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명인 찰스(Darwin)와 무명인 찰스(Hodge)

강희현 강도사(참사랑교회)

먼저 소개할 인물은 “찰스 다윈”(Charles R. Darwin, 1809-1882)이다. 다윈은 『종의 기원』(1859)을 통해, 오늘날 과학계에 만개한 진화론의 탄생을 도운 장본인이다. 쉽게 말해, 그는 “진화론의 아버지”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주창한 “자연선택설”, 즉 변이를 통해 좋은 “유전자”를 획득한 종은 살아남으며, 열등한 유전자를 지닌 종은 도태된다는 가설은 이제 “이론”으로 여겨질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오늘날 모든 중고생은 반드시 교과서에서 “찰스 다윈”을 만난다.

이어서 소개할 인물, “찰스 핫지”(Charles H. Hodge, 1797-1878)는 벤자민 워필드와 더불어 구(舊) 프린스턴 신학을 대변하는 탁월한 장로교 신학자였다. 그는 “세계 4대 칼빈주의 신학자”1)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힐 정도였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미국 장로교 신앙의 표준이 될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여 투쟁했던, 장로교 신앙의 대들보 같은 인물이었다.2) 그러나, 정작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름조차 들어보기도 힘들다. 그래서, 마치 다윈이 국제적인 “유명배우”라고 한다면, 핫지는 시골 극장의 “무명배우”와 같은 느낌이다.

2. 찰스(Hodge)는 찰스(Darwin)를 좋아했을까?

이번에 두 명의 “찰스”를 함께 다루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첫 번째로 핫지와 다윈은 동시대를 살았다. 핫지가 다윈보다 열두 살 형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중요한데, 흔히 핫지가 다윈을 좋아(인정)했다는 오해이다. 특히, 오늘날 유신 진화론(진화론을 기준으로 성경의 창조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학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이 이러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유신 진화론의 역사적 근거로 그를 인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근거가 없다. 물론, 핫지의 제자 워필드가 진화에 대해 낙관적인 색채를 드러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워필드도 어디까지나 진화를 가설(추측)로 여겼을 뿐, 진리와 같은 하나의 “이론”이나 “원리”로 여긴 적이 없다. 그는 당시 (염색체를 제대로 관찰할) 전자 현미경도 없었으며, 오늘날 그 흔한 “멘델의 법칙”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짝 가능성을 열어두었을 뿐이다.3) 재스펠의 말처럼, “줄곧 워필드는 만약 진화가 사실로 증명된다면, 이럴 경우에 한해서만 진화를 수용할 수 있다(아직 증명되지 못했음을 강조하면서)고 말했다. 그리고 여러 진화 이론이 과학계 안에서조차 타당성을 갈수록 더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4) 따라서, 핫지나 워필드 둘 다 마찬가지이다. 즉, 이들은 오늘날 유신 진화론 주창자들과 같은 선상 위에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왼쪽은 찰스 다윈(Charles R. Darwin, 1809-1882), 오른쪽은 찰스 핫지(Charles H. Hodge, 1797-1878)

3. 찰스(Hodge)는 찰스(Darwin)를 싫어했다.

핫지는 말년에 『다윈주의란 무엇인가?』(What’s Darwinism?)를 집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진화론의 찬/반을 주장하는 여러 학자의 견해를 나열하고, 다윈의 견해가 과연 성경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에 관한 진지한 논의를 담았다. 그리고 핫지가 내린 결론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한마디로 “진화론은 과학이 아닌 종교와 같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던 모든 식물과 동물들이 하나의 세균으로부터 진화했다는 것을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공통조상설).5) 그리고 답하기를 “이것이 다윈의 교리(doctrine)”라고 지적한다.6) 쉽게 말해, 진화론은 관찰할 수도 없고, 실험할 수도 없는 “과학”이 아닌, 일종의 믿음을 요구하는 “종교”와 같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핫지는 아래와 같은 흥미로운 질문을 추가하는데, 우리 모두 생각해볼 내용이다.

