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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의료선교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사의 눈으로 본 의료선교와 그 과제

이 글은 김윤영 박사가 "한국 의료선교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라는 제목으로 미국 덴버신학대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 편집부

 

예수님의 선교란 무엇인가?

김윤영 박사(사랑의 교회 집사, 가천대 의대 외과학교실)

C.S. 루이스의 저서 고통의 문제(the Problem of pain)를 읽다가 동물의 고통에 관한 장에서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고통을 허락하신 것은 인간의 죄성을 돌이켜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로 돌아올 기회를 주시려는 그분의 긍휼한 자비와 은혜 때문이다. 그렇다면 동물의 고통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동물은 하나님이 죄성이 있다고 정죄할 대상이 아니기에 그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었다. 문득, 복음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미전도 종족의 경우, 예를 들어 조선시대, 고려시대를 살던 수많은 우리 조상들은 복음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예수님에 대한 지각도 없었을 텐데 이들의 고통의 문제는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 고 통의 문제에서 매우 중성적 입장일 수밖에 없는 동물의 그것처럼, 이들의 고통도 그렇게 봐야 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 질문에 대한 성경적 해답은 이러하다. 인간의 죄성이 우리의 inborn nature, 즉 우리 안에 내재 되어 있는 것처럼,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내재되어 있기에, 복음을 듣던 안 듣던 간에 우리는 복음에 의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미전도종족에 대한 구원의 길도 반드시 복음을 믿는 것뿐이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죄성이 없는 동물과 볶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인간과 동일시될 수는 없기에 그러하다.

이 맥락 속에서 예수님이 그의 선교사역을 통해 복음을 모르고 죽는 영혼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셨음은 우리는 잘 이해할 수 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마 9:35)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막 1:38)

복음서에 기록된바 예수님의 복음전파 사역은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반응 좋은 어느 한 지역에 집중된 사역이 아니었다. 또한, 우선순위(priority)를 두고 복음을 듣지 못한 자들에게 주된 관심을 보이셨다. 이미 복음을 들은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하지 않으시고, 아직 복음 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옮겨 가셨다. 우리는 바로 이 예수님의 선교 원리에 주목해야 한다. 기회 되는 대로의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로가 아닌, 전체의 전략적 관점에서 모든 민족에 게 천국 복음이 증언되는 세계 복음화가 그것이고, 그리고 그 끝은 예수님의 재림이다. 따라서 선교 전략이라 함은 전체 가운데서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신속히 복음을 전할 방법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마 10:1)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

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눅 6:17)

예수님의 3대 사역이라 함은 가르치심, 복음전파 그리고 치유사역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세 가지 사역이 항상 함께 행하여졌음을 성경에서 보게 된다. 특히 치유의 사역은 육신의 연약함을 다 진 인간의 입장에서 절박함을 가진 문제이다.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시고 병든 자가 고침 받고 약한 자가 힘을 얻게 되는 역사를 보이심으로써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 그리고 예수님이 약속된 메시아임을 보이셨다. 치유에 대해 여러 견해들이 있다. 사도시대 이후에는 표적적인 치유사역이 정지되었다는 견해, 치유의 은사자들을 통해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견해, 본인이나 성도들의 믿음과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치유가 이루어진다는 견해, 여러 의견들을 긍정적인 면에서 종합 수용하는 견해 등이 있다. 예수님은 치유사역에 대해 사이비적인 이적도 없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것에 현혹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라는 말씀도 주셨다.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 22-23)

 

예수님 이후 사도들의 치유사역 그리고 바울과 누가의 사역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도 제자들에 의해 치유사역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이 사역의 연장선에서 바 나바와 빌립, 아나니아와 바울 등이 치유사역을 행하였다.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고쳤을 때, 베드로가 강조한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베드로는 놀람을 금치 못하는 무리들에게 잘라 말하기를, “우리의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이 일은 하나님께서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신 것이다” (행 3:12-13) 라고 하였다.

