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돈화 목사. 펄프

정돈화(전라노회 광혜교회 원로목사)

우람한 나무였을 때의 추억은

멀리 두고

얇은 종이로 내 수첩에 끼워진 펄프

성의 없는 낙서도

기꺼이 받아준다

 

예쁜 꽃을 싸서

어여쁜 처녀에게

전해지는 선물이 되고

격조 있는 상자로

머나먼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날마다 천대 받는 일상에서도

변함없는 결의

쓰레기로 남기보다는

시뻘건 불길 속에

재가 되리라

아니면 보드란 화장지로 부활하리라

 

창조 이래

우리 삶 속에

깊숙이 자리한 펄프

근년에 들어 플라스틱에 밀려난 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그래서 엔트로피를 능가하는

오염된 지구를 재생할 유일한 대안

세계 곳곳에서

날마다 자라가는 숲 속에서

지구의 희망을 키운다

Photo by Bryan Minea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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