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츠 프리드리히는 독일 오페라 연출가이다.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동베를린의 실험적인 극장에서 출발해 자신의 정신성과 예술세계를 서베를린의 권위 있는 극장에서도 성공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관객들을 감동시키는 오페라를 연출하려면 오페라의 악보와 대본에 숨어있는 매력의 근원을 분석해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 괴츠의 삶의 모토는 이러했다. "무대는 '생계를 위한 장소'가 아니라 '인생과 행복을 거는 곳'이어야 한다."

무대는 생계를 위한 장소가 아니다. 무대는 겨우 육신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수단이 아니다. 내 인생을 걸고, 나의 진정한 행복을 꿈꾸면서 날마다 오르고 또 올라야 하는 산봉우리다. 이런 마음을 상실한 채 무대에 오르면 그 때부터 무대는 신선함과 신성함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그래서 괴츠는 말한다. "자신의 인생을 그 속에 쏟아붓는 사람이 아니라면 무대에 올라서는 안 된다."

목사인 나에게 섬뜩할 정도로 날카로운 화살이 돼 날아온다. 주일도 아닌 평일인 오늘 하루 네 번의 설교를 했다. 네 번의 설교에 인생을 쏟아붓지 못한다면 차라리 설교단에 오르지 말아야 한다는 괴츠의 육성이 선명하게 들리는 듯하다. 더욱이 목회자에게 설교단은 무대가 아니다. 관객들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연출하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그리스도의 피 묻은 제단이다. 감히 생계라는 말을 꺼내기조차 두려운 성소이다. 적어도 설교자라면 설교에 신앙 인생을 담보하고, 하나님께 받은 행복의 끝자락이라도 목숨 바쳐 성도들에게 나누어야 하는 영혼의 처소이다. 그래서 나는 늘 부끄럽다. 숨고 싶어 어쩔 줄 몰라 한다. 설교자로 거룩한 처소에 오를 때마다 "나는 아닌데, 난 이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사람인데"라고 되뇌며 육중한 발걸음이 되고 만다.

설교자의 무대에는 그래서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야 한다. 물 붓듯이 부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이미 끝나버린 무대다. 서서히 조명이 꺼져가는 무대가 되고 만다. 오늘도 그분 은혜의 옷자락을 만지고 싶다. 무대에 선 연출가가 아니라, 관객의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물결에 휩싸이고 싶은 것이다.

한 지휘자는 이렇게 말했다. "알다시피 우리는 평가받기 위해 음악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 설교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평가받기 위해 설교단에 오르지 않는다. 성도들의 평가에 내 설교를 맡길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에 완전히 덧입혀져야 한다. 오늘도 나는 포사이드 목사님의 말에 위로를 얻는다. "여러분의 신앙은...그를 실망시킬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의 신앙에 실망하지 않으십니다." 결국 그 분의 은혜다.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으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그 은혜로 나는 오늘도 독자 여러분과 만나고 있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