현대 교회사에서 치유가 강조되는 데 있어 누가의 공헌이 크다. 누가는 안디옥 출신의 유능한 의사였다.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누가를 소개하기를 사랑받는 의사라고 했다.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였고 늘 그와 함께하는 신의 있는 동역자였다. (딤후 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이들은 늘 함께 다니며 병자를 고치고 더러운 귀신들을 내어 쫓음으로써 사단의 세력이 패배하였다는 기독교의 케리그마를 확증하였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행 19:11-12)

초대교회가 서쪽으로 로마를 거쳐 서유럽으로 전파되었고, 지중해와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을 연 결하는 고대의 무역 루트(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복음이 전파되었다. 이후 교회는 이슬람의 공격을 상대하며 야만인의 개종을 위한 순교와 살육의 긴 역사를 지나 1000년 유럽의 기독교왕 국의 복음화를 이뤘다. 로마카톨릭의 선교는 포르투갈과 스페인 제국의 해외확대 시대를 함께 하 였다. 제수이트를 통하여 프란시스 자비에르, 프란시스 아베베, 중국의 마테오 리치, 인도의 로베르토 드 노빌리 등이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종교개혁운동(1517) 이후 개신교의 선교는 17, 18세기에 걸친 산업혁명과 함께 개인의 영혼구원, 경건 생활을 통한 부흥 전도, 세계를 향한 선교를 강조하였다. 영국의 청교도주의는 독일의 경건주의로 이어졌고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개인의 회심과 경건을 강조하며 교회와 학교의 병행, 주민들 자신의 언어로 된 성경, 주민들의 정신에 대한 정확한 지식, 조속한 시일 내에 교역자를 가진 인도교회 건설로 이어졌다.

 

근대 의학의 발전을 통해 세계 선교를 준비하신 하나님

예수님의 치유사역을 통한 선교 역사는 세계선교를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로 이어지는데 18세기의 근대의학 발전은 19세기 세계선교의 토대마련을 위한 필연적인 하나님의 계획으로 봐야 한다. 과학 혁명기에 발달된 화학, 물리학, 수학 등의 지식과 그동안 발전된 의학 지식을 바탕으로 많은 의사들이 의학 이론을 집대성하려고 시도하였다. 현미경 의학, 생리학, 병리학 등이 계속 발전하였으며 실험과학에 기초한 의학이 질병 치료의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며 19세기 말의 병원의학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 이전의 병원은 의학적 치료가 행해지는 공간이 아니라 헐벗고 굶주리고 병든 사람들을 걷어서 먹여주고 재워주는 자선 기관이었다. 프랑스 혁명을 거치며 병원이 의학의 중심적 공간으로 바뀌면서 의학교육의 발전도 병원이라는 임상공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프랑스, 영국 그리고 독일, 미국의 의학발전은 다음 세기의 하나님의 세계선교 계획의 준비과정이었다. 복음전도의 중요 요소로서의 치유 사역이 초대교회 시절 그대로 반복되는 놀라운 역사가 펼쳐졌고 미국 중심의 해외 선교활동의 시대로 이어지게 되었다.

19세기를 위대한 선교의 시기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는 유럽을 중심으로 많은 개신교 선교회가 일어난 시기이다.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1761-1834)는 복음을 인도에 전하는 데 그의 생애 대부분을 바쳤다. 1793년 인도에 도착하여 40년 동안 영어사용 세계의 선교사업을 본격화시켰다. 그는 처음부터 교회와 선교를 통합적으로 보았다. 선교기구의 필요성을 깨닫고 후 보자를 모집하고 영적 재정적 지원을 위해 노력하였고 교회 개척을 선교의 중요한 요소로 보았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은 미국의 개신교 운동의 시기이다. 1910년 에든버러에서 있었던 제

2차 세계 선교대회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계기가 되었는데 이 대회의 의장이었던 미국 감 리교회 평신도 존모트(1865-1955)는 “이 세대 안으로 세계를 복음화하자”라는 유명한 슬로건을 남겼다. 그는 개신교 선교운동이 영미권 모든 교회가 참여하는 보편적 운동이 되는데 공헌하였다.

 

세계 선교의 시작 그리고 조선 개화기, 대한민국 건국

미국주도의 세계 선교가 시작되고 의료선교사 알렌은 한국선교의 관문을 열었다. 1884년 9월 20일, 알렌이 중국에서 조선으로 들어옴으로써 공식적 개신교 한국선교의 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알렌은 미국 북 장로회 소속 의료선교사로서 갑신정변 때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하면서 신임을 받아 고종황제의 시의로 임명되었다. 서양의학을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알리는 데 공을 세웠고 홍

영식 대감의 사택을 하사받아 개조하여 광혜원(후에 제중원으로 개명)을 개원하였다. 이 병원은 의료기관으로서뿐만 아니라 선교사역을 위해서 훌륭한 선교 전초기지 역할을 감당하였다. 국왕 에 의해 공인된 이 병원을 통해 다른 선교사들도 쉽게 선교 활동에 착수할 수 있었다.

