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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준 판결로 본 감정적 정당성과 법적 정당성감정적 정당성은 없어 보이나 법적 정당성은 존중해야
정성호 목사(대구 서교회 부목사)

지난 7월 11일에 스티븐 승준 유(한국명: 유승준, 이하 한국명으로 기재)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유승준 측이 LA 총영사관에 대하여 제기한 사증발급 거부처분 취소청구사건에 대한 최종적 판단이다. 대법원은 ‘사증발급거부처분이 적법하다고 본 원심판단이 잘못되었다.’고 보았다. 유승준 측이 주장한 내용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대법원의 선고는 국민의 정서에 반(反)하는 결정이고, 이로 인하여 국민이 가지고 있는 법 감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대법원의 이러한 판결이 대다수 국민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법 조항이 국민의 감정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 국방의 의무와 관련된 국민의 감정과 법의 괴리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헌법 불합치의 재판을 내린 것에서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다. 국방의 의무는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반드시 짊어져야 할 의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해석을 통해 종교적 신념에 의하여 병역을 거부한 것에 대한 유죄판결이 헌법의 정신에 일치하지 않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는 국방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한 대다수의 선량한 남성들로 하여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하였다. 법의 해석이냐, 법 조항의 적용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유승준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도 국민들이 선뜻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유승준이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병무청과 국민이 유승준을 신뢰해서 해외 공연까지 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로 미국으로 건너가 시민권을 획득함으로 국방의 의무를 회피하였다. 이에 병무청은 법무부장관에게 유승준의 한국입국 금지를 요청했고, 법무부장관은 ‘출입국관리정보시스템’에 입국금지를 등록해서 오늘까지 유승준은 국내에 입국하지 못했다. 이러한 유승준의 행동은 온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국민의 비난 대상이 되고 있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LA총영사관이 유승준이 신청한 재외동포 체류자격의 사증발급의 불허가 법적으로 그리고 절차적으로 합당한지에 대한 것이다. 대법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보도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장관이 출입국관리시스템에 입국제한 조치를 입력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상급행정기관의 지시로 보아야 하지 처분이라고 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따라서 LA 총영사관이 내린 처분은 위법한 것이다. 또한, 수년 전에 법무부장관의 입국금지결정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의 적법성은 보장되지 않으며 법조항에 근거하여 영사관 재량으로 판단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서 절차상 위법이라고 대법원은 판단했다. 그 외에도 대법원은 재외동포체류자격 사증발급 거부처분을 시행함에 있어 ‘처분서를 작성·교부’를 하지 않고 전화로 유승준의 아버지에게 전화로 통보한 것은 절차법상의 위법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설사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여 외국인이 된 경우라도 현행법에서는 38세(현재는 41세)가 된 때에는 대한민국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외교 관계 등 대한민국의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외동포체류자격의 부여를 제한할 수 없다고 되어있다. 이런 법적 절차의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하였기에 대법원은 유승준이 주장한 LA 총영사관의 사증발급 거부처분의 취소를 인용하는 선고를 내리게 되었다. 아울러 대법원은 사증발급 거부는 재량권에 의해 재처분 되어야 하는 문제이지만, ① 재외동포의 대한민국 출입국과 체류에 대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 ②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외국국적을 취득하고 대한민국 국적을 상실하여 외국인이 된 경우에도 38세(현재는 41세) 전까지만 재외동포(F-4) 체류자격 부여를 제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여 사증발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가수 유승준

대법원도 보도 자료에 명시했듯이 유승준에 대한 도덕적인 비난은 충분히 있을 수 있으나 법적 절차와 원칙을 바르게 세워야 하는 대법원의 입장에서는 국민의 법 감정과는 별개로 법조항의 바른 적용을 선택했다. 이런 선택을 한 대법원이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법조항 때문임을 기억해야 한다. 법의 해석문제에 있어서 특정한 이념이 많이 반영되었던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헌법 불합치 판단과 다르게 본 사건은 법 조항의 기계적인 적용에 있어 절차상의 하자가 발견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이 되어야 한다. 유승준이 선택한 행동은 분명히 잘못되었고,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을 만했지만, 그렇다고 더욱 가혹하게 법을 적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의 감정이 앞서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법원의 판결을 불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다. 우리들의 삶의 터전에서 느끼는 감정과 교회에서 듣는 성경적 가르침에는 괴리가 있을 수 있다. 때로는 성경의 가르침이 우리의 삶에 적용되지 못하고 우리의 삶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것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감정적으로 성경이 현실을 잘 조명해 주지 못한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감정으로 성경의 원리를 무시하려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주일성수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네 번째 통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구약 성경 곳곳에는 안식일을 거룩하기 지키지 못한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 나타난다. 물론 오늘날에는 안식일이 주일로 대체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유대인의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의 부활의 날을 기념하며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식일이 가지고 있는 정신을 지키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안식일의 기본 정신을 따라 주일을 거룩히 지켜야 하고, 하루 종일 하나님을 예배하며 찬양하는 자리에 나아가야 한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조 7항, 8항). 그러나 현대의 성도들에게 주일성수는 부담으로 다가온다. 주일 온종일을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감정적으로 주일예배만 드리고 나면 ‘나’를 위해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균형을 잡아야 한다. 감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고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우선권을 부여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유승준의 비자 제한이 위법하다는 결과가 감정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지만, 법적 절차의 문제에 기인하였다는 것을 존중하고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절대적인 원리임을 믿고 우리의 감정과 상관없이 그 말씀을 존중하고 인정하며, 말씀에 순복하며 나아가야 한다. 감정적 정당성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법으로 허락하신 말씀의 정당성을 따르는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정성호  webmaster@kscoramd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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