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과 ‘인민’의 개념 비교

2019년 11월 30일(토), 조선일보 사회면에 ‘일부 고교 윤리 교과서에 국민 주권 대신 인민주권’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내용인즉슨, 윤리와 사상이라는 교과목의 교과서 중 일부가 민주주의의 주체로서 ‘국민’ 대신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이 문제가 되었다. 윤리와 사상이라는 과목의 교과서를 출판하는 5개 출판사 중 미래엔·비상교육·씨마스 등 3개의 출판사의 교과서에서는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고, 교학사·천재교육 등은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물론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출판사들이 아무런 생각 없이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2015년 개정한 교육과정 집필 기준은 민주주의 개념 교육과 관련해 “인민주권의 원리에 기초하여” 기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갈무리를 참고하라.

필자는 이 소식을 접하고 실제로 고등학생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실렸는지 지역의 서점을 통해서 확인하려고 했으나, 교과서를 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인터넷에 관련 키워드를 검색하니 실제로 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실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해당 사진 참고). ‘국민’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을 굳이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하는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국민’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을 생각해보고 ‘인민’이라는 단어가 어떤 개념인지 생각해보았다.

<11월 30일 조선일보 10면에 실린 기사 갈무리> <네이버카페 :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글 갈무리>

 

‘국민’이라는 단어의 한계와 ‘인민’이라는 단어의 개념

먼저 ‘국민’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한계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국민’이라는 단어는 아주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단어인데,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긍정적인 의미로는 한 나라의 국적을 가진 사람들, 혹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총칭해서 부르는 말이다.1) 단어의 의미 자체에 ‘국가’라는 개념이 들어있다. 이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 일반 국민들은 전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전문적으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단어가 가지고 있는 한계점들을 느낀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국민’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형성되는 시기(갑오개혁 이후의 개화기) 서구적 근대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왕’이나 ‘황제’에게 충성을 다해야 하는 피지배민으로써의 ‘국민’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2) 이 시기에는 ‘국민’이 가지고 있는 ‘권리’라는 것은 왕에게 복종하는 ‘신하의 권리’로써만 인정되었다. 이후에 일제의 식민지로 지배를 받는 동안 서구적 근대 개념으로 ‘국민’이라는 의미는 발전하기는 하지만, 일제 통치 후기로 접어들면서 ‘국민총동원 운동’(1940), ‘국민학교제도’(1941), ‘국민개로운동’등 국민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일제에 의한 ‘국민’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었다.3) 물론 ‘국민’이라는 단어가 꼭 ‘황국신민’의 줄임말로써만 사용된 것은 아니라 일제시대에 과도기적 혼란 상태에서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4) 일제시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학자들 사이에서 ‘국민’이라는 단어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민’이라는 단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먼저 ‘인민’이라는 단어는 ‘국민’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이해한다. ‘국민’이라는 것은 국가라는 사회적 제도에 소속된 사람을 뜻하는 반면, ‘인민’이라는 것은 어떠한 사회적 제도나 관습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연인으로서의 한 개인을 의미한다. 즉, ‘인민’은 국가에 선행하는 인간 보편 개념을 의미한다.5) 이러한 ‘인민’으로부터 ‘주권’이 나온다는 개념이 ‘인민주권’인데, 이는 군주 일인이나, 소수의 귀족, 혹은 대의제를 통한 정치참여보다는 ‘다수의 통치’를 의미하는 것이며, 직접민주주의와 개념적인 친밀성을 가지고 있다.6) 이런 개념적인 의미와 함께, 우리나라 근대발전에서 ‘인민’의 의미를 추적해보면 ‘인민’이라는 것은 곧 왕의 피지배민이 아니라, 왕이 있기 전부터 존재하며, 국가의 필수 구성원이며, 정치적 주체로 활동하고 권리와 의무를 수행한다.7) 1895년부터 1909년 사이에 있었던 교과서를 살펴보면 ‘국민’이라는 단어보다 ‘인민’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빈도가 더 높았다. 국민은 전체 단어 사용의 26.3%를 차지하고, 인민은 44%를 차지하고 있다.8) 그러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인민’이라는 단어는 점차 ‘국민’이라는 단어에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되었고,9) 점차 ‘국민’이라는 단어가 ‘인민’을 뜻하는 단어가 되었다. 교육부에서 2015년에 ‘인민주권의 원리에 기초할 것’을 권고했다는 것은 이런 학문적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인민(people)이라는 단어의 유래

