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선교사님의 슬픈 얼굴

 

김윤하(참빛교회 원로목사)

잘 늙기(Well-aging) 위한 순례길을 걸으면서 나는 한 여인의 얼굴을 거울처럼 바라보았습니다. 그분은 이스라엘에 온 지 십수 년이 지난 선교사님으로 우리 팀의 가이드로 수고하셨습니다. 그분의 본명이나 소속 교단이나 남편의 이름조차 묻지 않았습니다. 다만 남편 선교사님이 신장 수술한 지 12년이 넘어서 한계에 왔다고 병원에서 은근히 두려움을 준다고 했습니다. 건강이 자꾸 나빠지는 남편을 대신해서 생활을 꾸려가야 하는 절박한 상황 앞에서 그녀는 끈질기게 공부하여 이스라엘의 공식 가이드 자격증을 얻어 가이드로 일한다고 했습니다.

인제 와서 한국으로 들어올 명분도 연고도 없는 선교사의 애환을 푸념처럼 내뱉었습니다. 한국인도 아니고 이스라엘인도 아니고 도대체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가 많다고 했습니다. 첫날부터 나는 선교사님의 눈빛을 보면 가끔 흐르는 슬픔의 애가들이 들려왔고 희미한 안개 속으로 나타나는 찌든 삶의 고통도 보게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아내에게 그의 삶의 아픔을 털어놓은 것입니다. 아내의 눈물과 함께 나는 그녀의 슬픔에 무엇을 해야 하나 하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동행한 성도님들의 안위와 건강에 대해서 긴장을 놓지 않아야 했는데 더 큰 아픔이 내게 다가와서 계속해서 주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얼마의 달러를 아내가 몰래 쥐여주고 첫 번 예배 헌금을 선교비로 주고 얼마의 격려금도 주었습니다. 아내는 선교사님이 자기는 제대로 화장해 본 적도 없고 기본 크림만 바른다는 말을 듣고서 가져간 화장품 대부분을 다 드렸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 오면 꼭 전화하라고 말할 뿐이었습니다.

그녀도 꿈꾸었던 소녀 시절이 있었을 것이고, 행복을 꿈꾸며 가정을 이루고 특별한 소명으로 선교사의 길을 시작했을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소명 없이 이 험한 길을 출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직은 50대로 한창 선교 사역을 할 시간인데 생활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를 비판하기 전에 생존의 문제로 허덕이는 그 현실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그 순간 KPM 선교사님 중에 내가 만났던 수많은 얼굴들이 떠오르면서 슬픈 잔상이 흐르는 물처럼 지나갔습니다.

내가 알았던 것은 그 얼굴의 모습이 바로 나에게는 없는 것일까? 나라는 존재감에 대한 끈질긴 질문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면서 기쁨과 감격 없이 슬픔이 나를 억누르고 지나친 절제 속에서 지나온 나날은 아니었을까? 무던히 선교사님의 얼굴을 보면서 나의 자화상을 찾는 성찰을 했습니다. 이번 순례길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특별한 분을 친히 보여 주시면서 “너는 어떠했느냐? 정말 기쁨으로 사역했느냐?”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거울 앞에 내 얼굴을 보니 선교사님의 얼굴이 겹쳐졌습니다.

내가 누구를 피상적으로 보면서 비난이나 판단할 때는 항상 내게 그런 모습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그분의 슬픔을 보는 것은 내 속에 그분을 볼 수 있는 슬픔이 있기에 동일시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선교사님의 얼굴 속에서 나의 얼굴을 보면서 이제는 슬퍼하지 말고 기쁨과 감사를 얼굴에 심어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선교사님의 슬픈 얼굴은 하나님이 성지에서 보여 준 나의 존재감에 대한 또 하나의 메시지였습니다. 이제는 사역에 억눌렸던 모든 일을 벗어 버리고 내 심령이 자유함을 누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기쁨이 충만한 아내에게서 배워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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