의료선교사 올리버 에비슨은 한국의료선교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영향으로 1893년 내한하였고 미국의 석유회사 중역인 루이스 세브란스의 도움으로 제중원을 발전시켜 한 국 최초의 근대적 종합병원인 세브란스 병원을 세웠으며 최초의 전문의학 교육기관인 세브란스 의학교를 세웠다. 그가 세운 세브란스 병원과 의과대학교를 통해 수많은 의료선교사뿐만 아니라 복음 선교사들이 한국교회와 선교를 위하여 헌신하였고, 이들 기관을 통해 세계 선교를 위한 많은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의료선교사를 이야기할 때 의료선교사 홀 일가를 빼놓을 수 없다. 윌리엄 홀은 캐나다 출생의 미감리회 의료선교사로 1891년 내한하여 같은 미감리회 의료선교사인 로세타 셔우드 홀과 결혼하였다. 윌리엄 홀은 평양을 중심으로 병원, 학교, 교회 설립 등의 사역을 활발히 전개하였으나 1894년 청일전쟁 때 과로사했다. 아내인 로제타 셔우드 홀은 평양에 기훌병원을 설립하고 여자의 학반을 조직하였다. 부녀자와 아동을 위한 병원을 설립하여 의료사역을 전개하였으며 아들 셔우드 홀 또한 미감리회 의료선교사로서 내한하여 결핵 퇴치 운동에 전념하였다. 홀 일가는 진정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인을 섬긴 귀한 의료선교사 일가였다.

한국 초기 선교사역으로 의료사업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알렌이 세운 최초의 의 료기관인 제중원은 한국선교에 여러 면에서 지대한 공헌을 했으나 일부 선교사들은 의료사업을 교회 확장과 비슷한 비중을 두는 데에 반대했다. 이와는 달리 선교병원의 모든 활동이 복음 전도에 있다고 보고 의료사업을 교회 확장과 같은 비중으로 보는 선교사도 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마포 삼열 선교사(사무엘 오스틴 마펫 선교사, 1864-1939)였다. 그는 평양을 선교의 근거지로 삼고 무엇보다도 신학교 설립에 많은 관심을 가졌다. 미국장로회 선교본부로부터 신학교 설립을 허락받고 1901년 평양에서 처음으로 교역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육이 시작되었다. 1907년, 한국교회 역사상 최초로 한국인 목사 7명(서경조, 한석진, 송린서, 양전백, 방기창, 길선주, 이기풍 목사)가 배출되었다. 이후 1924년까지 신학교 교장직에 있으면서 김익두, 함태영, 김선두, 남궁혁, 주기철, 채필근 등 800여 명의 목사를 배출했다. 그는 의료사업이 선교사가 경영하는 한 그것 자체가 기독교의 이 미지를 길러주는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이렇듯 한국 교회사에 있어서 의료선교 사역이 교회설립과 기독교 교육사업과 더불어 중요한 역할과 의미를 지속적으로 갖게 된 데에는 마포삼열 목사의 역할이 컸다.

한국선교에 있어 평양대부흥운동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캐나다 출신 의료선교사 로버트 하디 가 주도한 1903년 원산기도회가 도화선이 되어 성령에 이끌린 회개운동이 일어났다.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의 주역은 길선주 장로였다. 1907년 1월,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부흥사경회가 있었다. 그로 인해 한국 교회 안에 회개운동이 일어났고, 새벽기도운동이 시작되었고, 부흥사경회와 성경공부가 생겨났다. 그는 3.1독립만세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활동하는 등, 한국교회와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그가 한의사 출신의 의료인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다.

이후 지방선교 분할정책으로 각 도마다 병원이 세워지고 의료선교사업이 펼쳐졌다. 1884년부터 100년간 내한하여 활동한 선교사는 1058명, 이중 의료선교사는 263명(24%)이었고 치과의사 포함한 의사는 150명, 간호사는 76명이었다. 의료선교사의 국적별 분포로 미국 출신이 84%였다.

개화기 조선을 깨운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었다. 믿음으로 순종한 미국의 수많은 선교사들의 거룩한 헌신으로 구원받지 못할 어둠의 나라에서 구원의 축복이 가득한 자유대한민국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

 

의료선교의 태동기, 받는 선교에서 나가는 선교로

70년 동안의 도움받는 선교시대를 마감하고 복음과 의료의 빚을 갚기 위해 1969년 기독의료선교 협회가 발족되었다. 1977년 방글라데시에 첫 단기의료선교봉사단을 파송하였고 의사, 간호사, 선교사가 방글라데시에서 처음 장기의료선교사역을 시작하였다. 소수의 깨어있는 교회와 몇몇 기독병원에 의해 주도되었으나 산발적, 단회적이어서 선교사역이 지속되지 못하였다.

