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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기사> 국민인가? 인민인가? Ⅱ일부 고교 교과서에 국민을 인민으로...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로써 언어

요즘 언어철학과 관련된 학자들은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겠지만, 언어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이다. 물론 대면의 상황에서는 비언어적 의사소통방식(말투, 억양, 표정, 몸짓 등)이 더 큰 비율로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가 될 수는 있겠지만, 비대면의 상황에서는 언어가 의사소통 전부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어떤 내용이 전달되는지가 결정된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를 담는 그릇이며, 존재를 나르는 말이다.”고까지 말을 한다1). 즉, 한 단어를 사용하여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때,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존재론적) 의미도 함께 전달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언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와 ‘그것이 그 의미대로 제대로 전달되는가?’이다.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의미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다른 해석의 결과를 낳는다면 그 의사소통은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표(시니피앙)와 기의(시니피에)

그렇다면 ‘단어’와 그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이 질문을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쉬르(Saussure, 1857-1913)의 언어학 연구가 큰 도움이 된다. 물론 소쉬르의 연구물이 이후 구조주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고, 특히 마르크스주의, 정신분석학, 해체주의, 기호학의 다양한 담론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수정 비판되어 다시 읽혀지는 결과가 있기는 하지만2), 본 논의에서는 언어의 표시(기표)와 의미(기의)에 대한 구분의 이해정도로만 소쉬르의 사상을 빌려 쓸 것이다. 소쉬르는 언어학을 연구함에 있어서 ‘기표(시니피앙)’와 ‘기의(시니피에)’를 설명한다. ‘기표’라는 것은 언어의 기호를 통하여서 표시된 것을 의미하며, ‘기의’라는 것은 그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을 가리킨다. ‘기표’와 ‘기의’는 자의적으로 연결된다3). 즉 어떠한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결합이 자의적이라고 할지라도, 결합 자체를 결정하는 것은 현실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다4). 다시 말해 ‘기표’에 대한 ‘기의’를 결정하는 것은 현실 세계에 대한 인식 가운데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쉽게 설명하면 나무라고 할 때 ‘나무’라는 글자 그 자체는 ‘기표’이며, 그 글자가 지시하는 대상 곧 형상으로써의 나무는 ‘기의’이다.

이것을 ‘국민’과 ‘인민’이라는 단어에 적용시켜서 생각해보자. 지금 이 글의 전체적인 논의는 ‘국민’인가? ‘인민’인가?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부분으로 진행되고 있다. 앞선 기사에서는 왜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는지 단어의 역사적 맥락을 살펴보았다. 즉, 학계에서는 ‘인민’이라는 단어(기표)가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완전한 자연인’이라는 의미(기의)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을 이제 학생들에게 가르치자고 한 것이 2015년 교육부의 지침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은 ‘언어는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관점에서 과연 학자들을 제외하고 일반인들이 ‘인민’이라는 단어를 받아들일 때,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다. 아쉽게도 오늘날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인민’이라는 같은 기표를 하더라도, 서로가 이해하는 뜻인 기의가 다르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그 이전에는 어떠한 용법으로 사용되었든 간에,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완전한 자연인’이라는 의미를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일반인들은 거의 이 의미에 근접하게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인민’이라는 단어는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완전한 자연인’이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공산주의의 지배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가지고 있다. 즉, 소쉬르의 도구를 빌려서 표현하자면, 학자들이 사용하는 기표(시니피앙)인 ‘인민’, 기의(시니피앙)인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완전한 자연인’과 일반인들이 이해하는 기표인 ‘인민’, 기의인‘공산주의 지배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완전하게 구별된다는 것이다. 언어를 ‘의사소통의 수단’의 관점으로 바라볼 때는 완전히 잘못된 의사소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단어를 통해 도출해 내는 개념이 다르고, 그로 인한 행동까지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국민’과 ‘인민’의 분리

철학적 반성을 통해서 ‘인민’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지만, 역사적인 맥락에서도 ‘인민의’ 단어 사용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제 식민지 해방 이후 남과 북으로 갈리면서, ‘국민’과 ‘인민’의 개념이 명확하게 갈라졌고, 우리나라의 맥락에서는 ‘인민’이 더 이상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완전한 자연인’의 의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인 김성보는 그의 연구물을 통하여서 남북국가 수립기에 ‘국민’과 ‘인민’의 단어가 어떻게 선택되었고, 또 국가 건설의 원리에 대한 접근 방식에 따라 어떤 정치적 의미를 지닌 채로 재정의 되는지를 분석했다5).

