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목사(회복의교회 담임)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신 후에 가장 먼저 하신 일은 율법을 주신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관계인지 규정한다. 여기서 신정정치(神政政治) 개념이 나온다. 신정정치는 종교개혁 이후에 법치(法治)라는 방식으로 여러 국가들에 이식(移植)된다. 개혁자들은 법치를 통해 복음이 들어간 나라마다 하나님의 통치가 구현되도록 했다.

그러나 법치의 개념은 프랑스 혁명 이후에 혼란스러워졌다. 법에 대한 인본주의적 입장이 등장하면서 나라의 존재 방식을 크게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로 보게 됐다.

얼마 전 집권여당은 헌법을 개정하려 했다. 여기서 핵심적인 이슈 가운데 하나는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자유”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민주주의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민주주의라고 다 같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러면 그 차이가 무엇인가? 이것을 규정하는 것이 바로 ‘법률관’이다.

먼저 보수정치의 법률관을 이해하기 위해 보수주의 정치 시조라 할 수 있는 영국의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의 주장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인간이 법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은 단지 하나님의 법을 비준하거나 왜곡할 뿐이라고 한다.1) 버크는 법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을 위해 주신 것이며 “그 법을 근거로 인간에게 권리를 주셨다”고 했다.2) 이것이 보수 정치관을 가진 사람들의 법률에 대한 이해다. 이것을 일명 ‘자연법’이라고 부른다. 자연법이란 시대와 지역이 변해도 섭리적으로 존중돼야 하고, 존중 될 수밖에 없는 법을 말한다. 한 마디로 법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이다.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이 법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본 관점과 달리 좌익들은 법을 인간의 단합된 의견의 결과라고 본다. 법의 출처를 하나님으로 보지 않고 사람의 합의로 본다. 전형적인 인본주의다. 인민들이 단합된 목소리를 내면 그것이 곧 법적인 권위로 여겨진다. 오늘날 “헌법 위에 떼법이 있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관점은 장 자크 루소의 사상에 기원을 둔다.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고의 권리를 누리는 것이라 본다. 법이란 하나님에게 기원하지 않고, 사회다수가 계약한 결과라는 말이다.3) 때문에 루소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최고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상태는 법의 지배에서 벗어난 원시 상태다.4)

다시 하던 얘기로 돌아가자. 다수의 의견에 의하여 법이 규정돼야 한다는 관점은 후에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말로 유명한 벤담의 공리주의에 영향을 준다. 놀라운 사실은 공리주의가 헤겔의 영향을 받으면서 나중에는 ‘마르크시즘’으로 열매를 맺게 됐다는 사실이다. 이런 사실을 러셀 커크는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한다.

“케인스는 벤담의 공리주의가 최종적으로 도착한 어리석은 곳이 마르크시즘이라고 말했다. 공리주의자들의 위대한 목적에서 정신과 상상력이 빠져나가면 마르크시즘이 된다.”5)

여기서 핵심이 무엇인가? 법의 권위를 하나님께 두면 자유민주주의가 되고, 법의 권위를 사람들이 계약에 두면 인민민주주의가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을 바르게 잡아야 한다. 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민’(民/백성)이 ‘주인이 된다’는 말이다. 여기서 ‘민’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인민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구분된다. 루소나 벤담이나 마르크스는 다수(多數)를 ‘민’(인민)으로 규정한다.6) 이 말은 역설적으로 소수는 ‘민’이 아니라는 의미가 내포된다. 때문에 혁명이 일어나면 다수의 목소리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소위 ‘적폐’가 된다. 이럴 경우 법은 다수(인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 된다. 옳고 그름은 다수(인민)가 규정한다. 소수는 ‘악’이 된다. 여기서 인민재판의 논리가 형성된다. 그 결과 도덕성과 정의는 객관적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다수의 풍토가 도덕성과 정의를 규정한다. 하나님께서 섭리로 주신 자연법은 철저히 무시된다. 다수(인민)가 동성애를 찬성하면 합법이 된다. 반대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소수의 의견은 철저히 무시될 뿐 아니라, 악이요 적폐로 규정된다. 여기서 인민민주주의라는 용어가 형성된다. 인민민주주의는 다수가 주인이 되는 세상이라는 말이다.

이제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해보자. 자유민주주의에서 ‘민’(民/백성)은 무엇인가? 누가 주인이 된다는 말인가?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다. 법에서 벗어나면 주인으로서의 자유와 권리는 제한된다. 커크의 주장처럼 “인간의 권리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때 존재하고, 권리는 법의 자식이기 때문”이다.7)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은 법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고 믿는다. 여기서 ‘자연법’ 개념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면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는 무엇인가? 남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무엇을 해도 상관없는 무제한적 자유가 아니다. ‘법이 규정하는’ 자유다. 존 애덤스(John Adams)의 말처럼 보수주의자들은 “법이 규정한 자유만 있다”고 본다.8) “법 아래의 자유, 한계가 뚜렷한 자유, 법률로 그 한계가 결정되는 자유”다.9) 이는 성경적 교회관이 그대로 투영된 모습이기도 하다. 교회는 하나님의 법 안에서 자유를 선언한다. 그러나 법을 벗어나면 ‘권징’이 따른다. 버크가 “사회를 정신적 통일체”라고 보면서 “교회와 매우 흡사하다”고 주장한 점은 보수주의 정치관이 종교개혁의 산물임을 암시한다.10) 애석하게도 이 모습은 국가보다 교회가 먼저 회복해야 할 문제이다. 교회가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한다면 보수적인 정치관은 자동적으로 회복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미주

1) 러셀 커크,「보수의 정신」,이재학 역,(지식노마드,2018),P.126.

2) Ibid.

3) 장 자크 루소,「사회계약론」,김중현 역,(팽귄클래식코리아,2015),P.39.

4) 러셀 커크,op.cit.,p.129.

5) Ibid.,p.227.

6) 루소는 인민을 집합적 구성원으로 규정했다.(장 자크 루소,「사회계약론」,김중현 역,(팽귄클래식코리아,2015),P.48.)

7) 러셀 커크,op.cit.,p.128.

8) Ibid.,p.218.

9) Ibid.,p.86.

10)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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