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무 박사(Global Partnership Networking & 남아프리카 신학교 교수 사역 Georgia Central University 선교학)

최근 SFC (학생 신앙 운동)의 대표 간사가 새로 취임을 했다. 그리고 취임사에서 SFC가 70년을 넘는 역사를 지나며 하나님의 은혜로 어떤 교단도 소유하지 못한 조직이 되어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조직화의 위험성이 운동성을 잃게 되기 때문에, 늘 깨어서 부르심에 합당한 운동성을 잃지 않는 학생 신앙 운동이 되도록 하겠다는 각오의 소감을 밝혔다. 그가 한 말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운동이 멈추면 활력을 잃게 된다. 아무리 그럴싸한 조직을 가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거창하게 시작된 조직과 제도들이 어느 날 퇴락한다. 결국, 큰 조직과 제도만 있고, 아니면 건물만 있게 된다. 교회가 제도화되면 그때부터 운동이 서서히 멈추어진다. 움직임이 없는 것은 죽은 것과 같다. 결국, 부패와 타락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므로 Revival(부흥)이 요구된다.

개혁은 낡은 제도에 대한 Revival(회복, 부흥)이라는 운동이다. 개혁이 멈추면 그때부터 조직만 남게 된다. 서구 교회들이 그런 모습이 아닌가? 이제 한국 교회도 그런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개혁교회 (Reformed)는 항상 개혁돼야 (Always Reforming) 한다는 것이다.

선교도 운동이다. 제도화된 교회는 안주하게 되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게 되며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조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점점 전도와 선교의 동력을 잃게 된다. 특별히 주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좌지우지된다. 그래서 체면이나 명분에 의해서 움직일지 모른다. 운동은 비전을 향해서 나아간다. 조직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지만, 수동적으로 되기 쉽다.

선교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할 것인가? 선교를 시작하시고 진행해 나가시도록 역사하시는 분은 본질에서 삼위 하나님이시지만, 역사상에 나타난 주체는 두 구조로 나타나고 있다. 랄프 윈터는 선교의 두 개의 주체적 구조인 Modality(교회)와 Sodality (파라 처치, 선교 단체)를 말하였다. 선교 역사에서 나타난바 선교는 두 개의 구조로 진행되었다. 부활하신 주로부터 선교 대 사명이 교회의 대표들인 제자들에게 주어졌고, 교회가 주체가 되어서 선교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선교의 주체는 교회이다. 그러나 역사가 진행되면서 교회가 제도화되고 운동으로서의 선교가 멈추어질 때 갱신과 부흥으로서 신앙 회복과 함께 선교 운동이 선교 단체를 통하여 진행되었다.

고신 총회 선교부는 고신 교단 선교부를 통해서 선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고신 교단 선교부는 고신 교회를 선교지에 세우는 것이 아니다. 선교는 자발적인 운동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데에서 선교는 더 활성화될 것이다. 교단 교회들이 고신 교단에 속해 있으므로 선교는 교단 선교부를 통해서 하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를 하기 전에 교단 선교부는 조직인가? 운동인가? 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개 교회들이 중심이 되어 선교하는 경우의 장점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단 선교부 입장에서 보면, 개 교회가 중심이 된 선교는 어쩌면 선교 단체와 같이 파라처치 (Para-Church)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러나 개 교회가 중심이 된 선교를 통하여 엄청난 일들이 진행된 것을 볼 수 있다. 얼마 전에 알게 된 것이지만 개 교회의 한 분의 목사님이 중심이 되어 Union Vision Mission을 통하여 아프리카에 수백 개의 교회와 유치원, 학교가 세워졌다고 한 것을 들었다. 또한 남부 아프리카에서도 한국의 한 교회와 아프리카 한인 교회가 중심이 되어 선교하여 약 20개 이상의 교회들이 세워지고 활발하게 사역이 되었다. 물론 수적 성장이나 교회의 개수가 질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는 결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역동성이다. 어쩌면 교단 선교부의 지역 선교부가 할 수 없는 일들을 개 교회를 통하여서 해 온 것이다. 왜 그럴까? 이러한 역동성을 교단 선교부가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개 교회가 해 오던 선교를 교단 선교부가 맡아서 할 때도 그러할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올해는 고신 선교부가 설립된 지 65주년 맞아 선교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고신 선교부의 역사와 함께 본질적인 선교부의 비전과 운동성을 재고해 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현장 중심의 선교”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27개 지역부를 12개 지역부로 나누었었다 (2017년). 지역부의 권한을 강화한다는 것이었다. 과연 지역부가 역동성을 가졌는지? 선교부 전체가 역동성을 가지고 있는가? 각 지역의 현장 선교사가 신나게 사역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그와 같은 결실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면 현장 중심이라 하면서 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각 지역부 지역장의 권한이 커지다 보니, 조직의 장을 위한 하 부인으로서 수동적으로 눈치를 보면서 사역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역부나 지역장이 잘못된 권한 사용을 했을 때는 견제할 장치가 있는가? 따라서 현장 중심이라고 하여 지역부가 떨어져 나가서 독립된 형태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본부와 선교위원회와 후원 교회와 노회의 전체적인 유기적 관계에서 선교 운동으로서의 역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선교는 타 문화권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전에 국가 개념으로서의 선교가 아닌 문화의 관점에서 선교를 보아야 한다. 이제는 지역부도 대륙 단위나 국가 단위로 나눌 수 없게 되었다. 그 이유는 흩어진 사람들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선교지는 우리 옆에 앞에 와 있다. 선교를 위해 멀리 타국에 꼭 나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AI 시대의 선교에 대한 새로운 방향이 필요하다. 수십 년 전에 이미 빌리 그래함이 예언한 바와 같이 자신의 시대보다 앞으로의 시대는 미디어의 발달로 획기적인 전도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물을 세우는 것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대중 매체를 통하여 네트워크를 통하여 인터넷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빨리 개발해서 시행해야 한다. 또한, 지역을 초월하여 각 선교사의 은사를 고려한 팀 사역 배치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비거주 선교사 제도가 필요하다. 이미 선교지에 영세한 부분들이 드러나고 있다. 한 선교사가 과다하게 사역을 확장하게 될 때는 여러 가지 사역에 부실 문제가 드러나게 된다. 이런 부분들은 과감하게 사역의 집중을 통하여 정리돼야 하고, 사역에 필요한 자원들이 협력해서 채워져야 한다. 또한 개인 선교사가 각개 신학교를 우후죽순으로 세우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라도 타당성 및 실제적인 조사 평가를 통하여 정리되어야 할 것은 정리하고, 인정된 신학교에는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런 신학교에는 가르칠 사역자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전문 교수 사역자들이 비거주 선교사와 같이 일정 기간 필요한 지역에 이동하여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한 제반 실제적인 지원들을 위한 연구가 돼야 할 것이다. 집중강의를 위해 매번 이동해서 현장에 가지 않더라도 같은 언어권에서는 인터넷 매체를 통하여 온라인 강의들도 충분히 할 수가 있다.

새해를 맞아서 모든 기관 단체의 유기적인 운동원들의 신앙 운동이 절실히 요구된다. 특별히 65주년 선교대회를 앞둔 고신 선교부가 그러한 부분에서 반성과 재고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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