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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역사의 흔적을 가진 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고전어 하기아 소피아) 성당은 동로마제국 건축의 최고 걸작이자 정교회의 총본산이었던 곳인데,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한 후 마호메트 2세가 모스크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터키 공화국 수립 후 아타튀르크의 지시로 박물관으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1985 이스탄불 역사지구의 일부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명칭인 'Αγία Σοφία'는 '성스러운 지혜'(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의 형태로 세상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이나 지혜)를 라는 뜻으로, 동방 교회에서는 말씀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기아 소피아( Ἁγία Σοφία), 아야 소피아(Αγία Σοφία), 성 소피아(Sancta Sophia) 사원, 성 소피아 성당, 성 소피아 대성당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립니다.

성 소피아는 기독교를 처음으로 공인한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대제(재위 기간 306~337년)시대부터 건립되기 시작하였다고 하지만, 첫 번째 교회가 완공된 것은 360년, 즉 그의 아들 콘스탄티누스 2세 때였습니다. 첫 번째 교회는 404년 대지진으로 극히 일부만 남고 거의 파괴되었습니다. 두 번째 교회는 오랜 기간에 걸친 재건과 보수 끝에 415년 완공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교회도 532년의 폭동(Nika Riot) 때 완전히 불에 타고 파괴되었으며, 세 번째 교회는 두 번째 대성당이 전소된 지 열흘 후인 532년 2월 23일,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하기아 소피아의 세 번째 재건을 결정하면서 이전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건물을 바라며 물리학자인 밀레토스의 이시도로스와 수학자인 트랄리스의 안시미오스에게 설계를 맡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인인 두 사람은 전문적인 건축가는 아니었지만 1만 명 이상의 인력을 동원하여 532년부터 537년까지 채 6년도 걸리지 않은 공사기간을 통해 당시까지 사상 유례가 없는 광대한 규모의 대성당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마침내 537년 12월 27일,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참석한 가운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메나스가 집전한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의 축성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이때 대성당의 웅장함에 감동한 황제는 하기아 소피아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능가했다고 생각해 "솔로몬이여, 내 그대를 이겼노라!"라고 외쳤다는 일화가 전해집니다.

730년, 레온 3세가 모세의 십계명 중 우상숭배 금지를 내세워 성상을 파괴할 것을 내용으로 한 칙령을 공포하면서 제국 전역이 헬게이트로 빠져들었습니다. 성상파괴론자와 성상옹호론자가 갑론을박 하는 사이, 동로마 제국의 대표적인 성당인 하기아 소피아를 장식하던 수많은 조각상과 모자이크 예술품들이 훼손되거나 철거되었습니다. 파괴의 광풍은 아테네의 이리니 여제가 제2차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면서 일단락되었고, 하기아 소피아에는 복원되기 시작했습니다.

왕이 예배 드리는 장소라고 한다.

1204년 4월 9일, 공격하라는 이슬람은 공격하지 않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격해 점령한 제 4차 십자군은 도시를 마구잡이로 약탈하고 파괴하는 반달리즘을 자행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당대의 재부가들이 모여 부유하기로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던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때의 약탈로 전성기의 화려함이 괴멸되었습니다.

도시 곳곳에 있던 수많은 보물들이 십자군들에게 털렸으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모후 성 헬레나 이래로 동로마 제국이 열성적으로 수집해 하기아 소피아를 비롯한 여러 성당에서 소중하게 보관하던 각종 유물 또한 십자군들의 손에 의해 강탈되어 서유럽으로 빼돌려졌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하여 동로마 제국 동방정교회 신도들은 "십자가 든 악마에 견주면 초승달 이교도가 그래도 사람이다."이라면서 두고두고 이를 갈았다고 합니다.

1453년 5월 29일 마호메트 2세가 이끌던 오스만 제국에게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던 날, 이 성당도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나 마호메트 2세는 이 성당만은 남겨두라고 엄명을 내리고 말에서 내려 성당 안을 보며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병사들이 성당을 약탈하지 못하자 기분 나쁘듯 쳐다보긴 했지만, 마호메트 2세는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하면 병사들에게 대가로 사흘 동안의 약탈 행위를 허락했기에 그냥 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몇몇 병사들이 불을 지르자 분노하면서 그들을 채찍질하며 '약탈은 허락해도 불태우는 짓은 허락 안 했다'며 주의를 주고 불을 끄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부의 모든 벽면을 회칠하여 모스코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모자이크로 된 그림들이 수천년 동안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것은 황금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을 멸망시키고 터키 공화국을 수립한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5.19~1938.11.10)는 국교를 없애고 세속주의 정책을 취하면서 아야 소프야 모스크를 박물관으로 개방하고 무슬림만이 출입할 수 있다는 제한도 폐지했으며 종교행위도 금지했습니다. 개관식 날 아타튀르크는 신발을 벗지 않고 아야 소피아로 들어가 자신의 세속주의 정책을 대내외에 널리 알렸습니다. 모스크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신발을 벗어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정교회를 감추고 모스코로 쓰기 위해 회칠을 했던 것을 벗겨내고 점차 이전의 성당으로 돌아간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웅대한 건물과 그것을 지키려는 열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있고 믿음이야말로 보물 중에 보물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합니다.

그러나 다만 건물의 주인이 바뀌면서 변화를 거듭한 성당, 그리고 지진 가운데서도 오늘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기독교의 역사를 보는 듯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환란이나 물결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자는 끝까지 살아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역사의 흔적들을 살펴보면서 믿음에 믿음을 더하였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큰 수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짧지만 긴 여정 속에 아시아 일곱 교회와 그리스의 기독교 역사지들과 그 주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비록 적은 것이기는 하지만 성경을 이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 기사의 내용은 네이버 지식백과 등을 참고하였음을 알려 드립니다.

 

천헌옥  choug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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