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마게도냐와 헬라를 다니다.(사도행전 20:1-6)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그 지방으로 다녀가며 여러 말로 제자들에게 권하고 헬라(빌립보?)에 이르러 거기 석 달 동안 있다가 배 타고 수리아로 가고자 할 그 때에 유대인들이 자기를 해하려고 공모하므로 마게도냐를 거쳐 돌아가기로 작정하니 아시아까지 함께 가는 자는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및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바울과 누가에게 애정 어린 빌립보교회

빌립보라는 말은 '빌립에 속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알렉산더 대왕의 부왕인 필립 2세가 건설한 마게도냐의 도시(행 16:12; 빌 1:1)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는 아시아와 로마를 잇는 주요 도로 ‘에그나티아 가도’(Via Egnatia)에 인접한 교통의 요지인데, 마게도냐의 빌립 2세가 이 근방에 막대한 매장량의 금광이 있음을 발견하고 금광 개발을 위해 이곳에 성읍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B.C. 168년 이곳은 신흥 로마 재국의 통치하에 놓이게 됩니다. B.C. 42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시저의 암살자 부르투스와 카시우스의 군대를 성읍 근방에서 격파한 후 군인들을 이곳에 주둔시켰습니다. B.C. 31년 옥타비아누스가 악티움 해전에서 안토니우스를 물리친 후에도 군인들을 이곳에 정착시킨 곳입니다. 

그리하여 이곳 빌립보는 로마의 식민 도시요, 퇴역한 로마 군인들의 안식처로서 ‘콜로니아 줄리아 필립펜시스’(Colonia Julia Philippensis)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곳 출신들은 대부분 로마 시민권자가 될 수 있었고, 시민권자로서의 고유한 권한(황제에게 호소할 권한, 특별한 이유 없이 신체를 구금당하지 않는 권한 등)과 공물, 세금 면제 등의 특혜를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로마 지방 총독의 간섭 없이 자치적으로 행정을 꾸려갈 수 있는 행정 특구의 혜택도 받았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2차 선교여행 때 이곳에서 매를 맞고 옥에 갇히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파하였는데, 우리는 그가 갇혔던 감옥을 확인하면서 가슴이 뭉클했습니다.(행16:22-23)

빌립보하면 빼놓을 수 없는 여인이 있는데, 강(빨래터?)가에서 바울을 만나 회심했던 자색 옷감 장사(자주 장사) 루디아입니다. 

그녀가 안식일에 강가에서 바울을 만나 복음을 받고 빌립보 지역에서의 첫 성도가 되었습니다(행 16:14-15). 바울은 훗날 3차 선교여행 때도 이곳을 방문하며 교회를 돌보았는데(행 20:6), 그때마다 빌립보교회는 헌신적인 노력으로 바울의 복음 사역에 물심 양면으로 큰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빌 1:3-5; 4:10, 14-18)

그런데 빌립보서는 과연 언제 어디서 기록했는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본 서신 역시 다른 옥중서신과 마찬가지로 로마 옥중에서 기록된 것으로 보는 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집니다. 왜 여러 가지 설이 나도는가 하면 빌립보서가 옥중 서신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옥에서 썼다면 과연 어느 감옥이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 감옥설, 가이사랴 감옥설 등의 견해도 있고, 심지어 사도 바울이 에베소 감옥에도 갇혀 있었다는 가설에 근거하여 에베소 감옥설도 제기됩니다. 

그러나 빌립보 감옥에서는 투옥 기일이 며칠(혹은 하루)에 지나지 않습니다.(행16:18-40) 또 조속한 석방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한 빌2:24의 말씀에 비추어볼 때도 그렇고, 또 가이사에게 재판을 청원한 상태에서 구금되어 있던 가이사랴 감옥설도 앞뒤가 맞지 않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가이사랴 감옥에서 석방된다 하더라도 바울은 다시금 로마로 가서 황제의 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갇혔던 감옥 터

이렇게 본다면 결국 본서는 로마 감옥에 있던 2년 기간 중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고, 그렇다면 본서의 기록 시기는 옥중 생활 말기인 A.D. 63년경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누가를 빌립보에 머물러 목회를 하게 하였고 3차 전도여행 때 동행하여 로마에 까지 갔다고 합니다. 루디아와 함께 특별한 애정을 보였던 빌립보교회이기에 누가를 통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그 사정을 안 바울은 빌립보서에 여러 모양으로 권면하였다는 것이 합당하다고 여겨집니다. 교회를 세우는 일에 혼신을 다했던 루디아도 교회가 여러 마음으로 혼란스러웠을 때 많이 어려워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4:2-3절의 말씀으로 교회를 권면하였다고 보여집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 등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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