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부들과 칼빈의 구제 사상

정성호 목사(대구서교회 부목사)

이번부터 몇 차례에 걸쳐서 전통교회에서 감당하는 지역사회복지에 대한 글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제가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을 쓰고자 하기 때문에 1인칭의 관점에서 글을 기록하겠습니다. 제가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는 교회는 설립된 지 68년이 되었습니다. 이보다 더 오래된 교회들도 많이 있겠지만, 68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 동안 교회가 구제와 관련된 많은 일을 감당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지역사회복지 사역을 했었는데, 제가 담당자로 그 일들을 진행했습니다. 제가 했던 내용을 소개함으로 다른 교회에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남겨 봅니다.

교회가 감당하는 지역사회복지에 관한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먼저 신학적인 내용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교부들과 칼빈은 구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교회가 신학적 바탕없이 나눔에만 초점을 맞추어서 복지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전통 가운데 어떤 신학적 기초 위에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제 나름의 궁금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교부들은 구제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를 간략하게 조사를 해봤고, 또 개혁주의 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칼빈은 제네바에서 어떻게 구제의 일을 감당했는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 글을 위해서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배정훈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이은혜 교수, 호서대학교 김동주 교수의 글을 참고하였음을 미리 밝힙니다.

먼저 초대교회에서 부와 구제에 대한 가르침은 2세기 중엽에 기록된 헤르마스의 ‘목자’에 나타납니다. ‘목자’는 부자 그리스도인들이 기독교 공동체에 안에서 감당해야 할 역할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느릅나무와 포도나무의 관계를 들어 설명합니다. 느릅나무(가난한 자)는 열매를 맺지는 못하지만 풍성하게 물을 품고 있습니다. 포도나무(부한 자)는 물이 부족합니다. 느릅나무가 포도나무의 도움을 받을 때 포도나무에게 물을 제공하여, 포도나무는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물’을 중보기도로 보았는데, 가난한 자는 기도시간을 많이 가지고 있으며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큰 능력으로 응답하신다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헤르마스는 부자와 가난한 자는 영적 공생관계에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3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그 당시에 주류를 이루었던 부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개선하였습니다. 당시에 알렉산드리아는 아주 부유한 도시였고,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도시였습니다. 그곳에 부유한 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알렉산드리아는 신플라톤주의의 금욕주의적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몇몇 가르침에는 모든 부를 포기하여야만 천국에 갈 수 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클레멘스는 부 그 자체는 부정할 필요가 없으며, 부가 우리의 이웃을 의롭게 한다면 버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오히려 부를 구제(alms)의 수단으로 사용함으로 인하여 신앙 공동체를 도울 수 있는 좋은 도구로 이해했습니다. 이런 균형 잡힌 견해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클레멘스는 구제를 구원과 연결시키는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구제를 통해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이후에 로마 카톨릭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3세기 서방교회가 가진 부의 이해는 키프리아누스를 통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는 원래 부자 그리스도인에 대하여 부드러운 견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데키우스의 대 박해(250-252)를 거치면서, 많은 재산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박해 가운데 배교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면서 부에 대한 그의 견해는 비판적이며 강경하게 바뀌었습니다. 부는 사람을 돈의 종으로 만드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부를 소유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였습니다. 그는 부의 올바른 사용으로 구제를 강조하였는데, 이는 배교 이후 열악한 교회 상황과 맞물리면서 생겨난 주장입니다. 키프리아누스는 당시의 큰 박해로 인하여 열악한 교회 재정의 문제, 신앙은 지켰으나 가난하게 된 그리스도인의 문제, 252년에 도시를 덮친 전염병의 처리 등의 문제를 만나면서 배교이후 돌아오는 부자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제를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비는 죄의 용서를 이끌어낸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용서받기 위해 재물을 나누고 교회와 가난한 자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이후에 로마 카톨릭 사상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기독교 공인 이후에 부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전과 달라지게 됩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교회 안에 엄청난 재물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또한,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 없이 교인이 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자 했던 수도원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는 기독교 공인 이후의 교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존 크리소스톰은 구제에 대하여 많은 강조를 했는데, 부의 잘못된 사용을 개혁하는 것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그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습니다. 바로 일정 수준의 가난한 삶을 사는 기독교 공동체를 만들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부자들에게 구제를 격려함으로써 일정 수준 이상의 부를 소유하지 않도록 권면하였습니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구제하기를 권하였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며, 자선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기를 기대했습니다.