“진화론이 『창조의 흔적들』(Vestiges of Creation, 1844)에서 예언되었을 때, 그것은 보편적으로 거부됐다. 그런데, 20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윈의 제안은 극찬을 받았다. 도대체 왜 이러한가? 그 사실들은 그 당시 그대로다. 그것들은 그때도 지금처럼 잘 알려져 있었다. 진화에 관한 그 이론은 그때 그대로였다. 그런데 1844년에 과학적 거짓이 1864년에 과학적 사실로 어떻게 바뀌는가? 극장에서 드라마가 소개되고 보편적으로 비난받을 때, 그리고 조금 후에 경치가 약간 바뀌면서 황홀한 박수갈채를 받게 되는데, 결론은 그 변화가 관객(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드라마(진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7)

또한, 핫지는 『조직신학』에서 모든 생명체에게 나타나는 “유기체 구조의 조화”로 진화를 비판한다. 예를 들어, “육지에서 살도록 의도된 동물들은 구조나 장기, 또는 특별히 수생 동물들에게 적합한 부위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사자, 호랑이, 소, 말 등에는 아가미, 비늘, 지느러미, 방향타와 같은 꼬리가 없다. 동물의 모든 부분이 조화를 이룬다. 그들은 모두 연관되어 있고, 하나와 같은 목적에 적응되어 있다. 물고기의 몸은 최소한의 저항으로 물을 가르기 위한 모양을 하고 있다. 물고기의 지느러미는 노, 꼬리는 추진과 안내에 적합하다. 호흡 기구는 공기와 물을 분리하는데 적합하다. 소화 기관은 물고기가 사는 환경에 의해 공급되는 음식의 섭취에 적합하다.”8) 따라서, 만일 진화론자들의 주장처럼, 변이의 누적으로 수상생물이 정말 육상생물로 진화했다면, 변이의 과정에서 모든 세부 기관은 언제나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물고기가 진화를 통해 육지로 올라오는 그 순간을 상상해보라. 그러면 호흡기, 소화기, 피부, 안구, 팔, 다리 등 모든 부위와 기관은 동시다발적으로 같은 환경에 적합한 변이를 이루어야 한다. 만일 여러 기관 중 하나는 습지대, 그 외는 건조한 땅에 적합한 변이를 한다면, 그 유기체는 전체적인 부조화로 생존 확률이 매우 낮을 것이다. 또한, 백번 양보해서 모든 기관이 동시다발적인 변이의 누적을 통해, 특정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는 완전한 개체로서의 진화에 성공했다고 해도, 그 개체는 번식을 위해 같은 종(種)으로 진화한 암/수를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만나야 한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이 설정한 수만 년이라는 진화의 긴 시간 동안에 같은 종(種)으로 진화한 암수 한 쌍이 만날 확률은 역시나 극도로 희박하다.

4. 우리에게 주는 교훈

필자가 제목을 위와 같이 지은 이유는 찰스라는 이름의 두 사람이 같은 시대를 살았고, 이름도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사람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주위에는 수많은 종의 생명체가 살고 있다. 그리고 어떤 종들은 서로 비슷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서로 다른 차이는 분명히 존재한다.

