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천 여성의 책임적 역할과 사명이 문제해결의 관건이다

곽혜원 박사(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한세대와 장로회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수업, 독일 튀빙엔(Tübingen) 대학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Dr. theol.) 취득, 현재 21세기 교회와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연구공동체 <21세기교회와신학포럼> 대표)

지난 200년 동안 서구세계의 영적·정신적 기류는 전통적 결혼 및 가족질서에 적대적인 방향으로 흘러왔다. 특별히 20세기의 모든 가정해체 운동은 맑시즘(Marxism)에 영적·정신적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정해체가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성규범의 해체-가정의 해체-기독교의 해체’를 정당화하는 이론인 네오 맑시즘(Neo-Marxism)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면서부터다. 좌파들의 지적인 무장을 위한 핵심 브레인인 ‘프랑크푸르트학파’(the Frankfurt school)가 지성인들을 사로잡으면서 전통적 가정의 파괴를 정당화하는 이론적·사상적 체계가 구축되었다.

마침내 1968년 프랑스에서 일어났던 ‘68혁명’은 200년간의 반(反)체제-반(反)문화-반(反)기독교 운동을 하나로 결집시킴으로써, 서구 기독교 문명의 지지기반이 되는 가정을 파괴할 거센 시대조류를 만들어냈다. 서구세계는 패륜적 성혁명(sexual revolution)을 감행했던 68혁명을 결정적 분기점으로 그 이전과 그 이후로 양분될 만큼 문명사적 대전환을 겪었는데, 그 중심축에 가정해체가 꽈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68혁명으로부터 자양분을 받고 패륜적 학문을 발전시킨 유명한 학자들과 성혁명 전략가들은 전통적 결혼 및 가족질서의 파괴를 한목소리로 강변하였다.

이러한 영적ㆍ사상적 소용돌이 속에서 인류역사상 결혼 및 가족제도에 가장 적대적인 젠더 이데올로기 (gender ideology)가 형성되었다. 맑시즘을 근간으로 세력을 확장한 급진적 페미니즘과 성정치-성혁명 이론이 결탁하여 발흥한 젠더 이데올로기의 파급력이 매우 우려스러운 것은, 이것이 가정해체를 야기하는 위험한 시대사조라는 점이다. 오랫동안 죽음연구에 천착하면서 가정공동체의 중요성을 절감했던 필자가 젠더 이데올로기를 연구하면서 특히 주목한 것은, 바로 젠더 이데올로기와 가정해체 사이의 긴밀한 상관성이다. 젠더 이데올로기가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인류 사회의 유구한 관습과 규범이 지난 50년 사이 급속도로 해체되고 있는데, 특히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가 직격탄을 맞게 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젠더 이데올로기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의 신성한 결합인 일부일처제 대신 무수히 다양한 젠더 정체성을 가진 성소수자들(LGBTQIA)의 폴리 아모리(polyamory, 복수연애)를 적극 옹호함으로써 가정해체를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특히 인권 혹은 성적 다양성이라는 명목으로 레즈비언적(lesbian)·게이적(gay)·바이섹슈얼적(bisexual)·트랜스젠더적(transgender)·인터섹슈얼적(intersexual)··· 파트너십, 그 외 온갖 괴이하고 비정상적인 관계를 일부일처제 결혼에 대한 대안적 생활공동체(=시민결합, civil union)로 미화하는 패륜적 성혁명을 강행하는데, 성혁명의 핵심적 요체는 명백히 성규범의 철폐를 통한 가정해체이다.

21세기 들어와 가열차게 전개되는 젠더 이데올로기의 핵심 전략인 젠더 주류화(=성주류화, gender mainstreaming)는 남녀 성정체성을 해체시킬 뿐만 아니라, 가정해체를 주요 목표로 삼는다. 일반적으로 젠더 주류화는 ‘성차별 철폐 운동’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상 이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다. 젠더 주류화가 겨냥하는 ‘성차별 철폐’는 종국적으로 차별의 근원이 되는 남녀 성정체성의 해체, 곧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권리를 신장시키는 방법은 한계가 있으니 아예 성별을 해체시켜 버리자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전통적 결혼 및 가족제도가 왜곡된 성역할과 이에 따른 성적 위계질서를 파생시키기 때문에 이 또한 해체시켜 버리자는 것이 젠더 주류화의 숨은 전략이다.

그렇다면 젠더 이데올로기(gender ideology)를 강행한 중추세력은 과연 누구인가? 누가 섹스(sex) 대신 젠더(gender)를 성정체성을 나타내는 주류용어로 보편화시켰는가? 이 거대한 움직임의 주체는 다름 아닌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본래 페미니즘(feminism)에서 파생되었는데, 정확히 말해 급진적 페미니즘(radical feminism)에서 발전한 시대사조다. 페미니즘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상적으로 변천해왔는데, 즉 제1세대(1789~1914)는 초기 페미니즘, 제2세대(1914~1990)는 급진적 페미니즘, 제3세대(1990~현재)부터는 젠더 이데올로기로 일컬어진다. 19세기 중엽 여권신장·남녀평등 운동으로 태동한 건전한 페미니즘이 ‘68혁명’을 결정적 분기점으로 급진적으로 선회했다가, 21세기 들어와 인류문명을 위협하는 시대사조로 급부상한 것이다.

