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담쟁이가 천국과 지옥을 담벽에 그리고 있다 지옥의 넝쿨은 말라죽었고 천국의 넝쿨은 화려한 옷을 입었다./ 사진@김경근

 

福音詩人 김경근(부산 자성대교회 장로)

솔잎 사이로 익어가는 세월 속에 시류(時流)의 물결이 거센지라 길거리에 내몰리는 현실 앞에 말문이 닫힘은 어쩜이랴! 스산한 벌판을 내다보니 어김없이 찾아온 봄날... 논밭에 청운의 꿈을 품고 恨의 씨를 뿌려 천둥 번개 치던 여름날 자식처럼 키워 고운 물감 들던 날에 순리대로 거두었는데, 풍성한 가을에 감사하며 넉넉함이 없으니.

먼 산야의 고운 색동옷이 화려하지 못하고 어떤 촌부의 탄식 소리 들리듯, 생명을 짓밟고 영혼을 갉아먹는 사악한 시대를 어쩔꼬? 삼라만상 피조물이 탄식한다. 세상사 민심은 고갈되어 밀치고 당기고 양분화되어 말 한마디도 살얼음판이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되었는가? 만물의 영장이라면서….

예전에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시절이 그립다. 잘 되는 일도 없었지만 그래도 끈질긴 생명 붙들고 맡겨진 명제 앞에 삶에 지친 몸 추스르고 감당해야 할 일이 있기에 다시 일어나서 ‘비트음’에 귀를 막고서라도 꿋꿋이 제자리를 찾았다.

매일 드나드는 주차장 입구 벽에 오늘 보니 담쟁이 넝쿨이 내 인생을 일깨워준다. 인간들은 자기의 허물을 감추려고 아무리 아름답게 페인팅을 해도 오래가지 못하고 드러나고 퇴색해 간다. 여린 담쟁이가 더위도 무릅쓰고 삭막한 벽을 덮었는데 이 어찌 된 사실인가?

위의 사진을 보면, 흰색페인트 길 따라서 간 넝쿨은 시들어 말라 죽었고 주황색 페인트 길 따라서 간 넝쿨은 색동옷 입고 가을을 노래하고 있으니….

인생의 넓은 길은 멸망이요 좁고 협착한 길은 생명의 길이라. 말씀 따라 영혼이 준비된 자에겐 화려한 종지부를 찍는구나! 이 늦가을 한나절에 네가 날 일깨워주니 담쟁이야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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