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우목사의 지중해에서 본 한국과 유럽 이야기] [8]

   
해방 후 외국인들이 한국의 크게 두 가지를 동경했다고 한다. 첫째가 금강산이었고, 둘째가 부모 공경이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둘 다 잃어버린 상태다. 현재 한국대학의 숫자는 영국의 그 숫자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럼에도 “배운 며느리에게 밥 얻어먹기 힘들다”라는 말보다 오늘의 한국 현실을 더 잘 대변해 주는 표현은 없을 것 같다. 배움과 교양, 학문과 효도가 반비례되는 슬픈 현실도 모른 채 다들 제 잘난 척하며 살아가는 듯하다. “황새는 그 어미가 나를 수 없을 때에 그 새끼들이 먹이를 가져온다”라고 했는데 “사람은 그 어미가 자리에 누울 때까지 먹이를 빼앗아 간다”라고 한다면 너무 심한 표현인지 모르겠다.


당신은 자식을 뱃속에서부터 가르쳤습니다.


한 인생은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보다 빠른, 어머니 태 중에서부터 시작된다. 태아는 어머니 뱃속에서 모든 것을 듣고, 느끼고, 배운다. 임산부가 담배를 피우면 태아에게 산소부족 증세가 나타나며, 엄마가 담배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만 해도 태아가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어머니 뱃속에서의 경험은 태어나서 살아갈 모든 삶에 영향을 미친다. 과학적인 표현을 빌리면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우리말로 하면 “닮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사실을 알았든지 몰랐든지 우리 어머니들은 일찍부터 태 중에 있는 자녀를 위해 얼마나 신경을 많이 썼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임산부가 지켜야하는 태교나 금기(禁忌)사항이 한국보다 많은 나라가 있을까 싶다. 우리 어머니들은 아기를 가졌을 때 이웃집 담벼락을 넘는 것도 삼가 했으며, 평소 그토록 재미있게 보던 굿 구경마저도 삼가 했다. 거기에다 시어머니까지 가세해 “얘야! 부정한 것은 보지말고, 음탕한 소리도 듣지 말고, 투정이나 원한을 품어서도 안 된다”라고 했다. 별미나 다름없던 닭고기도 행여나 태어날 아기의 피부에 닭살이 돋을까봐 먹지 못하게 했고, 오징어 같은 생선도 아이의 뼈가 오징어처럼 물러질까 봐 먹지 못하게 했다. 이 같은 금기 사항은 미신적인 것도 없지 않으나 바꿔 말해, 우리 어머니들이 철저하게 태아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했다는 뜻이다.


당신은 자식 때문에 짝 젖이 되었습니다.


고대 라틴어로 여인들의 유방이나 젖을 “맘마(mamma)”라고 했다. 그래서 맘마는 어머니란 뜻도 되고, 식사(食事)란 뜻도 된다. 남녀 유별을 무척 따졌던 한국이지만 옛 한국 어머니들이 뭇사람들 앞에서 젖가슴을 드러내놓는 걸 예사로 알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모성의 원천으로서의 유방은 자녀를 위한 밥통(?)의 의미가 강했기에 크면 클수록 좋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방(房)자를 사용하여 유방(乳房)이라고 한 것만 보아도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코넬대학의 소크박사는 원숭이가 그 새끼에게 젖을 먹일 때 42번의 케이스 가운데 40번은 왼쪽으로 안고 젖을 먹인 사실을 밝혀 냈다. 또한 그는 미술관에 전시된 모자(母子)를 테마로 한 회화나 조각 4백 66점 가운데 3백 73점인 80퍼센트가 왼쪽으로 안고 있다는 사실도 조사 발표했다. 실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림이나 조각품들을 보면 이 사실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옛 한국 어머니들도 일찍부터 “좌포수유(左抱授乳)”즉, 아이를 왼쪽으로 안고 젖을 먹였다. 비록 왼쪽에 있는 어머니의 심장 소리가 태아의 정서와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줄을 몰랐지만 참으로 지혜 있는 행동이었다.