이처럼 젠더 이데올로기와 페미니즘이 같은 뿌리에서 연원하므로, 필자는 ‘젠더 페미니즘’(gender-feminism)이라는 시대사조를 주창하였다. 우리는 급진적 페미니즘과 젠더 이데올로기의 사상적 결합인 젠더 페미니즘을 논의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양자를 함께 조망하고 분석해야 성정체성이 해체되는 이 시대의 위기를 근원적으로 파헤치고 실효성 있는 대처방안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페미니즘은 젠더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었는가? 왜 여성들은 결혼 및 가정을 해체시키는 성혁명을 강행하게 되었는가? 가장 유력한 이유는 남녀차별이 도무지 극복되지 않으니까, 차별의 근원이 되는 성별을 해체시켜 버리는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이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은 성차(性差)가 생물학적 결정이 아닌 사회적 관행의 결과임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의 생물학적 성별을 의미하는 섹스 대신 젠더를 그토록 보편화시키려 했던 것이다. 동일한 논리로 전통적 결혼 및 가족질서를 여성차별의 강고한 질서로 못 박고 가정을 해체시키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여성들이 역사의 전면에 나서서 ‘여성 주도로 위로부터의 혁명’을 일으킨 현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실 장구한 인류역사 속에서 파괴적 결과를 가져온 행동이나 이데올로기 체계를 발전시킨 것은 거의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이를테면 폭동과 전쟁을 일으키거나 대량 인명 살상 등은 모두 남성들에 의해 자행된 일이었다. 하지만 이 시대에는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어서 오늘날 인류문명을 위협하는 패륜적 성혁명은 여성들이 일으킨 혁명의 결과물인데, 이것은 인류문명사에서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남성중심적 체제에서 고통당하는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려는 목적에서 태동한 페미니즘이 젠더 이데올로기로 변질된 것은, 인류문명사적으로 대단히 애석하고 유감스러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여성차별이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고질적 악행으로 연면히 이어져 왔던 현실은 너무나 참혹한 역사이기에 이에 대해선 진정성 있는 해결 노력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인류역사상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난과 슬름, 수치와 굴욕을 겪으면서 모질고 한많은 인생을 살다 갔는지 모른다.

이런 연유에서 역사적 폐습을 끊고 여성의 존엄성을 회복시키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문제해결 방식이 성해체의 성혁명을 통해 인륜(人倫)에 치명적 해악을 끼치고 고귀한 인간 존재를 파괴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이는 또 다른 병폐가 되어 인류문명을 파탄시키는 대재앙을 초래할 수 있음을 깊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크리스천 여성들의 책임적 역할과 사명이 문제해결의 중요한 관건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이 주축이 되어 이 세대를 전복시키려는 위기의 역사적 국면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거시적으로 내다보는 혜안(慧眼)과 인류의 안녕(安寧)을 최우선적 가치로 생각하는 사려깊은 책임감, 건강한 가정공동체를 구축하려는 깨어있는 여성들의 헌신적 사역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청된다.

특별히 인류의 안녕을 위해 온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가정을 파괴시키려고 했던 이들의 무책임하고 불의한 행보로 인해 오늘날 이 시대가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물질적 풍요를 누리면서도 나날이 영적·정신적 혼란에 빠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의 구심점을 잃고 불안해하고, 우울증을 위시한 각종 정신질환으로 인해 삶의 환경이 황폐화되고 있다. 이 시대가 안녕하지 못한 주된 원인으로 우리는 가정이 파탄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가정을 지키는 것은 인간 자신을 지키는 일일 뿐 아니라,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문명 자체를 지키는 막중한 일이다.

이 사실을 너무나 뼈아프게 겪었던 급진적 페미니즘의 본산지 미국에서는 ‘가정으로 돌아가자.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이 조용히 일고 있다. 그것도 한때 급진적 페미니즘을 추종했던 여성들이 ‘가정으로의 복귀(復歸)’를 말하면서, 이것을 페미니즘의 후퇴나 역주행이 아닌 페미니즘의 연장이자 새 조류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에밀리 맷차(E. Matchar)는 ‘새로운 가정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것이 미국의 문화적·정치적 근본 배경을 움직일 수 있는 대변혁이 될 거라고 예견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극에 달한 영적·정신적 불안과 우울, 사회적·정치적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점점 더 많은 이들이 가정의 부름에 이끌리게 될 거라고 예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젠더 페미니즘이 감행하는 패륜적 성혁명의 거센 파고 앞에서 가정이 해체되고 지구촌 사람들의 심령이 황폐화되는 위기에 직면하여, 한국교회는 가장 중요한 정서적 안전망인 건강한 가정공동체를 재건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젠더 페미니즘의 핵심 전략인 젠더 주류화(=성주류화, gender mainstreaming)에 대항하여 가정 주류화(family mainstreaming)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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