5, 왕하18:12, 대하1:3, 24:6). 이외에 여호수아의 죽음의 때에 그를 위해서 단 두 번 언급이 되었을 뿐이다(수24:29, 삿2:8). 고로 이 호칭은 아주 영예로운 호칭인 것이다. 

           모세가 죽은 후에도 사명은 계속된다. 모세는 그의 시대에 그의 사명을 다하고 나아가고 그 후의 시대에 하나님은 새로운 일꾼을 세워서 또한 사명, 곧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게 하시는 것이다. 각 사람은 자기시대의 사명이 있다. 이것을 알 때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은 특정인 한사람으로 모든 것을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각시대에 하나님의 일꾼을 세워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신다. 

 

2하나님의 언약은 변함이 없다.

2-4

2.   나의 종 모세가 죽었으니 지금 일어나서 이 요단을 건너라 너와 이 모든 백성은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3.   내가 모세에게 말한 대로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곳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다. 

4.   광야에서부터 그리고 이 레바논과 큰 강 유프라데스강까지 헷족속의 모든 땅 과 해지는 쪽(서쪽)으로 큰 바다까지가 너희의 경계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대한 경계 곧 동서 남북의 지경을 보여주셨다. 이 약속은 창세기 15:18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라는 주님의 약속의 말씀의 반복이다. 그리고 모세에게 분명히 반복적으로 말씀하셨다. 

11: 24 너희의 발바닥으로 밟는 곳은 다 너희의 소유가 되리니 너희의 경계는 곧 광야에서부터 레바논까지와 유브라데 강에서부터 서해까지라

그리고 지금 그 말씀하신 대로 여호수아에게 똑같이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변함이 없다. 앞으로의 미래 세대에 대하여 많은 우려가 섞여 나오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변함이 없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 가득하게 될 것이다(합2:14). 이것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최종적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주었다] 하나님은 특히, 3절 말씀에, 이 땅은 하나님이 이미 내가 그것을 주었다(נְתַתִּיו네타티브)라고 말한다.[2] 아직도 들어가 취해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지만, 완료형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히브리어 용법은 앞으로 이루어질 확실한 미래를 완료형으로 표현한다.[3] 너무나도 확실하기 때문이다.  실로 이것은 “이미와 아직”의 사이의 뉘앙스다. 아직 취하여야 할 미래의 일이지만, 소유권은 이미 이스라엘에게 넘어왔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 언약을 받은 자가 순종하여 나아 가기만 하면, 주시기로 하신 은 이미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위대한 영적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한편 성경은 3절에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곳을 내가 너희에게 주었다고 하신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이 발바닥으로 밟는 행위가 있어야 함을 암시해 주기도 한다. 아무리 약속이 굳게 되어 있어도 그것을 받기 위해서 그곳에 들어가는 수고를 감당해야만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아무리 하나님이 약속 가운데 이미 주셨어도 내가 취하지 않고 받지 않는다면 결코 내 것이  수 없는 을 의미하기도 한. 그러므로 지도자는 먼저 확실한 비이 있어야 한다. 여호수아가 담대하고 강해야 할 부분은 이 비전과 사명에 있어서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 것이다. 그가 목표를 잃어버리고 흔들리면 이스라엘에게 이미 주어진 그 약속의 땅은 결코 얻어지지 않을 것이다. 

 

4절. 광야에서부터 그리고 이a 레바논과 큰 강 유프라데스 강까지 헷족속의 모든 땅b과 해지는 쪽(서쪽)으로 큰c바다까지가 너희의 경계가 될 것이다. 

           헷족속의 땅은 고대 소아시아지역에 흩어져 있던 헷족속(Hittite empire기원전 약 1680-1190)의 땅을 의미한다. 그들의 땅이 대략 유프파테스 강에서 애굽의 경계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시기에는 그들의 제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 민족만 여기 저기 흩어져 살 뿐이었다 (WBC. T.C. Buttler 참조)구약성경에서 동서남북의 표기 방법은 약간 특이하다. 동쪽은 앞쪽(קֶּדֶם 10:30)’ 또는 해뜨는 쪽(מִזְרָח 민32:19)’이고 서쪽은 해지는 쪽(מְבוֹא הַשָּׁמֶשׁ)’ 또는 큰 바다쪽(הַיָּם הַגָּדוֹל)’으로 묘사된다. 큰 바다는 지중해를 의미한다(The Great Sea). 고대 근동에 지중해는 거대한 바다로 인식되었다.  