영국의 정신의학자 멜라니 클라인은 아이를 낳아 백일동안 모유와 분유를 먹인 결과 전자는 사랑과 신뢰 등 선량치가 높았지만, 후자는 탐욕, 편벽 등 불량치가 높았다”라고 보고한바 있다. 실제 13세기에 이탈리아를 지배했던 프레더릭 2세는 30여명의 후손들에게 젖을 먹이거나 또 만지지도 못하게 격리시켜 기르게 한 결과 아이들 대부분 일찍 죽거나 병약했다.


이와 달리 유럽 최고 가문으로 알려진 합스부르크 왕가는 대대로 심신이 건강하고 미모 또한 아름답기로 소문나 있다. 이것은 아기를 반드시 모유로 기르게끔 성문화된 합스부르크 가문의 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합스부르크가의 왕비도 여섯 명의 자녀를 모두 모유로 길러 내었다는 점에서 곧 모유는 개인의 우수성뿐 아니라 민족의 우수성을 위해서라도 장려되어야 할 육아법이라 여겨진다. 요란한 분유 회사의 선전으로 모유를 기피하고 우유를 장려하고 있는 현대 신세대 어머니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짝 젖을 먹고 자란 세대들이여! 우리의 어머니들이 왜 몸매가 망가져 짝 젖이 되었는지 이제 한번쯤 생각해 볼 때가 된 것 같다.


우리는 당신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단어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동서고금의 사람들이 한결같이 첫 번째로 답한 것이 “어머니(Mother)”라고 했다. 가나안 농군학교 김범일 장로는 “태아가 10개월 동안 어머니 탯줄을 통해서 받는 영양분은 대략 50가론 정도(220L)며, 어머니의 심장을 통해서 공급받은 피는 모두 72드럼통(15,840L)이나 된다.”라고 했다. 이 말은 어머니가 곧 생명의 원천이란 뜻이다. “까마귀는 자기 새끼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한다.”라는 영국속담처럼 어머니에게 자기 자식보다 귀한 것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링컨이 “나의 오늘, 나의 희망과 이 모든 것은 천사와 같은 내 어머니에게서 받은 것”이라고 한 말은 결코 틀리지 않는다.


“스물 하나...당신은 고개를 두 개 너머 얼굴도 본 적 없는 김씨 댁의 큰아들에게 시집을 왔습니다. 스물 여섯... 시집 온지 오 년 만에 자식을 낳았습니다. 당신은 그제야 시댁 어른들한테 며느리 대접을 받았습니다. 서른 둘... 자식이 밤늦게 급체를 했습니다. 당신은 자식을 업고 읍내 병원까지 밤길 이 십리를 달렸습니다. 마흔...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당신은 자식이 학교에서 돌아올 무렵이면 자식의 외투를 입고 동구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자식에게 당신의 체온으로 덥혀진 외투를 입혀주었습니다. 쉰 둘... 자식이 결혼할 여자라고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당신은, 분칠한 얼굴이 싫었지만 자식이 좋다니까 당신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예순... 환갑이라고 자식이 모처럼 돈을 보냈습니다. 당신은 그 돈으로 자식의 보약을 지었습니다. 예순 다섯... 자식 내외가 바쁘다며 명절에 고향에 못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당신은 동네 사람들에게 아들이 바빠서 아침 일찍 올라갔다며 당신 평생 처음으로 거짓말을 했습니다. 오직 하나 자식 잘되기만을 바라며 살아온 한 평생... 하지만, 이제는 깊게 주름진 얼굴로 남으신 당신... 우리는 당신을 어머니라 부릅니다.” 위의 글은 오랜 전 삼성생명이 광고한 내용이다.


지금쯤 자식을 낳아 기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숨으로 세월을 삭이며 오직 자식 하나 잘 되기를 바라며 살아온 평생의 길이기에 불효자조차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사4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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