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경험에 비추어 독서에 관해 몇 가지 조언을 하려고 한다. 먼저 독서에 관한 책이자, 독서의 기초가 될 만한 좋은 책을 세 권 소개한다. 모티머 애들러의 「생각을 넓혀주는 독서법」(멘토),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열린책들), 사이토 다카시의 「원고지 10장을 쓰는 힘」(루비박스)이다. 다카시 책으로도 성이 차지 않으면 정희모의 「글쓰기의 전략」(들녘)을 추천한다.


애들러의 책은 독서 방법론에 관한 한 고전 중의 고전이다. 이 책을 원재료로 삼아 백금산은 「책 읽는 방법을 바꾸면 인생이 바뀐다」(부흥과 개혁사)고 했다. 이보다 더 애들러의 책의 진가를 가늠할 수 있는 말은 찾기 어려울 듯하다. 애들러의 독서 방법론으로 서평 쓰는 법을 배워 「공격적 책읽기」와 「공감적 책읽기」(SFC)를 썼다. 아예 통째로 외우다 시피 여러 번 읽기를 바란다. 큰 진보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에코의 책은 그의 이름값을 하고도 남는다. 이 책은 학문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기초적이고 근간이 되는 물음에서부터 논문의 주제를 선정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찬찬히 일러준다. 전문적인 학자나 학문에 관심이 있다면, 그리고 논문 쓰기를 앞두고 있다면 미리 읽어두면 더할 나위 없는 유익을 얻을 수 있다. 학자나 교수, 유학을 갈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고 소화해야 한다.


다카시의 책은 위의 두 책과 비교하자면 실용적이다. 그만큼 실제적이다. 내용은 글쓰기에 관한 다른 책과 비교해서 특별히 돋보이는 것이 없다. 무난하다. 다만, 원고지 10장이라는 콘셉트가 도드라진다. 요지는 이렇다. 6-8매 정도의 글은 누구나 쓴다. 그러나 80매 이상의 논문은 아무나 못 쓴다. 그러나 조금만 노력하면 10매 분량은 거뜬히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10매를 여러 개 쓰면 논문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책도 너끈히 쓸 수 있다. 나는 이 방법을 이용해서 교회 주보의 칼럼을 쓰고 있고, 그것을 묶어서 최근에 책을 냈다. 「가룟 유다 딜레마」(IVP)라는 책이다.


그러면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 나는 닥치는 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읽으라. 신학부와 신대원은 대학원과 달리 전문가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다. 전체와 기초를 세우는 시기이다. 하여, 가리지 말고 읽고 또 읽어야 한다. 예로부터 동양의 지식인상의 전형은 문(文), 사(思), 철(哲)이다. 요즘에는 인문학 말고도 경제학 등의 사회 과학, 그리고 자연과학에 대한 독서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상대성이론이니, 빅뱅이니, 초끈이론 등에 대해 알아들을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송나라 구양수의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쓰라는 말에서 첫 번째가 많이 읽으라는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아무쪼록 많이 읽기를.


그래도 독서도 공부인데, 근본이 있고, 가닥이 있는 법이다. 멘토 찾기 또는 전기(Biography) 읽기를 권한다. 대학 생활의 성공은 일, 십, 백에 달려 있다. 일은 평생의 정신적 아비요, 십은 평생의 친구요, 백은 두고 두고 읽을 좋은 책 백 권이다. 이것만 하면 멋진 대학 생활을 했다고 자부해도 좋다. 책을 읽는 친구들과 함께, 책 속에서 스승과 길을 발견한다면 이야말로 일석삼조가 아니겠는가. 신대원과 대학원 다닐 때, 몇 명이 모여서 칼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을 영어로 읽던 기억이 새롭다.