먼저 서양사에서 국민의 개념형성을 살펴보면, 서구에서는 일찍부터 사용되었던 단어는 ‘시민’이다. 시민이라는 것은 고대 그리스가 폴리스(Polis)라는 도시국가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고, 그곳에 살고 있었던 사람을 일컫는 말에서 출발했다. 이것이 역사의 발전을 따라 다양한 단어로 사용되었다가,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혁명의 경전이 되었고, ‘인민주권’ 및 ‘주권재민’은 혁명의 원리가 되었다.10) 역사학자 린 헌트는 『인권의 발명』에서 ‘인간의 권리’라는 단어는 18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으며, 그 근저에는 루소의 사회계약설이 있음을 지적한다.11) 루소에 의해서 ‘인민’이라는 단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미국헌법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미국 헌법은 “우리 인민은(We the people)”이라고 시작을 하고 있으며,12) 현대 민주주의는 인민주권에 기반을 둔 국가형태로 발전했다. 영어의 'people '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번역될 때 주로 ‘인민’으로 번역된다(물론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으로 많이 번역해왔다). 이런 인민에 대한 이해와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국민’으로 번역되어 사용해왔던 것을 ‘인민’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사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학술적이며 전문적인 의미에서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혀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과연 오늘날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를 우리는 생각해보아야 한다. 다음 번 기사에서는 ‘언어’와 ‘언어의 사용’에 대한 철학적 반성 및 ‘인민’이라는 단어는 주로 공산주의 국가에서 사용되고 있음을 살펴봄으로써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대중적 의미로써의 ‘인민’의 사용은 지양해야 함을 살펴볼 예정이다. (계속)

 

미주

1) 네이버 사전.

2) 고석주, “근대 교과서 텍스트에 나타난 개념어의 의미 : ‘국민(國民)’, ‘인민(人民)’, ‘시민(市民)’을 대상으로” 「텍스트 언어학」 29 (2010) : 11.

3) 한승연, “일제시대 근대 ‘국민’개념 형성과정 연구”, 「서울대 행정학회」, 학술대학 발표 논문집, (2011): 370-371.

4) 한승연, “일제시대 근대 ‘국민’개념 형성과정 연구”, 371-6.

5) 한승연, “일제시대 근대 ‘국민’개념 형성과정 연구”, 355.

6) 김성호, “헌법제정의 정치철학 : 주권인민의 정체성과 인민주권의 정당성”, 「한국정치학회보」, 42(3) (2008) : 18.

7) 고석주, “근대 교과서 텍스트에 나타난 개념어의 의미 : ‘국민(國民)’, ‘인민(人民)’, ‘시민(市民)’을 대상으로”, 15.

8) 고석주, “근대 교과서 텍스트에 나타난 개념어의 의미 : ‘국민(國民)’, ‘인민(人民)’, ‘시민(市民)’을 대상으로”, 10.

9) 한승연, “일제시대 근대 ‘국민’개념 형성과정 연구”, 371.

10) 정태욱, “루소, 인간, 혁명의 시작”, 「법철학연구」, 17(3) (2014) : 124.

11) 정태욱, “루소, 인간, 혁명의 시작”, 126.

12) 최형익, “민주공화정의 정치이론 : 인민주권론을 중심으로”, 「민주사회와 정책연구」 25 (2014) :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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