먼저 그는 1945년 8월 해방 당시의 언어 사용을 분석하면서, 한반도 주민 집단 또는 그 출신을 지칭하는 용어로 처음에는 ‘인민, 국민, 백성, 민족, 겨레, 동포, 민중, 대중’등 다양한 단어가 사용되었음을 밝힌다6). 조선건국준비위원회도 처음에는 ‘민족’이나 ‘민중’, ‘동포’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였다. 특히 해방 직후까지도 한반도에서는 ‘인민’이라는 용어는 특별히 어떤 편향의 정치색을 지닌 용어가 아니었기 때문에, 1919년에 발표한 <임시헌장>에서도 대한민국의 구성원을 ‘인민’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물론 그 이전부터 좌·우 이념의 대립이 있기는 하였지만, 민족해방이라는 하나의 목적으로 협력하였기에 단어의 사용에 있어서 어려움과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1945년 9월부터 점차 정치사회가 좌우로 분화하면서 비로소 ‘인민’이라는 단어와 ‘국민’이라는 단어가 정치적 편향을 지닌 것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중도 우파를 포함하여 범우익이 신국가 건설과 운영의 주체를 ‘국민’으로 호칭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반면, 범좌익은 ‘인민’이라는 단어를 널리 사용하기 시작했다. 해방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런 단어의 분화가 생긴다는 것은 그들이 어떤 이념에 영향을 받았는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혁명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자들은 민(民)의 권리와 주체성을 강조하는 ‘인민’의 사용을 선호한 반면, 국가를 중시하는 민족주의자들은 국가에 종속된 개념인 국민을 선호했을 개연성이 크다.

1945년 9월 14일에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는 <시정방침>을 발표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와 민족반역자들”의 토지와 광산, 공장, 철도, 항만, 선박, 통신기관, 금융기관 및 기타 일체 시설을 몰수하는 등 반제국주의적이며 친일 민족반역자를 배격하는 내용이 강조되었다. 이 과정에서 ‘모든 특권을 말살하고 전 인민의 절대평등’을 추구한다는 조항을 삽입하여 인민의 개념을 ‘평등’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시켰다. 여기에서 ‘인민’은 반제국주의, 평등 등의 가치가 반영되어 있으며 민족반역자를 배제하고 인민공화국을 건설하려는 주체로서 규정되고 있다. 즉, 인민과 인민의 적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가치관을 토대로, 근로 계급을 중심으로 한 인민 구성의 이해, 역사발전의 주체로서 인민을 이해하면서도 지도자의 영도를 강조함으로써 실제 정치에서는 수동적 동원의 대상으로만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인민’의 개념은 광복 직후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북한의 인민 상(像)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민’개념은 일반적 호칭으로 사용되던 인민은 물론이요, ‘인민주권론’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온 근대의 보편적 인민 개념에서도 크게 벗어나 버리게 된 것이다. 기표는 ‘인민’으로 동일하지만, 기의는 사회주의적 이념에 의해 재정의된 뜻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남한 권력은 국가 구성원을 ‘국민’으로 파악하는 경향성이 강화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남한에서 ‘인민’의 개념이 완전히 배척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처음에는 헌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인민주권론’의 영향으로 국가권력의 원천을 ‘인민’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했다7). 하지만 이념 간의 갈등으로 인한 문제와 상대 진영의 용어 선점에 따른 반발감으로 비롯된 차별화의 심리 때문에 ‘국민’이라는 단어가 선택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선택된 단어가 6·25전쟁을 경험하고, 경제개발 시기를 지나서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즉 ‘반공적’ 국민 개념의 형성과 ‘경제적 민족주의’를 통한 국민의 형성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8). 통치자들의 지배원리에 의해서만 일방적으로 형성된 ‘국민’의 개념이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국민’이 민주주의적 국민으로 스스로를 확립해 나가는 과정을 거쳤다. 단순히 국가의 요구에 부응하는 수동적 의미로서의 ‘국민’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국민’의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학교에서 시행되는 교육을 통해서 일제의 잔재나 전제적 통치원리에 의한 ‘국민’의 개념을 극복하고, 아주 보편타당한 ‘국민’의 개념이 확립되어 왔다(실제 필자도 이번 기사를 통해 ‘국민’이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뉘앙스를 알게 되었지 그전까지는 전혀 부정적인 뉘앙스를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기사를 작성하기 전까지는 아주 현대적이며, 모든 것의 주체로서의 ‘국민’의 의미만 생각해 왔다).

 

용어 혼란 전술인가? 현대에 맞는 개념의 확립인가?

