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 비치는 기독교는 어떤 모습일까? 아니 기독교인의 모습은 그들에게 어떻게 비쳐지고 있을까? 목회의 현장에서 몸부림치는 목회자로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나는 늘 고민한다. 최근 '나쁜 그리스도인, 현대 기독교 이미지 평가 보고서'라는 설명이 덧붙여진 책 한 권이 번역 출판됐다. 왠지 '나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아 그 책에서도 말하고 있는 바처럼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그리스도인'라고 번역해 부르고 싶은 책이다. 수많은 연구 조사를 통해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를 밝혀주고 있다.

비록 미국에서의 통계이긴 하지만-한국에서는 정도가 좀 더 심하지 않을까?- "외부인 중 37%가 현대 기독교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외부 젊은이들 중 17%는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극도로 기피하고 싶은 대상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기독교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한 것일까? "외부인들 중 4분의 1은 기독교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신앙의 변질'이라고 응답했다." 결국 '변질'이 문제다. 한결같음이 사라진 것이다. 본성이 엉뚱한 것들과 뒤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진짜인 것처럼 위장해버린다.

기독교인의 부정적 이미지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위선'이라고 말한다.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 "…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앞뒤,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변질이 무엇인가? 여기서 '말'한 것이 저기서 행하는 '행동'과 맞지 않는 것이다. 죄인이면서 전혀 아닌 척 꾸며대는 것이다. 죄인이라면 죄인이라고 말해야 변질된 것이 아니다. 죄에 절은 사람이 깨끗한 척 자기 혼자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가 예수 믿었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우월한 척할 수 없다. 오히려 도덕적으로 흠이 있기에, 그 흠결로 인해 날마다 나의 부족을 뼈아프게 고백한다. 하지만 삶을 변화시키시고 미래를 열어주시는 그분을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는 것이다. 변질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가? 더러움으로 상처 입은 자이기에 깨끗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정직하게 고백하면 변질된 것이 아니다. 정직한 고백은 우리를 변질과 위선의 수렁에서 건져준다. 다음과 같은 정직한 고백 말이다.

"미안하다. 여러분을 좌절하게 하고 실망시켜 미안하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포기하거나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만났으며, 하나님은 이 싸움이 승리로 끝날 것임을, 죽음이 아니라 생명으로 끝날 것임을 약속하셨다…. 여러분도 나를 도울 수 있다. 다음번에 내가 위선자처럼 행동하고 있는 모습을 보거든 나를 구석으로 데려가 따뜻하게 말해주면 고맙겠다."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그분 따라 가는 길 결코 포기할 수 없다. 힘내어 갈 테니 조금만 더 인내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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