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과 여성의 공존(共存)·상생(相生)이 절실히 요청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상황에 부합하는 새로운 여성운동의 실천 필요 

남녀가 서로를 적이 아닌 연대·협력하는 파트너로서 인정

성평등 아닌 양성평등을 중심부에 둔 여성운동 절실

 

곽혜원 박사(이화여대 사회학과 졸업, 한세대와 장로회 신학대학원에서 신학 수업, 독일 튀빙엔(Tübingen) 대학에서 조직신학 박사학위(Dr. theol.) 취득, 현재 21세기 교회와 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연구공동체 <21세기교회와신학포럼> 대표)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의 최대 화두 중 하나는 페미니즘(feminism)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는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는데, 이 열풍은 대학가를 넘어 우리 사회 전반의 트렌드가 됨으로써 소위 ‘페미니즘 전성시대’가 도래한 듯하다. 사실 장구한 남성중심적 역사를 감내하면서 숨죽이고 살아왔던 이 땅의 어머니들은 페미니즘 전성시대 속에서 격세지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 현상이 극심한 남녀(男女) 분리주의를 통해 사회갈등 및 국민분열을 일으킴으로써 사회적 병리현상으로까지 치닫는 현실이다. 양성(兩性) 간에 조롱과 혐오가 점점 극단화(여혐·남혐·극혐)되다 보니, 이성(異性)에 대한 견제와 경계가 나날이 심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 남녀가 서로를 생존에 해로운 존재로 인식함으로써, 남과 여로 양극화되는 ‘성(性) 양극화’, ‘젠더(gender) 전쟁’이라 불릴 만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실제로 2018년 12월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20~50대 성인남녀를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7%가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변하였다. 68.2%는 여성 혐오와 남성 혐오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문제라고 인식하였다. 같은 시기 리얼미터 여론조사기관이 발표한 ‘공동체 갈등 관련 조사’에서도 특히 20대가 바라본 가장 심각한 갈등 1위는 성 갈등(57%)이었다. 구세대 남성과 달리 양성평등 관계 속에서 성장한 20대·30대 남성들은 각각 76%, 66%가 페미니즘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응답하면서 역차별을 토로하기도 했다. 최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갈등 요인이었던 이념 갈등과 세대 갈등, 노사 갈등을 마침내 남녀 갈등이 앞지르게 된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논란이 일어나게 된 발단은, 2015년 여성 혐오에 대항한다는 명분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커뮤니티 ‘메갈리아’(Megalia)와 여기서 파생된 극단적 남성 혐오카페 ‘워마드’(Womad)가 등장하면서부터이다. 메갈리안들의 행동강령인 페미나치(페미니즘+나치즘) 선언문은 명백히 파시스트적 성향을 띨 뿐만 아니라, 워마드는 자신의 정체성을 극단적 남성 혐오로 공표하고 있다: “워마드는 여성운동 단체가 아니다. 워마드는 남성 혐오, 여성 우월 사이트다. 워마드는 99% 남혐과 1% 염산으로 이뤄져 있다.” 이들 사이트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저급한 글들과 함께 음란물, 심지어 아동 음란물도 공유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암운을 던지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메갈리안들이 남성 혐오를 정당화하기 위해 페미니즘을 표방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명백한 페미니즘 도용인데, 이를 통해 메갈리안들이 페미니즘의 보편적 이론마저 변질시켜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19세기 중엽 남성중심적 체제에서 고통당하는 여성들의 인권신장 운동에서 출발한 초기 건전한 페미니즘은 1960년대 말엽 급진적 페미니즘으로 치달으면서 본궤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급기야 급진적 페미니즘은 자가당착에 빠짐으로써,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안을 모색해야만 하는 곤궁한 상황이다. 그런데 오늘날 대한민국의 페미니스트들이 지난 세기의 쇠락한 시대사조를 21세기 대한민국에 확산시키고 있으니 실로 어처구니없는 상황인 것이다.

