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간헐적 가족"이라는 말에 반대... 가족은 사랑 헌신 지속성 담보해야

정소영(미국 변호사)

지난 11월 8일, KBS는 "동성혼, 간헐적 가족, 혈연 넘어선 새로운 가족 공동체"라는 아주 짧은 뉴스를 보도하였다. 

내용은 '우리나라에서도 레즈비언 커플이 회사에 당당히 청첩장을 돌리고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는 것'과 요즘에는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을 넘어서, 가족 이상의 사랑과 끈끈함으로 묶인 공동체가 실험적으로 구성되고 있으니 우리 사회도 이제 이런 다양한 가족 공동체를 편견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취지였다.

언뜻 들으면 참 좋은 이야기인 것 같지만 여기서 '동성혼'과 '새로운 가족 공동체'를 함께 묶어놓은 것은 사악한 의도가 있는 것인지 단지 무지해서 그런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먼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는 다양하다. 가장 정상적이고 건전한 형태라고 믿고 있었던 엄마, 아빠, 그리고 자녀로 구성된 기본적인 혈연 가족 공동체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많이 깨어지고 있고, 개인주의가 발달하면서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새로운 소망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사회에는 한부모 가정도 있고, 조손 가정도 있고, 입양가정도 있다. 공동육아의 형태로 몇 가정이 모여 사는 곳도 있고, 종교를 공통분모로 한 생활 공동체도 있다. 초대교회 공동체도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보다 더 뜨겁게 사랑한 하나님 나라의 가족 공동체였으니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새로운 가족 공동체에 더 넓게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러한 새로운 공동체의 특징은 일반적으로 혈연가족들보다 더 큰 도덕의식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엄마와 아빠가 본능적으로 느끼는 모성애와 부성애를 뛰어넘는 사랑이 있어야 하고,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위해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이나 자기 가정의 선호를 희생하면서도 더 큰 책임을 져야 한다. 물론 혈연가족은 현실에서의 실현 여부와는 별개로 서로 간에 무한책임을 지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 역시 이와 유사한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사랑과 헌신을 결단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필자는 KBS의 '간헐적 가족'이라는 말은 매우 잘못된 표현이라고 본다. 간헐적이라는 말 자체가 임시적이고, 필요에 따라 헤쳐 모이는 그런 공동체를 말하는데 우리 사회가 새로운 가족 공동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은 혈연가족 못지않은 사랑과 헌신과 지속성을 담보하는 가족이지, 필요에 따라 해체 모이는 형태가 아니다. 이런 형태를 위해서는 '생활 공동체' 또는 '삶 공동체' 등의 다른 단어를 사용해서 지칭해야 혼란이 없을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에 '동성 결혼'을 넣고자 하는 움직임이다. 미국의 동성결혼 합법화 과정을 보면 그 순서가 먼저 '우리 서로 사랑하게 해 주세요.', 그다음은 '혼인 관계 증명서 발급해 주세요'. 그리고 '생활동반자법' 만들어서 사실혼으로 인정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우리의 관계를 결혼이라고 불러주세요.' 였다.

사실 미국은 2015년, 동성결혼 합법화 이전에도 이미 '생활동반자법' 등으로 동성 커플들이 이성 결혼 부부들과 대등한 법적인 권리를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모든 법적 평등과 권리를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애 지지자들이 굳이 '결혼'이라는 단어를 쟁취하고자 노력한 것은 동성결혼에 늘 따라붙는 '부도덕한 행위'라는 꼬리표를 떼어내고 '결혼'이라는 단어가 포함하고 있는 '생명과 거룩함'의 이미지를 동성 간의 성관계에도 덧씌우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과연 동성 간 성행위가 인간의 도덕적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행위인가? 인간이 인간다워지는 것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을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의 본능과 욕구를 자제하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었을 때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지는 것이다.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성적인 욕구에 끝없이 탐닉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극도의 금욕도 실천할 수 있는 존재이다. 즉, 인간은 성적인 욕구에 마구 끌려다니는 그런 짐승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동성애 지지자들은 자유의사에 따라 합의한 두 사람 간의 성행위에 대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두 사람이 자유롭게 합의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성행위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자의로 합의한 청소년과 성관계를 한 성인을 범죄자로 본다. 우리는 합의에 따른 근친상간을 패륜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여러 사람과 합의한 성관계를 가지는 것을 부도덕한 짓이라고 말한다. 이유는 이러한 행위가 궁극적으로 한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 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유린하고 궁극적으로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동성 간 성행위를 전제로 한 동성결혼은 동일한 도덕적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동성애 지지자들은 교묘하게도 도덕적 판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관계와 인간의 본능을 넘어 더 높은 도덕적 수준을 요구하는 관계를 같은 것이라고 포장을 덧씌우고 있다. '간헐적 가족' 또는, '새로운 가족 공동체'라는 엉뚱한 단어를 동원해서 말이다. 그리고 언론과 대중은 이러한 잘못된 포장에 속아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갈수록 깊은 통찰과 분별이 요구되는 이 시대에 우리는 과연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영적으로 준비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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