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거리 정치 조짐,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중요한 덕성 중 하나는 역시 섬김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섬김을 위해서였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무엇보다 섬김의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 고신교회는 예수님을 따라 제대로 섬기기 위하여 자신의 삶을 던진 주남선, 한상동 목사님 같은 분들이 앞장서서 세운 교회이다. 그렇다면 우리 고신교회와 성도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섬김에 있어서는 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고신교회가 섬기는 자들이 모인 교회로 여겨지고 있는가?

1952년 처음 총노회로 모이고 총회로 커져갔던 당시에는 총회장을 하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없었다고 했다. 경선한 것이 아니라 추대를 받았다. 신학교 졸업기수대로 총회장을 하자는 소리는 나오지도 않았다. 할 만한 사람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선배보다 후배가 먼저 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한 기수에서 여러 명이 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랐다. 섬기는 일로 생각했기 때문에 총회장이 되었다고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경우도 별로 없었다. 교회도 작았으니 모두가 고만고만하였다.

그러나 세월 가면서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으려는 자세가 농후해지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뜯어보아도 자질이 없어 보이지만 꾸역꾸역 머리를 들이밀고 나서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총회장, 학교법인 이사장, 언론사 사장, 이런 자리는 이제 싸워서라도 얻고 싶은 감투가 되었다. 총회장이라는 이름으로 어디든지 가서 대접을 받고 으스대고 싶어 한다. 이상하게도 평소에는 겸손하던 사람들도 총회장이 되면 매우 권위주의적인 사람으로 변하기도 한다. 총회를 위한 헌신의 삶을 살았다고 말하기가 심히 어려운 사람들이 더 열심히 자리는 차지하고 싶어 한다.

언제부턴가 교회의 재정을 대접이라는 명목으로 선거운동에 쓰기 시작하였다. 밥 사고 차비 주고받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한다. 상대방을 헐뜯는 소리를 예사로 한다. 편 가르기, 편 만들기가 벌어진다. 단독 출마하는 것은 너무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역시 성경 말씀이 정확하다.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딤후3:1-2)

최근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회가 총회가 추천한 이사 네 명 중 한 명을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였다고 하여 화제가 되고 있다. 이 소식을 접한 총회 임원회가 총회의 명령을 준행하라는 지시공문을 내렸다고 한다. 관례로 이사회는 총회 추천 인사를 그대로 수용해왔다. 그러나 수년 전 현재의 총회장이 이사로 있을 당시에 김 아무개 목사를 거절한 예도 있었다. 물론 수개월 후에 수용하였지만, 이유는 밝혀지지 않은 채 사건은 묻혀버렸다.

이번에는 또 총회가 파송한 모 이사 후보가 이사회에서 선임이 부결되었다. 이런 일이 거듭되면서 몇 가지 의문들이 생긴다. “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던 일이 새삼 문제가 되는가? 과연 총회가 제청한 이사들은 무조건 받아야 하는가? 무조건 받아야 한다면 총회가 지시하는 것인데(총회 임원회는 이 일에 대한 공문을 보내면서 ‘지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것이 합당한 일인가?” 등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절차에 대한 질문보다 혹시 이런 일이 “패거리” 정치의 영향이 아닌가? 라는 의심 때문에 우려한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이사로 선임되는 정식 절차도 밟기 전에 김 모 목사가 이사회 서기를 맡도록 총회임원들 중 몇 사람들이 벌써 손(?)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말이 생각나게 하는 일이 있었다는 얘기다. 또 이 일 말고도 나쁜 의미의 정치적 행동을 하는 것이 드러나서 이런 인사가 들어오면 혹 이사회를 정치판으로 만드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염려하여 거부했다는 소식이다.

이사회가 아무런 이유 없이 네 사람의 추천받은 인물 가운데 유독 한 사람만을 부결시켰을까? 이사회가 총회가 파송한 이사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받아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이참에 총회와 학교법인 이사회의 법적 관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옛날에도 총회가 이사들을 선임하면 바로 그때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것으로 간주했고 법적인 선임은 나중에 이사회가 형식적으로 했다. 후에 이것이 문제가 되어 이사회가 큰 혼란을 겪은 적이 있다. 이런 혼란을 피하기 위해 어떻게 총회법과 실정법을 서로 조화시킬 수 있을지 연구가 필요하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것은 총회가 파벌이 나누어져서 대립하고 갈등하는 일은 더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다행히 근년에는 한동안 “계파 갈등”은 거의 없었다. 계파의 가장 큰 문제는 무슨 일을 할 때 옳으냐 아니냐보다 자기가 속한 계파의 유불리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거룩하게 이루어져야 할 교회정치가 세상처럼 패거리 정치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교단 안에 이런 좋지 않은 정치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서 우리는 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복음병원을 두고 위험하다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최저임금은 오르고 병원의 조건은 까다로워지고 강성노조의 이미지는 좀처럼 벗겨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병원을 오가는 사람들이 보는 곳에 비방성 인격 모독적인 현수막들이 7, 8개월째 덕지덕지 붙어있다. 창피스럽기 그지없다. 또다시 고신교회가 병원을 직접 경영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를 물어야 할 때가 아닌지 모른다.

병원의 문제 역시 다르지 않다. 의사 간호사 직원들이 한마음으로 섬김을 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처럼 섬기려 한다면 문제는 쉽게 풀릴 것이다. 섬김은 없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말세적 현상이 계속되는 한 고신교회, 이사회, 학교와 병원, 나아가 교회들의 고통은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맹성(猛省)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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