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7장에 기록된 산상설교는(누가복음에 있는 그 평행 구절들과 함께) 충만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법에 관한 한, 미증유의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다. 산상수훈이라는 이 일련의 강화에서 예수님은 복된 삶을 살기 원하는 자들에게 필요한 원칙들을 말씀하신다. 이 설교는 놀라운 금광이다. 하지만 교회는 이를 시적(詩的)인 종류의 흥미 있는 글로만 생각하고, 이 말씀이 오늘날의 실생활과 관련된 필수적 요소라는 사실을 흔히 간과해왔다. 혹은 현대사회에서 산상수훈의 말씀대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이를 또 하나의 율법으로 격하시키기도 했다. 전대미문의 이 위대한 가르침을 우리는 이런 식으로 편리하게 생각하고 소홀히 여김으로써 영적으로 큰 손해를 보았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내 말을 믿으라. 산상수훈에는 우리가 평생 연구하고 사색하고 고찰하고 실천할 만한 풍요로움이 내재해 있다. 그 속의 진리는 우리의 감정과 의지, 영과 혼에 생명과 질서를 안겨준다. 그러나 먼저 이해해야 할 게 있다. 산상설교에 관한 해석의 글들을 읽을 때 우린 누군가가 무언가에서 혼동을 일으켰다고 결론을 내려야 한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예리한 말씀을 일종의 새로운 율법, 영혼을 짓누르는 율법으로 바꾸어놓고 말았다. 삶에 관한 제반 교훈 가운데 가장 위대한 가르침인 이 산상수훈이 사람들을 두들겨 패고 최악의 노예 상태로 전락시키는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실 최고의 문헌이 최악의 목표를 위해 악용되는 사례는 종종 있지 않은가 말이다. 하지만 이 위대한 설교에서 예수님이 어떤 조직적인 가르침, 혹은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짚어가는 어떤 체계적인 가르침을 주신 것은 아니다. 산상수훈은 일종의 교리 체계나 윤리 체계가 아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우리에게 어떤 정신 즉,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킬 어떤 정신을 전달해주는 데 있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심령 속에 그런 정신과 시각을 심어주기 위해 구체적인 사례들과 일상적인 상황들, 그리고 감동적인 말씀들을 사용하셨다. 우리는 산상설교를 오늘날에 필요한 자원으로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리처드 포스터(국제 레노바레 대표) |
- 기자명 리처드 포스터 /국제 레노바레 대표
- 입력 2008.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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