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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 희생을 자처한 저항과 연합이 빛난 운동이었다3.1운동 100주년 기념 사설

지난 한 해 동안 미래교회 포럼과 코닷은 줄기차게 삼일운동 백 주년에 우리 한국교회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였다. 우리가 삼일운동에 관하여 관심을 두는 근본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도대체 어떻게 전체 인구의 1% 남짓한 그리스도인들이 민족사적 대 사건의 전면에 나설 수 있었는가?” “한국교회의 신학적 사고가 영글지도 않은 시점에 어떻게 정치적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만세 운동에 그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었는가?” “이 시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물고 싶은 일이 많고, 묻고 또 묻기를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삼일운동 당시 한국교회의 특징을 몇 가지 찾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백 년 전 한국교회는 수적으로 매우 작은 교회였지만 당시 큰 종교집단인 천도교나 불교보다 훨씬 많은 그리스도인이 만세 운동에 앞장섰음을 알 수 있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 이외에서 일어난 7곳의 만세 운동은 전부 교회가 중심이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당시에 소수에 불과한 한국교회 안에 오산학교를 설립한 남강 이승훈 장로와 같은 민족의식이 분명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이 준비되어 있었고, 나라를 위해 자신을 내어놓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3.1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의 지도자 가운데 절반 가까운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처음부터 민족의 역사와 함께 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민족을 지극히 사랑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뿐 아니다. ‘교회가 정치적인 행위에 직접 가담할 수 있는가?’와 같은, 아직도 논쟁거리가 되는 신학적 주제에 감리교와 장로교 목회자들이 거뜬히 합의하였고, 천도교와 연대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는 데까지 이르는 용기를 보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공교회 전체가 삼일운동에 참여하였다는 기록은 없지만, 장로교 제8회 총회에 김선두 총회장이 구속으로 참석하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는 것은 가히 한국교회 전체가 만세 운동에 나섰다고 말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삼일운동 역사를 보면서 오늘 우리가 생각할 점은 무엇인가? 어떤 삶의 지침을 얻어야 ‘인간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다.’라는 역사적 역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굳이 역사를 알거나 공부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역사에서 배우는 것 같지 않다. 요즘 지나치게 자주 사용되는 ‘내로남불’이라는 용어가 바로 이 역설의 진리를 잘 말해주고 있다. 뜨거울 정도로 삼일운동 백 주년을 말하고 교단마다, 지역마다 백 주년 기념식을 하고 있지만, 한국교회는 무엇을 배우고 있기는 한가?

첫째, 삼일운동은 무엇보다 사회적 악에 대한 저항운동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제는 한마디로 흉악하였다. 나라를 병탄(倂呑)하여 우리의 국토를 강탈하였으며 주권을 빼앗았다. 젊은 사람들을 강제로 험한 일터로 징용해갔으며, 일본 군인의 성적 노리개로 삼고자 십 대 이십 대의 딸들을 위안부로 끌어갔다. 이렇게 우리 민족을 참혹하게 만드는 일제의 만행을 그리스도인들은 그냥 보아 넘기지 않았다. 극렬하게 저항하였다. 삼일운동이 일어난 배경이다.

질문이 생겨난다. 우리 한국교회는 3·1정신을 계승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반성경적, 사회적 악에 대하여 얼마나 과감하게 저항정신을 발휘하고 있는가? 3·1정신은 아무리 악의 힘이 거세어도 결코 눌리지 않는 확고한 저항정신을 가져야 할 것을 가르쳐주고 있지 않은가?

요즘 동성애를 중심으로 하는 젠더 이데올로기 전쟁에 한국교회의 평신도 리더들이 대거 앞장을 서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교회 안팎에 넘쳐나는 악한 일들에 대한 한국교회의 저항은 미미하다. 세속 사회조차 고개를 돌릴 정도로 연일 끊임없이 교회 안의 부끄러운 모습이 터져 나오고 있으니 세상의 악에 대해서는 입도 열지 못하고 있다. 교회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교회가 연합하여 최저수준의 도덕률도 지키지 못하는 목회자들은 완전히 퇴출시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교회의 분열은 죄악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완전히 빼앗아버렸다. 삼일운동 백 주년에 각 교단마다 악한 행위를 하나님의 은혜라는 이름으로 뒤덮는 온갖 종류의 구습에 저항하는 교회가 되기를 다짐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가 삼일운동에서 배워야 할 것은 자기희생을 통한 연합정신이다. 삼일운동 때에 장로교와 감리교 목회자들이 정치적 결단에 대한 신학적 입장이 다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을 합쳤고, 나아가 기독교 천도교 불교의 세 종파가 나라 사랑이라는 대의에 흔쾌하게 뜻을 같이하였다. 지독하게 분열주의적인 한국 사회와 교회가 반드시 배워야 할 삶의 원리이다. 갖은 이유를 들어 교회의 분열을 합리화하거나 찢겨진 상황을 예사로 여기는 사람들이 교회 안팎에서 권세를 누리거나 자리를 탐하는 일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얻는 삼일운동의 교훈은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심을 믿고 뒤집힌 역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던질 수 있는 헌신적인 사람들이 대거 나타났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삼일운동은 역사적 의식이 분명한 남강 이승훈 장로 도산 안창호 백범 김구를 비롯하여 임시정부 대통령과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이승만, 임정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김규식 길선주 신석호 함태영 등 기라성같은 독립운동가들이 모두 기독교회의 가르침을 받아 신실한 그리스도인들로 탈바꿈하였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삼일운동에 앞장설 수가 있었다.

오늘 우리 한국교회는 성경의 진리를 거부하는 악한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저항정신을 기르고, 자기 아집과 주장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큰 뜻을 따라 하나 되고, 세상 명예와 부귀를 버리고 겸손히 희생하고 헌신할 줄 아는 지도자들이 앞장설 수 있도록 연합단체나 각 교단의 모든 기구, 신학교의 모든 체제와 제도를 완전히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에 하나님의 한없으신 긍휼이 임하기를 소원한다.

 

코닷  webmaster@kscoramd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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