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와 순례

은퇴와 순례

 

김윤하(참빛교회 담임목사)

몇 년 전에 사람이 사람답게 늙어야 한다는 “Well-aging”이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동안 “잘 살고 잘 죽어야지”라는 말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잘 늙어야지” 하는 말이 내게는 낯설기도 하면서 새로운 인생관으로 다가왔습니다. 

46년간에 목회 사역을 마치고 은퇴하고 보니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야 할지가 가장 큰 숙제로 다가왔습니다. 은퇴하기 전까지는 내가 사역해야 할 현실이 너무 무거웠기에 은퇴 후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깊은 기도와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막연하게 은퇴하면 편안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잠겨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어느 분이 목사님은 은퇴하는 것이 너무 아까운 나이라고 말했는데, 내 나이 67살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직은 내게 일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어떤 통계에 보니까 세계 역사의 업적을 보면 35%가 60~70대가 이룬 것이고 23%는 70~80대에 성취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6%는 80이 넘어서 성취한 것인데 결국 64%가 60세 이상의 노인들이 이루었다고 합니다.

이 통계를 보면서 나도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이 다가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결단한 것이 주님의 사역 현장인 이스라엘을 순례하는 계획을 세우고 은퇴식 후에 바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예전에 수도사들이 순례길을 떠나는 것은 자신을 성찰하는 것이 핵심적인 요소였습니다. 나도 순례의 길을 걸으면서 과연 나는 누구인가? 어떤 존재이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주님의 십자가의 길에서 답을 얻고자 합니다. 그 많은 세월 속에서 자신을 바로 알지 못했느냐? 라고 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동안은 목사로서의 존재감을 인식하면서 살았지 나라는 존재감에는 별로 깊은 통찰을 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성도들을 목회하는 목사가 아니라, 나를 목회하는 사역자로서 먼저 출발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와 순례의 연속성은 목회가 교회를 중심으로 성도들을 섬기는 것이라면 순례는 나를 섬기는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참빛교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사역을 마치고 이제는 나의 영성과 인격을 온전히 다듬어서 영향력을 키워가는 사역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마리아 지역에 있는 벧엘, 야곱이 묶었던 광야 @ 사진 김윤하 목사

나아가서 순례의 길은 이제부터 주님의 일에 전적으로 나를 던지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의 뜻과 더 큰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찾아야 합니다. 한 사람의 목사가 은퇴하여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순례를 통하여 절박한 하나님 나라의 일을 알고 자신을 던질 수 있다면 이것이 멋진 종말의 부름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코, 늙어 가고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well-aging, 곧 나이 듦의 기술을 익혀가며 멋지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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