이제는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 있는 한 개인으로서 ‘국민’의 개념이 다변화 되어가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의견이 커져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민’이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한다는 것은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민’이라는 단어는 여전히 좌익의 이념에 근거한 단어이며, 아직도 공산사회주위 국가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필자는 이 기사를 작성하기 전 필자의 친형에게 윤리와 사상 교과서에 ‘인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했을 때, 제일 먼저 나온 반응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굳이 사용해서 혼란을 줄 필요가 있나?’였고, 몇 초 후에 이어진 반응은 ‘헌법에서 국민주권을 이야기할 때, 인민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그러한 맥락에서 사용한 것일 수도 있겠다.’였다. 아마도 사람들에게 ‘인민’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뉘앙스를 물어본다면 대부분 ‘공산주의 국가에서 사용되는 단어’라는 반응이 일차적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실정에서 학생들에게 굳이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단어의 의미를 무력화시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사실 정훈장교나 지휘관에 따라서 약간씩 강조점은 달라지기는 하지만 군대에서 정신교육을 받아보고, 한번이라도 그 자료를 읽어본 사람은 북한이 남한을 침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전술을 사용하는데, 그중 하나가 ‘용어혼란전술’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용어공작’이다. 대중들이 환호하는 단어들을 선점해서 사용하는데, 아주 교묘하게 사용하여서 자신들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방식이다9). 대표적인 것으로 ‘진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자신들은 역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거나, 혹은 ‘자유’라는 이름으로 북한을 이롭게 하는 여러 활동들을 언론에 노출시키는 것이다. 이번 ‘인민’이라는 단어의 사용도 이런 종류의 공작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인민’이라는 단어에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는 자연인’이라는 의미를 다시 부여해서 그 단어가 역사적으로 가지고 있는 좌익의 이념적 색깔을 모호하게 하는 방법으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만약 ‘국민’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극복하고, 제한적인 의미를 탈피하기 위해서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했다면, 굳이 지금 또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 그 단어를 다시 선택할 필요가 없이 새로운 단어에 그 의미를 부여하도록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면 되는 일이다. 인민으로 번역되는 'people'을 ‘사람’으로 번역한다던지, ‘자연인’으로 번역한다던지 얼마든지 다른 대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민’을 고집하는 것은 현 상황에서는 아주 위험한 선택으로 보일 뿐이다. 사실 ‘국민’이라는 단어를 대체할 다른 단어를 찾는다는 것 또한 현대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좇는 것이며, ‘국가의 정체성’을 포기할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지만, 더 깊은 논의를 하는 것은 전체 흐름에 벗어나는 것임으로 이렇게 언급하는 것으로만 만족하려고 한다. 전체적인 내용을 정리한다면 ‘국민’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 뉘앙스를 극복하기 위해 ‘인민’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것은 오히려 용어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이며, 이념적으로 중립적인 단어를 선택해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더 나아 보이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교육부의 지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민’이라는 단어의 부정적 의미를 잘 파악하여 ‘국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교학사·천재교육의 선택을 지지하며, 더 나은 대안이 나오기 전까지는 굳이 ‘인민’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제안하는 바이다.

미주

1) 이경배, “존재의 언어와 대화의 언어”, 「범한철학」 (88) (2018): 132

2) 김성도, “페르디낭 드 소쉬르: 소쉬르 읽기의 몇 가지 해법”, 「진보평론」 (1994): 343.

3) 김광현, “소쉬르와 구조주의 인식론적 및 방법론적 고찰”, 「한국프랑스학논집」(39) (2002): 26.

4) 김광현, “소쉬르와 구조주의 인식론적 및 방법론적 고찰”, 27.

5) 김성보, “남북국가 수립기 인민과 국민 개념의 분화”, 「한국사연구」 144 (2009): 71.

6) 김성보, “남북국가 수립기 인민과 국민 개념의 분화”, 71-80. 필자는 이 논문의 해당 부분에서 필요부분을 발췌하여 요약정리 하였다.

7) 김성보, “남북국가 수립기 인민과 국민 개념의 분화”, 81-85. 내용 중 필자가 발췌 및 요약정리함.

8) 홍태영, “민족주의적 통치성과 국민 만들기 : 해방 이후 남한에서 반공과 경제개발 주체로서 국민의 탄생”, 「문화와 정치」 6(2) (2019): 101-138.

9) 황성규, “<오후여담> 북한의 ‘용어공작’”, 문화일보 인터넷 뉴스, 2018. 07. 10 기사.

정성호  peripateo@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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