 

3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하실 것이다.

5절 너의 사는 날 동안 어느 누구도 네 앞에 마주서지 못할 것이며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같이 너와 함께 하고 내가 너를 버리지도 않을 것이며 너를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 

 

너의 사는 날 동안 어느 누구도 네 앞에 마주서지 못할 것이며] 히브리어 본문에 לֹא־יִתְיַצֵּב אִישׁ לְפָנֶיךָ כֹּל יְמֵי חַיֶּיךָ  (로 이트야쩨브 이쉬 레파네카 콜 여메이 하예카)는 ‘네 일생동안 아무도 (대적하려고) 네 앞에 진을 치고 서지 못하리라 는 것이다. 여호수아가 두려워 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나안의 용기 있는 자들과 거대한 자들과 전쟁에 익숙한 자들이었을 수 있다 (민 13:28, 31-33). 그러나 막상 여호수아가 수2장에 정탐꾼을 보냈을 때, 라합의 입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던 바는 가나안 사람들의 마음이 이미 다 녹아버렸다는 것이(수2:9). 아직 전쟁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모두 준비하셨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수 5장에 한걸음 더 나아가 보니, 하나님은 이 전쟁을 위해서 하늘의 군대장관을 보내주신다. 이길수 밖에 없는 전쟁이 아닌가? 드디어 수 6장에 가니 여리고 성이 무너지게 하셨다. 한마디로,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계획 하셨으되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확인해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신 것이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한 걸음씩 이것을 확인하게 된다.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같이 너와 함께 하고 내가 너를 버리지도 않을 것이며 너를 떠나지도 않을 것이다.여호수아에게 이 말보다도 더 든든하게 해 주는 말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여호와의 종 모세(에베드 아도나이)’와 함께 계셨던 것 같이 이제 여호수아와 함께 계시겠다고 하시지 않는가? 여호수아는 그가 모세의 시종으로 있었던 오랜 시간 동안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시던 모습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시내산에서도 그는 모세 외에는 하나님 가장 가까이 올라갔으며 그는 모세의 얼굴에 광채를 보았으며, 그는 반석에서 나는 물과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보았고,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모세가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런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은 함께 해 주시겠다고 하신다. 

 

4사명감에 강하고 담대하라

6절. 강하고 담대해라 왜냐하면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들의a 조상들에게 주리라 맹세한 이 땅을 기업으로 받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하고 담대하라(חֲזַק וֶאֱמָץ)성경에 “강하고 담대하라”는 표현은 종종 나오는데 아주 중요한 일이 있을 때 마다 언급하고 이로써 용기를 주고 있다. 예를 들면, 

모세가 여호수아를 지명하고 부탁할 때 이 말을 한다

신명기 31: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또한 다윗이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것을 부탁하며 역시 이 말을 했다.[4] 

역대상 22: 13 그 때에 네가 만일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든 규례와 법도를 삼가 행하면 형통하리니 강하고 담대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지어다 

이 강하고 담대함은 무엇인가? 어떤 면에서 어떻게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가? 강하고 담대하다는 것은 그냥 마음만 굳게 먹으면 된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나님이 6절에서 처음 강하고 담대하라는 말씀을 하신 것은 여호수아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생각할 때 그가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여호수아 지도자로써의 사명을 막중히 깨닫고 인도해야 하는데, 강하고 담대하여서 결코 그 사명이나, 방향을 잊어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방향을 잃으면, 선장이 키를 놓치면, 그 때부 배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무엇보다 자기의 사명을 깨달아야 한다. 여호수아는 무엇을 깨달아야 하는가? 그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모세에게 명하여서 이곳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같은 사명을 맡기시는 것이다. 그것은 위2-4절에 언급된 대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땅으로 인도해 나가는 것이다. 

5) 하나님의 말씀에 강하고 담대하라

본문에 두번째로 강하고 담대하라고 외치는 말은 7-8절에 나온다.

7오직 강하고 매우a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모든 가르침(율법)대로 행하여 지키라 그것에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돌아서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리라. 

