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용감한 목선 탄 사람들

이성구 목사(시온성교회 담임)

지난 15일 새벽 6시 20분, 동해안을 따라 작은 목선 한 척이 내려왔습니다. 그 목선은 강원도 동해안의 마지막 항구인 삼척항에 정박하였습니다. 그 배를 타고 온 선원 네 명 중 두 사람은 배를 항구에 대고 육지로 올라와 아침 일찍 나온 낚시꾼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휴대전화를 빌려달라고도 하였습니다. 서울에 있는 이모에게 전화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말씨가 삼척 사람과 달랐습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묻자 전혀 당황한 기색도 없이 자신들은 북한에서 왔다고 일러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을 찾아 탈북한 북한 주민들이었습니다. 112에 신고하였습니다. 그때가 항구에 정박한 지 30분이 지난 그 날 오전 6:50분이었습니다. 시민의 신고를 받고서야 경찰이 달려오고 군병력이 들이닥쳤습니다. 순식간에 배를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오래전부터 동해안은 경계경비가 상당히 엄중한 곳입니다. 종종 고기 잡으러 북한 어선들이 남하하는 일이 있어 신경을 쓰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에 대한 우리 군 당국의 첫 발표는 삼척항 부근에서 표류하던 북한 어선이 우리 경비정에 포착되어 끌려서 삼척항구로 들어온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작은 어선이 기관 고장을 일으켜 떠내려온 것처럼 보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군 당국의 이런 발표가 거짓말이었음이 금방 드러났습니다. 우선 그 배를 타고 온 사람 가운데는 인민 복장을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어부가 아니었습니다. 의도적인 탈북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출발한 함경북도 경성에서 삼척까지 직선거리 500㎞ 거리를 항해한 북한 어선은 길이 10m, 폭 2.5m, 무게 1.8t으로 28마력의 엔진을 장착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냥 떠내려올 수 있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삼척항 부근에서 표류한 게 아니라 삼척항구까지 스스로 힘으로 접안하였습니다. 신고를 접한 해경은 17분 후에 청와대와 군 당국, 정보원 등에 즉시 사실을 정확하게 보고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거짓 보도가 나온 것입니다. 언론이 현장에서 찾아낸 증인들의 인터뷰 등을 내보내자 청와대는 사실을 덮기에 급급한 입장을 밝혔다고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삼척항 인근”이라는 표현은 방파제까지 다 포함하는 것이라는 억지를 부립니다. 통일부는 첫 번째 발표를 통해 목선을 폐선(廢船)했다고 하더니 이제는 인근 군부대에 보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모두가 거짓말입니다.

목선이 생명선으로

전방 부대에서 철책선을 넘어 GP의 문을 두드리며 탈북한 북한 병사 사건을 ‘노크 귀순’이라고 불렀는데, 이번 목선의 귀순은 방파제에 미리 도착해 경찰이나 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여 ‘대기귀순’, 혹은 ‘셀프 귀순’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웃깁니다. 벌어진 사태보다 더 나쁜 것은 해군과 통일부가 함께 거짓말을 쏟아놓았다는 사실입니다. 국가의 기관들이 국민을 속이려 한 것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정부가 금방 들통 날 일을 속이려 하고 있으니, 국민은 도대체 누굴 믿고 살아야 하는지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내려온 네 사람 중 두 사람을 곧장 북으로 돌려보내 버렸습니다. 정부가 북한에 쩔쩔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억지로 설득을 해서라도 그들에게 새 삶을 주었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이 할 일 아닌가요? 아직 우리 국민 6명이 북한에 잡혀 있고 70년간 나누어진 가족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북한 주민들도 많습니다. 내려온 두 사람을 우리 국민 살려내는 지렛대로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돌려보내는 데는 그렇게 재빠르면서 억류된 우리 국민에 대해서 정부는 말이 없습니다. 귀순한 두 분에게 목선은 생명선이 되었습니다. 더 많은 생명선이 내려오면 좋겠습니다. 삼척항은 모든 경계를 풀고 언제나 활짝 열려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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