한 저자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기 바란다. 그리고 전기를 두루 두루 읽으면 좋겠다. 그 안에 리더십이 있고, 역사가 있고, 철학과 사상이 있고, 경건과 영성이 있고, 삶의 지혜와 교훈이 있다. 그렇게 읽다가 보면, 어느새 그가 내 안에 들어오고 내가 그 안에 들어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요즘 시대를 일컬어 아비 부재, 신 죽음, 권위의 해체 시대라 한다. 일만 스승이 아니라 한 아비가 절실하다(고전 4:15). 백금산의 「전기를 읽으면 하나님의 일하심이 보인다」(부흥과 개혁사)를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서서 꼭 훑어보고 자극을 받아 인물과 한 저자의 전작을 독파해 보기를 기대한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주제를 정해서 읽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알고자 하면 하나를 제대로 모르게 된다. 한두 가지 영역은 아마추어 이상의 수준에 도달할 필요가 있다. 일반 평신도의 경우를 들자면, 자신이 관심 있는 신앙의 한 분야에 올인 하는 것이 좋다. QT, 데이트와 결혼, 소명, 돈, 영화나 문화 등의 영역을 신앙과 관련지어 짓고, 매니아급에 해당하는 실력을 갈고 닦으면 자신이 섬기는 교회와 선교단체의 성도와 청년 학생들을 섬기는데 유용하다.


목회자가 될 신학생들은 성경 66권을 꿰고 있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그 중 한 권 정도는 정통해야 한다. 그리고 신학, 목회와 경건에 관한 한 분야를 파고들어야 한다. 예컨대, 신학자나 사상가, 고통이나 윤리, 예배, 기도, 전도, 제자도, 세계관, 성경 공부 인도법, 렉시오 디비나 등 자신의 관심사를 골라서 집중적으로 몰입하면 크게 유익하다. 실용적으로 말한다면, 그래야 부흥회와 수련회를 인도할 기회가 오더라도 활동하고 디딤돌로 삼을 수 있다.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목사로서 평생 적어도 한 권의 책을 짓게 되는 기초를 얻게 된다.


그러면 얼마를 읽으면 전문가가 되고, 책 한권 쓸 수 있을 정도가 될 수 있을까? 정답은 없다. 끝도 밑도 없다. 독서에 관한 한 최소한의 커트라인은 제시해 본다면, 적어도 50권에서 100권이다. 번역된 책으로 한정했을 때, 한 주제에 100권의 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QT나 세계관에 관해 100권의 책을 읽는다고 해 보라. 그 정도 읽으면 이미 도사가 되어 있을 것이고, 그 분야에 얼마간의 이름이 알려졌을 것이다.


준비 기간은 한 달에 한 권을 읽는다고 해도 5-8년 전후가 소요된다. 한 달에 두 권이라면 기간은 훨씬 줄어든다. 신문 기사나 잡지, 학술지, 그리고 관련 모임과 활동에도 참여해야 한다. 처음에는 진보가 느려보여도 읽다가 보면 일순 속도가 붙을 것이다. 독서하다 보면 나중에 서로 겹치는 내용도 눈에 띄고 장단점도 파악되고, 공략한 틈새도 보일 것이고, 새로운 블루오션도 창출할 수 있다. 여기에 조언을 하나 더 한다면 대학원 전공과 결부시키면 금상첨화다.


그리고 위험한 충고를 하나 더 해야겠다. 이제 영어 공부 그만해라는 것이다. 학부 내내 영어 공부하다가 마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렇다고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학과나 신학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다. 일찍 포기할수록 좋다. 단 두 가지 조건이 있다. 하나는 학문이나 유학을 목적으로 삼는 이라면 죽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대학으로 치면 1학년이나 늦어도 2학년 까지는 영어에 투자해도 좋다. 본인이 안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아니다 싶으면 그 열정과 시간, 돈을 독서에 투자하라. 침신대 도서관 보유 도서가 국내에서 만만치 않다. 그리고 구내 서점에 있는 책이 몇 권인지 세어보라. 그것만 다 읽는다고 해도 정말이지 대단한 실력자가 된다.


최근에 나는 “성서는 사람을 만들고, 독서는 사람을 키운다”는 문장을 얻었다. 아이디어의 원천을 캐낸다면 존 웨슬리이다. “한 권의 사람, 만 권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한권은 당연히 성서이고, 만 권은 독서이다. 하나님이 사용한 사람치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없고, 준비해야 할 목록에 성서와 독서는 첫손가락에 꼽혀야 한다. 목회자나 목회를 준비하는 신학도나 모든 예수의 제자들이 성서와 독서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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