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 때 사랑실천당을 만들어 국회의원 10석을 목표로 뛰었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거물급 교회 지도자들이 힘을 보태면서 그 정도는 가볍게 얻을 것이라 낙관하며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국민 20%를 차지하는 기독교인의 수에 비해 그들이 얻은 표는 겨우 2.59%에 불과하였다. 그것은 결과적으로 기독교가 그들을 외면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교회라는 이름으로는 정치에 나서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와도 같았다.


촛불시위의 열기가 한풀 꺾여가던 지난 30일에 느닷없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비폭력을 외치며 서울광장에서 미사를 집행하면서 촛불을 이어받았다. 그들은 시국미사에서 "촛불은 평화의 상징이고 기도의 무기이며 비폭력의 꽃"이라며 참가자들에게 비폭력을 호소했고 다행히 그날 저녁은 폭력시위 없이 밤 10시에 평화롭게 끝났다.


이런 분위기를 탄 것인지 2일까지는 정의구현사제단이 시국미사를, 3일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기도회를 갖고 4일은 실천불교전국승가회가 나서 법회를 연다고 한다. 그리고 이어 5일에는 미국산쇠고기대책회의가 전면에 나서 '100만 국민 승리의 날'로 정하면서 대대적인 시위를 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 파업을 선언한 민노총도 이에 가세할 분위기여서 5일이 최대의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을 비추어 볼 때 비폭력을 내세우며 나선 정의구현사제단의 행동과 종교계의 움직임을 의심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를 몇 가지 정리해 보면 첫째, 이들 종교단체는 대책회의를 구성하는 1830개 단체에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대책회의에 관여해 왔던 것이다. 둘째, 사제단은 대책회의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그대로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쇠고기 전면 재협상"과 "어청수 경찰청장 해임"등이 그 예일 것이다. 셋째, 사제단은 최근 촛불시위의 폭력사태에 대해서도 그 책임을 정부와 공권력에게만 돌렸다는 것이다. "국민을 상대로 마구 저지르는 오늘의 폭력상과 거짓들을 지켜보며 분노한다."고 주장한 것이 그 증거일 것이다. 시위대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집단 폭행, 호텔 습격사건, 테러 수준의 언론사 공격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종교가 본격적으로 시국 문제에 뛰어든 것은 박정희의 10월 유신 이후로 본다. 소위 정보대라고 별명이 붙은 곳에 국회의원을 잡아다 고문하고, 면책특권 박탈, 학원폐쇄, 언론 탄압, 저항시집(詩集)의 발간정지, 음악, 소설, 문예지와 종합지의 입을 닫아걸었던 시절이었다.


민주주의의 모든 숨구멍이 막혀버린 그때에 종교와 종교인이 나섰다. 그때는 사실상 종교인밖에 나설이가 없었고 종교인이 나서야만 하는 때였다. 정의구현사제단도 그 때에 이름을 얻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야당이 주장하는 대로 신공안정국인가? 야당국회의원의 입을 봉(封)해 국회를 무력화시켰는가? 폐쇄된 학교가 있는가? 어떤 언론의 입이 강제로 틀어 막혀 있는가? 그런데도 종교계가 다시 정치 현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는 명분도 의의도 없는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시위를 주도하는 그들이 수적으로 우위에 있을 때는 통제가 가능하지만 규모가 커지면 아무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그때 일어나는 제반 사건에 대해서 종교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생각해 보았는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어둠이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시위를 했다. 그 구호는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종교적으로 쓰여야 할 말이지 정치적으로 쓰일 말은 아니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어둠은 무엇이며 빛은 무엇인가? 어둠은 누구를 가리키고 빛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인가? 종교인들이 쓰는 빛과 어두움은 어디까지나 교회 안에서만 해석되어야 하는데 무분별하게 쏟아놓는 이 말이 결국은 국민만 두 편으로 갈라놓아 끝없는 대결을 부추겨 불행한 결과만 초래할 것이 아닌지 묻고 싶은 것이다.
 쇠고기 대책회의와 그에 속한 사제단이 빛이라고 나섰다면 그 반대의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들은 모두 어두움이라는 논리가 되기 때문이다.


종교가 섣불리 사회의 제반 문제들을 빛과 어두움, 선과 악으로 나누고 그 틈새에 뛰어들어 어느 한 쪽을 편들고 그 쪽에 승리를 주고 물러나면 다른 한 쪽으로부터는 버림을 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빛과 어두움을 나누는 일은 주님이 하실 것이다. 우리는 죄악된 세상(어두움)에 빛을 비추라고 명령을 받은 것이지 빛과 어두움을 나누라는 말씀을 받은 것이 아니다. 이런 일로 복음의 문이 닫히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을까 심히 염려하는 것은 바로 교회의 중대한 사명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정말 폭력 시위가 안타까웠다면 목사의 신분이나 신부의 신분을 벗어놓고 시위대의 맨 앞에 서서 온 몸으로 과격 폭력 시위를 막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위 현장에서는 국회의원도 시위대원의 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제 모두가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국회는 속히 정상화를 해서 여야가 치고받더라도 의사당 안에서 더 나은 길을 모색하여 국민에게 안심을 주어야 하고 희망을 주어야 한다. 정부는 정부대로 그리고 국민은 국민대로 그 자리로 돌아가야 하고, 종교, 특히 기독교는 더욱 그리해야 한다. 사람들의 틈새에서 어느 쪽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하나님 편에 서서 목소리를 낼 때에 교회는 교회다워 지는 것이다. 목사가 철학보다는 주의 말씀에 근거하고 설교를 해야 권위가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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