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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의 아레아바고에서 바울을 보다

바울이 아덴에서 전도하다(행17:15-21)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회당에서는 유대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장터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 어떤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 새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 말쟁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냐 하고 어떤 사람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러라.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아덴의 아레아바고 언덕

아테네 아레아바고에서 바울을 보다

아덴(Athens)은 고대 헬라 도시 국가 연맹 중 하나였던 앗티카의 수도이며 현대 그리스의 수도입니다. 이 도시명은 그곳 수호 여신 ‘아테나’(싸움과 지성의 여신. 로마 신화에서는 ‘미네르바.’)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덴은 지중해에서 약 48㎞ 떨어져 있는 아크로폴리스 바위 언덕에 세워진 요새화된 성채로서, 고대 아덴에는 최소한 25,000명의 인구가 거주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아덴은 헬라의 철학과 예술 및 과학의 중심지요, 민주주의의 발상지로서 특히 고대 세계에 가장 유명한 대학 도시였습니다. 아덴(이하 아테네)은 지정학적으로 많은 외침(外侵)을 받아 정치, 군사적으로 숱한 정복을 당했지만, 그곳을 정복한 세력들은 예외 없이 그곳의 학문과 문화에 영향을 받아 융화되었습니다.

아레아바고에서 내려다 본 아테네 시

아테네에서 태어나 아테네에서 죽은 아테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에 석공의 아버지와 산파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습니다. 결혼은 하였지만 가정에 소홀한 그는 초대한 집에서 끼니를 때웠다고 합니다,

당시 아테네는 민주정의 정치형태였지만 수많은 노예들이 존재했습니다. 민주정의 세력과 스파르타 귀족주의 정파 간의 세력 다툼이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들과 무관하였지만 귀족주의 옹호자로 그들에게 정신적 무기를 제공하는 사람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 옛날 소크라테스가 갇혔다는 감옥

스파르타와의 전쟁에 패하고 민주정도 일시적으로 붕괴되었지만 다시 전복하여 민주정이 정권을 잡자 소크라테스는 신성 모독죄로 법정에 끌려 나왔습니다. 그의 철학은 그의 명의의 기록물로 남아 있는 것은 없지만 그의 제자 플라톤이 기록한 것을 보면 당시 그리스를 덮고 있던 수많은 신들을 인정하기 보다는 그는 이 세상에는 하나의 세계정신이 있고 모든 사물은 그 세계정신에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간다고 역설했습니다.

아레아바고 바로 아래 위치한 그리스 정교회

어찌 보면 이는 바울이 로마서 11:36절에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하신 말씀과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세계정신,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론은 유일신이신 하나님은 아닙니다. 그리고 불교의 윤회설과 비슷해 보이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세계정신, 이 주장으로 그는 결국 신성 모독죄로 고발되었습니다. 그러나 대개 정치적인 희생양이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합니다.

결국 사형을 언도 받았고 사면이나 탈출을 권했지만 그는 끝내 사약을 받았습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이보게 크리톤 우리는 아스클레파오스께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잊지 말고 꼭 갚게나”하고 숨을 거두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그가 주로 활동한 곳은 아고라였습니다. 아고라는 그리스식 민주주의가 직접 이루어진 공간입니다. 아테네의 시민들은 이곳에서 재판도 열고, 시장도 보고, 모여서 공동체에 관한 여러 가지 결정도 내렸습니다. 직접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장소이자 철학이 실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철학과 온갖 신들의 난장에 바울은 제2차 선교여행 중에 아덴을 방문하여 회당과 시장, 아레오바고 등지에서 복음을 전하였고, 또 새로운 가르침에 대한 관심이 있으면서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던 그곳 철학자들과 변론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교회를 세우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그의 아덴선교는 교회를 세우는 데는 실패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의회 의사당

우리는 그 아레아바고 언덕에 섰습니다. 그 옛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활동 하던 그 장소, 그리고 바울 사도가 섰던 그 장소에 우리는 섰습니다. 바울이 찾았던 아덴은 25,000명이 살던 도시였지만 지금 아테네는 약 4백만 명이 사는 대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리스 전체 인구가 약 1,100만 명 정도면 수도인 아테네에 인구가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옛날 바울의 외침을 상기하였습니다.

그 벽면에 한국 참전을 기념하는 기록이 보인다.

 

이 기사의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 등을 참고하였습니다.

 

 

천헌옥  choug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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