8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행하여 지키기 위해 그것을 주야로 묵상하라. 그리하면 너의 길a에 성공할 것이며 너는 형통하리라 

 

여호수아가 비전을 담대히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이 큰 사명을 감당하는데 여전히 마음이 약해질 수가 있다. 왜냐하면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별명이 붙은 위대한 지도자임에 비해 여호수아 자신은 상대적으로 위축되기 쉬운 약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오랜 세월 동안 모세의 시종이 아니었던가? 그런 그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총회 앞에 서서 그 많은 백성을 순종하게 하며, 이 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아무 대책도 없이 무조건하고 가라, 정복하라, 이기라하시지 않는다. 우리 주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여 전도하게 할 때도 먼저, 귀신을 쫓는 권세를 주시지 않았던가(눅9:1-2). 하나님은 여기서 한가지 특이한 방법을 보여주고 계신다. 그것은 율법을 잘 지키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 묵상하고, 다 지라는 것이다. 이 방법은 확실히 이상하게 여겨진다. 여호수아가 막상 필요한 것은, 백성들의 존경심이나, 또는 칼  쓰는 무사들, 뛰어난 전쟁전략, 또는 장차 긴 전쟁에 대비한 풍성한 양식과 물, 무기 등일 텐데, 하나님은 여기서 전혀 새로운 방법을 가르쳐 주고 계신다. ‘율법을 잘 지켜 행하면 형통하리라는 것이다. 이 방법이 혹시 비 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우리는 누구나 현실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인 방법을 원한다. 여호수아도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주시는 방법은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하나님의 율법 순종을 통한 방법과 전쟁에서 이기고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는 실제적인 현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 일차적인 논리로 보면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사실, 하나님의 방법은 가장 강하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인간의 논리로 보면, 잘 이해가 안가도, 하나님의 이 말씀은 율법을 순종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함께 해 주시고, 능력을 주신다는 약속이므로 하나님의 제안한 방법은 얼마든지 현실적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싸움은 하나님이 다 하시는데, 하나님이 그러실 수 있도록 네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순종은 곧 하나님을 일하시게 하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그의 종들이 순종하는 한, 왕벌도, 우박도, 불도, 지진도, 천군천사도, 얼마든지 보내실 수가 있는 분이 아니던가? 

        여호수아는 전쟁이 위에서 결정된다는 것에 대한 체험이 있는 사람이다. 출 17:8-16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결정은 언덕 위에서 모세의 팔이 내려오고, 올라 는 결과에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이것을 실천했다. 여호수아 5장에 여리고와 결전을 벌이기 직전, 여호수아는 백성들과 더불어, 할례를 행하고, 그리고, 유월절을 지키는 일을 볼 수 있다. 적군의 앞에서 스스로 몸에 상처를 내는 할례를 행하는 일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나, 그러나 그것은 바보같은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함을 사용할 수 있는, 말씀에의 순종의 행동이었다. 그리하여 여리고 성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벽이 무너지고 그것을 멸망시키지 않았던가? 

           하나님의 방법이 우리의 방법과 다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리고 그것을 순종하며 나가는 것임을 알자. 그리하면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는 것이다. 성경은 얼마나 자주 하나님 그가 우리의 힘인 것을 말해주고 있는가(느8:10, 렘16:19)

그러므로,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율법의 말씀을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해야 한다. 눈으로 입으로 늘 연습하고 암송하고 자주 읽어야 한다. 주야로 묵상한다는 말은(וְהָגִיתָ בּוֹ יוֹמָם וָלַיְלָה), 계속 그 말씀을 반복하여 읽는다는 말이다. 읽고, 묵상하고, 행하면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해 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적인 축복과 승리의 비결이다(계1:3을 보라). 그리하면, 우리에게 기신 사명을 분명히 감당해 낼 수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는데 강하고 담대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곧 사명을 이루는 성공의 지름길이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게 하는 큰 능력의 역사를 만드는 방법이 되기 때문이다.