핫지와 워필드가 살았던 시대와 다르게 오늘날 이 시대는 수많은 과학적 진보와 발견을 이루어냈다. 프란시스 S. 콜린스가 주도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32억 개의 염기쌍 서열을 밝혀낸 위대한 업적이다.9) 그래서, 이제는 인간과 침팬지가 98.5% 유전자가 일치한다는 사실까지 밝혀냈다. 그러나, 시대가 흘러도 (유신) 진화론자들의 변하지 않는 논리가 있다. 그것은 사람과 침팬지가 비슷하니까, 유전자가 이렇게까지 유사하니까, 진화가 과학적 진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저 비슷하다는 이유로 진화를 정말 과학적 진리로 말할 수 있는가?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질문은 “진화 vs 창조, 과학 vs 교회”가 아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해결할 질문이 있다. 그것은 “진화가 정말 과학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만일 진화가 정말 과학이라면, 더는 “유사성”, “동일성”이 아닌, “종의 경계를 뛰어넘는 진화에 대한 관찰과 발견”의 구체적인 증거가 필요하다. 70억에 가까운 지구상 수많은 인류 중에 최소한 100명 정도는 염색체가 46개로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진화의 단계에 돌입하여 염색체 수에 미미한 변화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종의 기원』이 발간된 2년 후, 중간화석으로 발견된 “시조새”는 진화의 과정에 있는 중간단계(파충류+조류)가 아닌, 하나의 종이라는 해석들이 속속히 등장하고 있다.10) 새에게 “이빨”이 있다는 것을 파충류의 특징으로 해석하는 근거는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인가? 거위도 이빨은 있다. 또한, 1913년 유인원의 화석으로 발표된 “호모 필트다운인”은 40년 후에 사람의 “머리턱 뼈”, 우랑우탄의 “아래턱 뼈”, 침팬지의 “송곳니”를 조합한 조작된 화석임도 밝혀졌다.11) 또한, 생물 교과서에 흔히 실리는 헤켈의 조작된 배아의 사진도 마찬가지다.12) 이처럼, 진화는 여전히 오늘날도 하나의 가설로 머물러 있다.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동일 종이 갖는 유전자적 범위 안에서 변이(소진화)는 얼마든지 가능해도, 종의 경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진화는 그저 추측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왜 교회는 과학을 반대하는가?”라는 질문에 더는 우왕좌왕해선 안 된다. 우리는 다시 반문할 수 있어야 한다. “진화는 정말 과학인가? 과학적 방법론으로 입증된 분명한 법칙인가?”

그대는 밤마다 날아다니는 모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만일 당신이 진화를 믿는다면, 수십만 년 후에 모기는 고등 생물로 진화할 가능성을 지닌 조상에 해당한다. 따라서, 함부로 죽이지 말고, 아낌없이 당신의 혈액을 제공하라! 그러나, 필자는 그냥 에프킬라를 마음껏 뿌리고 속 편하게 잠을 청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우리 선배(Hodge)의 가르침처럼 “여전히 모기는 그냥 모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미주

1) 홍치모, “찰스 핫지의 생애와 신학,” 『찰스 핫지의 신학』 (서울: 솔로몬, 2009), 15.

2) 최덕성, “정통신앙과 찰스 핫지,” 『리포르만다』 2018년 6월, http://reformanda.co.kr/xe/index.php?document_srl=101451&mid=theology .

3) 오늘날 중학교 과학 시간에 배우는 “멘델의 법칙”은 1865년에 발표되었으나,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인 관심을 받게 되었다.

4) 프래드 G. 재스펠, 『한 권으로 읽는 워필드 신학』, 김찬영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4), 623.

5) Charles Hodge, What Is Darwinism?, (New York: Scribner, Armstrong, and Company, 1874), 143.

6) Hodge, What Is Darwinism?, 143.

7) Hodge, What Is Darwinism?, 145.

8) Charles Hodge, Systematic Theology Vol. 2. (Oak Harbor, WA: Logos Research Systems, Inc., 1997), 82-83.

9) 유신 진화론을 옹호하는 그의 견해는 한글로 번역된 프랜시스 S. 콜린스, 『신의 언어』, 이창신 역, (파주: 김영사, 2009)을 참고하라.

10) 중간화석에 대한 비판은 다음 글을 참조하라. 임번삼, “중간형태로 주장되는 화석들: 말, 시조새, 오리너구리, 세이모리아, 익테오스테가,” 『한국창조과학회』, 2005년 2월,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08&keyword=%BD%C3%C1%B6%BB%F5&type=A&isSearch=1&orderby_1=editdate%20desc&page=2 .

11) 최윤필, “필트다운인(12월 18일),” 『한국일보』, 2017년 12월,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712180472961241 .

12) 조정일, “허구로 판명난 헥켈의 진화재연설을 언제까지 생물교과서에서 보아야 하는가?,” 『한국창조과학회』, 2005년 3월, http://creation.kr/Textbook/?idx=1289614&bmode=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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