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윤원환 (목사. 미국 피닉스 장로교회. Providence University 학장)

지난 2월 23일에 있었던 아리조나 교회 연합회 주관 유관순 열사 영화 관람은 필자에게 다시 한번 국가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숙고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작금의 조국 대한민국의 정치풍향에 대한 조국 국민과 해외 교포들의 이념적 분열과 갈등이 필자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한 요인이 되었다.

그리스도인의 양면적 정체성

성경의 가치관을 따라 살며 우주만물을 지으신 창조자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국가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의 신분의 양면성을 말하고 있다. 하나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안에 존재하는 신분인 동시에[국가로 대변]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속한 신분[교회로 대변]이라는 것이다.

세상 (특정하여), 국가의 한계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안에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세상 [국가]은 일시적인 존재요 신자가 그곳에 영원히 마음과 몸을 의탁할 곳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세상 안에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속하여 있는 바 이런 세상은 언젠가는 종말을 맞이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에 의하여 모두 소멸되며 하나님에 의하여 전혀 새로운 세계 즉 영생의 세계가 세워짐을 믿는다.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그러면 인류 최후의 날이 오기까지 신자에게 있어서 세상, 특히 국가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신자에게 있어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체제이며 공권력이다. 국가가 헌법을 따라 국민들에게 복리증진의 목적을 다하는 한 신자는 누구보다도 솔선수범하여 법을 지키고 국가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충성하고 섬길 것이다. 특히 나라가 위태로울 때는 국민으로서 목숨을 걸고 지킬 수도 있어야 하며 외세의 불법적 강점과 억압속에 있다면 본래의 상태로 되돌리려는 활동 즉 비폭력적이고 평화로운 저항운동을 일으켜야 함이 마땅하다. 이것이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동참했던 삼일 만세운동의 의미이며 신사참배 반대운동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국가는 지고의 선이 아니다. 신자에게 국가가 중요하고 국가를 사랑해야 하나 국가가 신자의 전부는 아니다. 왜냐하면 신자의 궁극적인 소속은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속하여 있기 때문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국가를 포함한 보이는 모든 세계는 언젠가는 모두 소멸되고 오직 하나님의 나라만 영존한다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세계관이다.

만약 국가와 하나님의 나라 즉 교회가 충돌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신자가 몸담고 있는 국가가 늘 하나님의 가치관과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길 원하는 것이 신자의 염원이지만 국가 자체는 늘 악의 본성을 보유하고 있음을 인류역사를 통해 우리는 목격할 수 있다. 그래서 국가와 하나님의 나라가 충돌하는 경우는 국가가 신자의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할 때 나타나게 되며 국가가 신자의 양심에 반하는 특정 시책을 강요할 때 나타나게 됨을 본다.

이런 경우 신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대로, 종교는 정치와 분리되는 것인가? 즉 종교인은 세상 정치에 전혀 무관심하고 침묵을 지키며 세상의 일과는 동떨어진 종교 내적 활동에만 전념하면 되는 것인가? 아니다. 만약 신자가 속한 국가가 불의한 일을 행하고 그래서 선량한 국민들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고통의 소굴로 몰아간다면 그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지도자 포함) 분연히 일어나 국가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며 저항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이렇게 해야 할 이유는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통치하시고 그래서 그의 모든 통치권속에 있는 세상의 모든 영역들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공의로우심을 구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애쓰는 것이 신자의 사명임을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의 정당한 저항권은 최대한 평화적이고 비폭력적이며 선언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 수훈의 정신이며 십자가의 정신이다. 그리고 이것을 역사적으로 가장 대표적이며 성공적으로 구현한 사건들이 인도의 간디 중심의 비폭력 저항운동이었고 한국의 삼일 만세운동이었으며 미합중국 말틴 루터 킹 박사의 비폭력 시민 불복족 운동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의한 공권력 교체를 위하여 결코 무력을 사용해서는 안되는가?

만약 국가의 심각하고 불의한 공권력 행사에 대한 신자의 비폭력적 그리고 평화적 저항운동이 실효성이 없고 더구나 지속적인 국가의 불의한 공권력 행사로 인하여 무수한 사람들의 무고한 피를 흘리며 국가자체가 몰락할 위기에 봉착할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 공권력은 하나님께서 부여한 권세라고 해서 그 누구도 손댈 수 없는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이 아니라 조건적인 가변성의 것이다. 부연하면 국가의 공권력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반영할 때 그 존재의 정당성이 있다. 다시말하면 국가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극심하게 저해할 경우 신자는 그 불의한 공권력을 무력을 사용하여 교체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16세기 종교개혁가 존 캘빈선생의 정치신학이다.

물론 불의한 공권력의 교체는 신자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위 공권력을 동원해서 최고 불의한 지도자를 교체할 수 있는 바 이 점에 있어서 존 캘빈은 매우 신중하고도 예외적인 경우에 시행할 것을 주문하였다. 이와같은 그의 정치사상은 존 낙스 선생에게 영감을 주어 스코틀랜드 시민 혁명을 성공하게 했고 미합중국 독립혁명의 도화선이 되어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자유 민주주의 나라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음을 우리는 본다.

요약하면 신자에게 있어서 국가는 지고의 선이 아닌 차선으로서 최대한 국가의 안녕과 복리증진에 협력하되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때는 단호함과 용기를 가지고 교정해야 하는 사명이 있음을 밝힌다. 끝으로 필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특정 이념과 지역성과 감정으로 첨예하게 분열된 조국과 해외 동포들이 최대한 치우친 감정 분출을 자제하고 통합의 정신으로 선열들이 목숨바쳐 지켜 온 조국과 더불어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국가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충성하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일에 모범을 보일 수 있기를 부탁함으로 이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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