 

너는 형통하리라 (וְאָז תַּשְׂכִּיל)] ‘형통하리라’ (תַּשְׂכִּיל  -타스킬): 많은 영어번역(NASB, RSV등)은 BDB의 제시하는 바와 같이 ‘성공하다’ (p. 968b란 뜻으로 ‘success’ 로 번역하나 칠십인역(LXX)은 6절과 8절에 두번이나 타스킬을 συνήσεις (<<>συνίημι, to understand)로 번역하고 있다. 이 번역은 히브리어 שָׂכַל (솨칼)의 또 다른 어근적의미understand (TDOT)에 기인했음을 알 수 있는데, 나름대로 깊은 영적 의미를 부여한 것을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나가면, 그 길이 평탄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으로써 누릴 수 있는 지고의 영광이 아닐 수가 없다. 하나님의 형통케 하심,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면 그 다음에 나오는 결과는 무엇인가? 그것은 너희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리라가 아닌가? 하나님은 그의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오직 그분이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신다. 그분은 이 모든 것을 행하시는 분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그가 바로 만왕의 왕이심을 모든 민족을 통해서 인정받기를 원하신다. 에스겔서에만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가 64번이나 반복적으로 강조되어 있다(참조: 출11:7, 14:18, 16:12, 사60:16, 겔6:13-14, 7:4, 9, 27, 11:0, 12,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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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6) 두려워하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세번째 하나님이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심은 9절에 있다. 

9절.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해라 겁내지 말며 놀라 낙심치 말라 왜냐하면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의 하나님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심이라. 

지도자가 가질 수 있는 위험이면서 동시에 피해야 할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은 지도자를 한없이 나약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함께 할 터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인간은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하기 쉽다. 동시에 모든 것에 대한 안전을 보장받고 싶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시지 않기 때문에 지도자는 두려워할 수 있고 약해질 수가 다. 

두려움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 아니다. 주인이 주시는 것이 아닌 것을 받아 들고 좋아한다면, 주인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딤후1:7). 때로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모든 것을 보여주시지 않음으로 인해서 너무 답답해야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신실한 분이시니까 그분이 함께 하겠다고 하시면 그런 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 그것이 바로 우리를 승리케 해준다. 그것이 두려움을 없게 해 준다. 

 

결어

우리는 아직 감당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고,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는 우리를 주춤거리고 나약하게 만들 때가 많다. 미래를 내다보면 더 어두움의 그림자가 짖다. ‘다음 세대가 다른 세대가 될까 심히 두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려운 미래가 예상된다 하더라도 여호수아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세대에 새로이 용기를 갖게 한다. 군인으로 치면 오합지졸 같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의 높은 성, 강력한 군대를 맞싸워 결국은 이겨내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기업을 기어이 물려받게 한 여호수아, 그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모세와 같이 여호와의 종이 될 때에 그는 결국 사명을 감당해 냈다. 그의 당면한 세대와 문제는 어쩌면 오늘날 보다 더 강퍅한 세대를 이끄는 일이었고 오늘날보다 더 힘든 싸움을 싸워야 하는 세대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도 상황적으로 여호수아의 시대와 많은 것에 유사함을 본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분명히 새겨야 할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원리는 동일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하나님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는가?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은 변함이 없으시지 않는가? 아직 그의 명하신 명령은 남아 있지 않은가? 하나님 그분을 의지하고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사명에, 말씀을 지킴에,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면 희망이 있다. 그렇게 지금 세대의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을 뿐 아니라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담대히 외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세대를 염려하지 말고 지금의 세대를 염려하라. 내일을 위한 준비는 지금해야 하지 않는가? 여호수아가 모세를 보고 사명을 잘 감당했듯이, 지금의 세대가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해 내면 내일 다음세대는 희망이 있다. 

김하연 목사(대구삼승교회, Ph.D. 예루살렘 히브리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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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9:8              wlykft                      sunh/te

 32:29           wlykfy                      sunie,nai

 1:7                      lykft                      sunh/|j

 1:8                      lykft                      sunh,seij

 18:14           lykfm                      suni,wn

 18:15           lykfm                      suni,ei

왕상2:3                      lykft                      suni,h|j

왕하18:7           lykfy                      sunh/ken

이외에도 시2:10, 14:2, 36:4, 41:2, 53:3, 64:10, 101:2, 106:7, 119:99, 잠 Pro 21:11, 12, 

52:13, 9:23, 23:5, 11:35, 12:3, 5:13 등. 

 

[2] NASB, “I have given it to you.”

[3] 이루어질 확실한 미래, 또는 하나님의 언약 율법 등은 아직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도 완료로 표현한다. 참고, 삿 7:9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נְתַתִּיו בְּיָדֶךָ).” 그날 밤에 이루어질 일이라도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완료형이 사됨. 

[4] 이외에도 이 강하고 담대함의 표현은 장차 심판주의 특징이기도 하다. 사 28:2 “교만한 에브라임을 심판하실 때 주의 강하고 담대한 자가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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