필자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전개되는 페미니즘의 양상과 그 폐해를 이렇게 정리해본다: 1. 남녀의 상생과 연대가 아닌 극단적 대립과 반목을 추구한다. 2. 여성의 생물학적 기능(임신·출산)을 극도로 혐오하므로 ‘성중립성’으로 미화된 성별 해체를 지향한다. 3. 성소수자 세력(LGBTQIA)에 동조하는 자충수를 둠으로써 여성의 실질적 권익을 대변하지 못한다. 4. 이성애적 결혼을 비판하고 동성애적 파트너십을 옹호함으로써 전통적 결혼 및 가족제도에 부정적이다. 5. 일부일처제(monogamy)에 적대적이고 폴리 아모리(polyamory, 복수연애)에 우호적인 자유연애주의가 확산 일로에 있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의미에서 여성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인류문명에 기여하는 건전한 여성운동이 정착하지 않고, 전통적 성윤리와 가족질서를 해체시키는 서구세계의 퇴락한 이데올로기가 횡행하는 현실이 참으로 유감스럽다. 특별히 1970년대 성행했던 미국의 한물간 급진적 페미니즘과 젠더 이데올로기의 사상적 혼합물인 젠더 페미니즘(gender-feminism)이 21세기 대한민국을 강타한 현실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서구세계에서는 지난 세기에 급진적 페미니즘에 이어 젠더주의가 밀어닥치듯이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거의 동시에 유입된 양대 시대사조가 뒤늦게 이 시대 여성들을 격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남녀 간에 대결과 혐오를 부추김으로 ‘성별 해체-성윤리 해체-가정 해체’로 나아가는 젠더 페미니즘에서 벗어나서, 남녀가 서로 공존·상생하는 길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여성을 억압하는 남성중심주의, 남성을 억압하는 여성중심주의를 내려놓고, 남성과 여성 모두의 존엄성이 회복된 공동체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21세기 대한민국의 시대상황에 부합하는 새로운 여성운동의 실천, 곧 남녀가 서로를 적이 아닌 연대·협력하는 파트너로서 인정하고, 건전한 성윤리와 가정공동체를 구축하며, 양성평등을 중심부에 둔 여성운동이 절실히 요청된다.

특별히 양성평등 실현에 있어서 우리는 한국교회 안에서 여성의 존엄성이 훼손당하는 현실을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오늘날 일반 사회의 진일보한 변화와 달리, 한국교회에서 여성은 예나 지금이나 양성평등의 사각지대에서 피눈물을 흘린다고 젠더 페미니즘 세력이 맹비난하면서 교회 여성들을 충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신도들은 남신도보다 수적으로 월등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성직(聖職)과 공직(公職)에서 배제된 가운데 주로 교회의 허드렛일을 떠맡고 있다. 극소수 교단에서만이 여성의 장로임직과 목사안수가 허용되지만, 그 안에서도 남성중심의 차별구조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 지적으로 우수한 여신도들이 남녀차별의 장벽 때문에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당할 수 없어 절망하거나, 심지어 교회를 떠나는 불상사도 일어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일은 남신도가 여신도를 하대하는 것도 유감스럽지만, 여신도 스스로 자신을 비하하는 현실이다. 또한 남성 목회자에 의한 성범죄가 여전히 은폐·축소되는 가운데 성폭력에 대한 징계 규정조차 마련되지 않은 현실인데, 이것이 얼마나 한국교회를 멍들게 하고, 선교사역을 후퇴시키며, 얼마나 많은 영혼을 실족시키는지 모른다. 이 문제에 대해 한국교회가 특단의 대책을 강구함으로써 점점 더 거세게 교회 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젠더 페미니즘에 응답해야만 한다. 최근에 기독교 우파 진영에서 여성연합이 결성되었는데, 이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과 대안제시를 하지 못하면 상심한 교회 여성들 중에 변종 페미니스트들이 양산되는 현 사태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존귀하게 여기는 ‘하나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로 교회체제와 의식구조를 개혁하는 일이 불가피하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세계,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이 실현되는 세계인 ‘하나님 나라’ 안에서 남성과 여성은 성별에 따라 명백히 구별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영 안에서 ‘하나’이다: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 이런 연유에서 남성과 여성은 서로를 차별하거나 멸시할 수 없고, 억압하거나 착취할 수 없다. 이를 침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창 1:27)을 남성과 여성에게 부여하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 신학계와 목회현장에 여성의 존엄성이 뿌리내려야 한국교회가 젠더 페미니즘을 비판하고 이 시대를 향해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이 마지막 때에 “내 영을 내 남종과 내 여종에게 부어 주겠으니 그들도 예언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듯이(행 2;18; cf. 욜 2:29), 교회 여성들이 자존감과 주체의식을 갖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힘차게 감당할 때, 한국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한국교회가 여성들을 존귀하게 여긴다면, 이들은 교회에 고마운 마음을 갖고 생명 바쳐 하나님 사역에 헌신할 것이다. 그러면 기독교를 배제함으로 일명 ‘악(惡)의 연합’을 이룬 안티기독교 세력이 교회와 성도를 총공격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흥왕하고 교회가 든든히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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