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는 지식인의 아편..."

박관수 목사(구영교회 담임)

요즘 뉴스와 SNS를 도배하는 이름이 ‘조국’이다. 한 개인의 이름이면서 동시에 우리나라를 지칭할 때 흔히 쓰는 고유명사와 똑같은 단어라서 참 미묘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의 이름과 그와 관련된 사건들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우리 조국의 현실에 대한 고뇌, 그리고 우리 조국의 미래에 대한 염려를 환기시켜주고 있다.

지도자의 사상문제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없다

사람들에 따라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입장도 있지만 아무래도 거부감을 느끼는 입장이 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를 반대하는 데는 여러 이유들이 있다. 지금 검찰 수사 중인 자녀 문제나 펀드 문제들도 반대의 이유가 되지만, 사실은 적극적 반대자들의 마음에 가장 깊이 자리하고 있는 뿌리 깊은 의심은 그의 사상에 대한 의심이다. 그리고 그것이 그 어떤 다른 이유들보다 더 강하고 중요한 이유인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국가 지도자의 자질 가운데 최고 1순위 자질이 사상적으로 신뢰할만한 것이 아닐까? 사상의 문제는 국가생존의 문제와 직결되기에, 특히 정치지도자의 사상에 국가의 미래가 달려 있기에, 이 문제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 지도자에 대해 사상적으로 불신하게 된다면, 그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 어떤 번지르르한 개혁의 수사(修辭)도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동안도 그의 과거의 사노맹 관련 경력과 그가 썼던 수상한 글을 비롯해서 그의 사상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들이 있었는데, 이번 청문회 때 그의 발언으로 이 모든 의문들이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었다.

그는 청문회 때 자신을 가리켜 “민주주의자이면서도 사회주의자”라고 고백했고, “우리나라 헌법의 틀 안에서도 사회주의적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물론 사회주의도 학문적으로 분류해보면 아주 많은 종류가 있고, 정확하게 어떤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했느냐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그 단어를 썼다고 해서 그 사람을 매도할 순 없다. 그러나 누구나 아는 가장 보편적인 의미에서 그 단어를 썼다고 가정해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이라 할 수밖에 없다. 삼척동자가 상식선의 지식을 갖고 보더라도,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동시에 추구할 수 없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대립된 개념이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왜 자유를 삭제하려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통용되는 ‘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우리나라 헌법에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위에 서 있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헌법의 개념에서 ‘자유’라는 단어를 삭제하자고 제안한 사람이 바로 조국 장관이라는 보도들이 이미 나와 있고, 현 정부는 이미 그 내용으로 헌법개정안 시도를 했다가 반대에 부딪혀 번복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내년도부터 중고생들이 사용할 역사 교과서에 그 수정안이 반영되어 있다는 보도를 접했는데, 이 정부가 그 의지를 포기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자유’를 뺀 민주주의는 우리나라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에도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북한도 공식적으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서 해서 ‘인민’민주주의 국가라고 스스로를 지칭하고 있다. 만약 ‘자유’ 개념을 빼고 그냥 민주주의라고 얼버무려서 넘어간다면 자칫 북한의 ‘인민’민주주의도 수용 가능하다는 오해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사상이나 방향을 담는 그릇과 같다. 민주주의를 대의 정치체제(제도, 방법)라 한다면, ‘자유’라는 말은 그 사상적 기초요, 법적 토대이다. ‘자유’라는 이념을 담는 그릇이 자유민주주의인 셈이다. 자유민주주의란 개인의 인격적 존엄성과 자유, 사유재산권을 토대로 세워진 제도이다. 그 반면에 고전적 의미에서의 사회주의는 냉정하게 말해서 ‘전체주의’라 할 수 있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보다 전체와 사회를 우선시하는 사상에 기초한 것이 사회주의이다. 공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를 국가가 제한할 수 있고, 특히 빈부격차 해소를 위해 부를 재분배할 수 있다는 이념이다. 분배를 중심으로 해서 사회를 개조하려는 취지가 사회주의의 동기이기에, 분배라는 ‘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자유와 인권이 침해될 수 있는 구조이다.

북유럽국가는 사회주의 아니고 수정자본주의...