어거스틴에게 나타나는 구제에 대한 개념은 앞선 교부들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동시에 구제를 구원과 연결시키는 잘못을 개혁해 나갑니다. 어거스틴은 그리스도와 가난한 자들을 동일시합니다.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는 “배고프며, 목마르며, 벌거벗었으며, 나그네이며 ,병자이며, 감옥에 갇힌 자” 가운데 나타나는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가난한 자들을 먹일 때, 그리스도를 먹인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어거스틴은 사랑과 나눔이 없는 공동체, 즉 부자들은 남아도는 재물을 움켜쥐며 주체할 수 없는 상태이면서도 동시에 가난한 자들은 하루 먹을 양식이 없어서 고통 받고 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비판했습니다.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사랑과 나눔의 공동체는 서로의 필요를 채우는 공동체이며,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이 재물을 천국에 저장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물론 어거스틴은 부 그 자체를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과도한 금욕적 이상을 부에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부 또한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이해를 했고, 많은 부를 소유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구원 은혜에서 배제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또한, 구제를 죄를 사하는 통로로도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환대(hospitality) 및 구제(alms)를 통해 가난한 자들을 섬기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진정한 구제는 오직 선택받은 자에 의해서만, 그리고 사랑의 동기가 부여되었을 때에야 만 가능하다고 말하였습니다.

교부들의 시대에 구제는 교회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좁은 의미의 사회복지였다면, 근대의 사회복지 실천은 칼빈에 의해서 발견됩니다. 우리는 칼빈이라고 하면 종교개혁의 대표적인 인물, 개혁주의 신학의 정초를 놓은(혹은 발전시킨) 사람, 제네바시를 다스렸던 정치인, 조금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반대파에 대하여 무자비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사람으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칼빈은 개혁 속에는 사회복지와 관련된 부분도 있습니다.

칼빈은 교회를 통한 제도적 사회사업과 봉사를 본격적으로 실천하였습니다. 칼빈은 신자가 이웃의 궁핍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을 했고, 교회와 정부는 협력하여 구호에 최선을 다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성도의 교제”라는 것은 성도가 믿음 안에서 교제를 나누는 것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과 나눔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이런 칼빈의 사상은 그의 4중 직제 중 집사직(deacon and deaconess)을 통해 표현되었습니다. 칼빈은 집사의 역할은 세상과 공동체를 섬기는 일임을 강조하면서, 한 그룹은 사회봉사를 위한 기금 마련을 운용하고, 또 다른 그룹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현장에 직접 들어가 몸으로 섬기도록 했습니다. 칼빈은 경건한 성도들은 바로 이러한 구제사업 전면에 서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칼빈은 직분의 정립과 더불어 병자들을 위한 병원을 제네바에 설립했습니다. 이 기관은 단순 치료기관을 넘어서 사회복지 사업의 중심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제네바에서는 고아는 13세까지 시에서 돌보았고, 이후에 일자리가 제공되었습니다. 과부들과 무연고 노인들도 일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이외에도 칼빈은 제네바 시민을 넘어 제네바에 몰려드는 피난민들을 위한 음식과 숙소를 준비했습니다. 정치적 자유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제네바시로 피신해오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필요한 것들을 제공했습니다. 또한, 구체적으로는 프랑스 난민들을 위한 기금(fund)을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칼빈은 교부들의 전통, 특히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라 부와 재물에 대한 이해를 발전시켰습니다. 칼빈은 직업과 경제라는 개념을 재정립했는데, 성속을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들 속에 담긴 거룩함의 가치를 보았습니다. 모든 합법적인 질문에는 하나님의 소명이 담겨 있음을 가르쳤습니다. 이런 가르침 위에 칼빈은 부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습니다. 근면의 대가로 얻는 부는 선택받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다만, 죄악 된 인간이 돈에 사로잡혀 돈을 섬기는 것이 잘못이라고 했을 뿐입니다. 돈은 하나님을 이롭게 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는 ‘영적인 기능’ 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주장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재물에 대한 사명을 발견해야 하고, 재물의 사용에 있어서는 공동성과 영적 가치를 강조하였습니다. 그 결과 칼빈의 가르침이 있는 곳에는 나눔이 있었고, 사회적 재투자를 통하여 공동체의 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대구서교회 사회복지부

교부들이 구제에 대해서 생각하는 큰 틀에서의 공통된 관점은 ‘영혼의 치유’, ‘영혼의 밭 갈기’로서의 구제입니다. 구제를 통해 병든 영혼을 치유하며, 더 나은 영혼을 가질 수 있도록 영혼의 밭을 갈고 치장하는 것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교부들의 이러한 사상은 그리스 철학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플라톤과 신플라톤주의, 스토아주의와 같은 철학은 초대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들은 영혼을 선한 것으로 육체를 악한 것으로 보았고, 인간의 정욕에서 벗어나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부들의 관점에서는 ‘부’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 내지는 ‘빈곤’에 대한 혹은 ‘가난한 자’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관점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부와 재물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잘 활용만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교회 안에서의 구제사업은 교회를 넘어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가 있었습니다.

이런 좋은 신학적 전통과 통찰 가운데 오늘날 한국 교회는 교회가 감당하는 지역사회 복지의 지평을 더욱 넓혀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교회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복음을 전하며, 교회 내의 성도들만 도우면 되는 곳이지, 왜 지역사회까지 섬겨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이것이 복음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일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교부들의 전통과 칼빈의 가르침에 따르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실천으로 구제 사역을 핵심적으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교회를 넘어 지역에까지 선한 영향을 끼쳐야 합니다. 이런 신학적 토대 위에서 우리는 섬김과 나눔으로서의 지역사회복지를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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