1980년 CMF 의대생 수련회가 의료선교를 주제로 처음 개최되었다. CCC, IVF등의 학생선교단체가 가세하여 1988년 선교한국, 선교횃불 등의 학생선교 연합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단기 의료 선교여행을 통해 의료선교의 활성기 시대를 맞았다. 각 선교단체마다 독자적인 선교방식을 채택, 시행착오를 겪으며 확산되었다. 훈련과 지원에 있어 비효율적이고 중복되어 적 절한 연합사역의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1989년, 제1회 의료선교대회로 의료선교를 표방하는 모든 단계인 의료선교단체와 학생선교단체, 지역교회와의 연합이 가능해졌다. 의료선교교육훈련원을 통 해 선교 헌신자를 위한 최소한의 훈련을 시행하였다. 9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료선교가 시작되었으 며 미전도종족과 회교권에 의료선교를 위한 복음이 들어갔고 보다 조직적이고 전문적 수행을 위 해 의료선교정보전략연구소가 발족되었다.

 

한국 의료선교의 숙제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되어 하나님의 나라가 그곳에 임하는 것이 선교의 궁극적 목적이다. 모든 선교활동이 이 목적에 집중되어야 하는 것을 전제한다면 의료선교는 마땅히 그 선봉에 서야 한다. 조선 개화기에 의료를 통해 복음이 들어오고 복음이 온 나라에 퍼져나갔던 점을 기억한다면 한국교회는 의료선교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간 받던 선교에서 나가는 선교로의 전환과정을 겪으며 우리는 수많은 사역을 해왔다. 시행착오도 많았다. 선교지의 의료활동을 우리들 입장에서 전개, 우리가 준비한 전문가와 물자를 통해 우리들의 봉사, 구제 활동을 해온 것이라는 반성도 있다.

지역사회 발전 개념이라는 게 있다. 과거 19세기는 식민지 경영을 위한 현지 인력 개발 모델이었고,

20세기에는 미국의 주도로 상품시장의 확대를 목표로 한 형태였다. 21세기의 모델은 지역주민이 동참하여 지역주민이 주인이 되는 발전 개념이다. 선교의 형태도 이런 지역사회 발전 모델을 따라가는 경향이다. 현재 우리의 선교는 과거 20세기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향후 지향해야 할 선교의 모습은 지역주민에게 실제적 도움이 되는 모습이어야 하겠다. 외부에서 느끼는 필요가 아닌 내부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채워주는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겠다.

David Barett은 20세기는 세계 복음화가 가능했던 시대였으나 경쟁과 중복으로 인해 실패하였고 21세기에는 파트너쉽과 네트워킹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실제 세계선교계는 다양한 그룹들이 모여 세계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Call to All” 국제 컨퍼런스에서 20년 후 미전도종족이 사라질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현재 비접촉 미전도 종족의 수는 639개(2000년 기준), 무슬림 미전도 종족 가운데 비접촉 미전도 종족의 수는 247개(2005년 기준)에 불과하다. 지난날 우리의 선교가 단기적인 의료활동을 통한 구제성격의 의료선교 또는 병원을 설립하여 지역주민을 진료하는 봉사활동의 성격이 강했다면 이제는 전방 개척 선교의 필요성을 교육하고 훈련해야 할 시대로서 의료선교와 의료선교사의 새로운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 의료선교사는 의료인 이전에 온전한 예배자, 중보자로 세움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다양한 은사를 가진 사역 그룹들과 팀사역을 할 때 반드시 요청되는 부분이다.

또한, 헌신자들을 계속 돌볼 수 있는 기관이 필요하다. 그리고 갈등과정을 돌봐줄 선배와 스승이 필요하다. 타문화권 가운데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사역이 지속되기 위해서 전문적인 의료선교 센터가 만들어져야 한다. 헤드쿼터가 각 지역마다 세워져 이들을 컨트롤 하는 방식이 현실적이다. 선교지의 의료상황을 연구하여 선교사들의 입국을 조사하여 알려줄 전문적 단체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반 선교단체와의 협력이 중요하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 간의 협력, 네트워킹이 필요하다.

 

김윤영 박사  kairos5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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