그러한 기본적 의미의 사회주의는 역사적으로 이미 그 실패가 드러난 실험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사회주의자들은 복지에 성공한 북유럽국가들을 사회주의 성공의 모델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실은 학문적으로 북유럽국가들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분류되지 않는다. 북유럽국가들만큼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이 철저히 보호되는 나라들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철저한 자유민주주의의 사상적 기반 위에서 복지 정책을 지혜롭게 정착시킨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수정민주주의 내지는 수정자본주의이지 고전적 의미의 사회주의는 아니다. 그리고 엄정한 의미에서의 사회주의 체제를 시도했던 국가들은 이미 사회주의를 버린 지 오래다. 왜냐하면, 논리적으로 봐도 개인의 자유를 극대화하는 자유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적 방향을 지닌 사회주의와 동행할 순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주의를 실행할수록 경제가 실패한다는 점을 확실하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는 부의 분배를 명분으로 국가가 갈수록 힘을 더 갖게 되며, 그러다 보면 개인의 자유는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되고, 종국에는 포퓰리즘 독재로 나아가기 십상이 된다. 사회주의 국가들을 보면 경제적 평등을 주창하지만, 내용상으로는 사회주의의 권력자들은 자본주의의 기득권자들보다 더 큰 부와 힘을 갖게 되고, 일반 백성들은 더 가난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 일반 대중에게는 계속 사탕발림 같은 이상향을 제시하지만, 나중에 남는 것은 권력층의 부패와 거짓말, 그리고 국가가 거덜 나는 상태가 되고 만다. 사회주의는 눈에 보이는 결과의 평등 또는 소유의 평등을 외치지만, 인간의 소유 욕망과 경쟁심, 자아성취 열정 등 기본적인 심성을 도외시한 사회주의는 결국 기회의 평등마저 실현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물론 자유민주주의와 동반자적 관계를 지닌 자본주의의 맹점인 빈부격차 문제는 반드시 보완책을 찾아야만 한다. 그러나 국가공동체를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의 대립구조로 나누어 끊임없이 싸움과 스트라이크를 조장하는 사회주의 사상을 갖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개선할 수 있는 방안들은 모색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폐해 때문에 사회주의로 기울어진다면, 오히려 자본주의의 승자 승 독식 구조보다 몇백 배 더 심각한 경제의 붕괴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이 20세기 역사의 교훈이다. 흔히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득권층의 부패가 너무 심해서 사회주의에 관심 가지는 젊은이가 많다고들 하는데, 실상은 사회주의, 거기서 더 많이 나가버린 공산주의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부패해있음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팩트가 아닌가?

사회주의는 지식인의 아편

그래서 사회주의를 현실정치에 실현한 대표적인 정당인 독일 사민당의 슈뢰더 전 독일 총리가 “독일의 미래를 위해선 사회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결론을 내지 않았던가? 사회주의가 나라를 퇴보시키고 분열시키고 쇠락하게 만들고야 만다는 교훈을 뼈저리게 느끼고 나온 말이다. 프랑스의 정치사회학자인 레이몽 아롱도 “사회주의는 지식인의 아편이다”라고 주장했다. 그가 한 유명한 말이 있다. “정직하고 머리 좋은 사람은 절대로 좌파가 될 수 없다. 정직한 좌파는 머리가 나쁘고, 머리가 좋은 좌파는 정직하지 않다. 모순투성이인 사회주의의 본질을 모른다면 머리가 나쁜 것이고, 알고도 추종한다면 거짓말쟁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교수도 “대중매체의 발달은 얕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영향력을 키워 자본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에 대한 위협을 늘린다”고 경고했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나라보다 더 자유로운 정보들이 난무하고 있고, 따라서 쉽게 말 잘하는 사람들의 논리에 휩쓸리기 쉽다. 엉터리 논객들이 도처에서 유령 이론을 전파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상 국가의 환상을 퍼뜨리는 그들의 웅변에만 감동할 뿐, 그 배후에 도사린 사회주의의 내적 모순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자유민주주의의 든든한 성곽을 허물어버리고, 사회주의의 세계로 나아가자는 구호에 심정적으로 끌리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지금 우리 국가의 지도층에 버젓이 사회주의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 입만 열면 반미선동을 일삼는 사람들, 미국이나 일본과의 관계를 멀리하면서까지 북한 정권의 입장에 서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심히 염려스럽다.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라고 하는 사람을 국가의 법과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이 정부의 모습이 과연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 정상적인 행태인지 참으로 의심스럽다. 

문 정부 핵심세력들의 사상과 목표에 대한 의심과 경계 확산...

지금의 이 추세대로 계속 나아간다면, 과연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면서 선조들이 피 흘려가면서 지켜온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호가 어느 곳으로 추락할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최근의 여러 가지 정책과 사건들을 볼 때 이 정부 핵심세력들의 사상과 목표에 대한 의심과 경계가 널리 퍼져가고 있는데, 이 걱정이 그야말로 근거 없는 의심과 오해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 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지금이라도 대통령과 정치 주도 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의 튼튼한 사상적 기반 위에 중심을 굳게 하여 국민들로 하여금 불안하지 않도록, 국민이 국가의 미래에 대해 염려하지 않도록 해주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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