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수 목사(구영교회, 저서 「기도가 어려운 당신에게」)

코로나 사태로 인해 공예배를 못 모이는 교회가 많다. 그로 인해 영상예배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영상으로 예배드려도 성령님이 그 시간에 임재해서 말씀을 깨닫게도 하시고, 찬양에 은혜받게도 하시며, 기도할 때 새로운 결단을 주실 수도 있다. 성령님은 어떤 방식으로든 어느 장소에든 임재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어떤 형식의 예배에서든 영광 받으실 것이다. 

하지만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임재하신다”는 성경의 원리를 유추해볼 때에 정상적이고 정확한 의미에서의 예배는 인격 대 인격으로 한자리에 모일 때에 올바로 드려지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국가적으로 비상한 상황이기에 예외적인 현실에서의 임시적 영상예배가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왕이면 영상예배보다는 가정예배로 공예배가 대체되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해 보인다.

가정예배는 두 세 사람이 함께 모이는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예배이기에 좀 더 예배의 본질에 부합된다. 아버지가 가정이라는 작은 교회의 영적 제사장적 책임을 가지고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그 예배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일 것이다. 사실 가정예배는 19세기까지만 해도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필수적인 의식이었다. 아침에 개인적으로 기도하고, 저녁이면 온 가족이 모여서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은 20세기 이전 서구 기독교인들이라면 누구나 당연히 하는 신앙생활의 기본의례였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오면서 텔레비전이 저녁 시간에 침투해 들어오면서, 그리고 산업화로 인해 업무가 바빠지면서, 최근에는 인터넷과 휴대폰 문화와 야간문화가 번성하면서, 점차 종적을 감추고 있다.

성경적으로 볼 때도, 가정예배는 신앙 계승과 영성함양을 위한 하나님의 오리지널 디자인이다. 하나님은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만드셨고, 가정에서 가족 단위로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상하셨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구원하시는 목적을 ‘그의 가족들과 친지들에게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고 지키게 하려 함’이라고 천명하셨다(창18;19). 장기적으로는 이방선교가 하나님의 원대한 구원 계획이지만, 그 비전을 이루는 기초단계는 한 가정의 구원이었고, 그 가정 구원이 정착되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부모가 집에서 직접 자기 자녀를 말씀으로 가르칠 것을 명령하고 있다. 이것이 유대인들이 아침, 저녁으로 암송하고, 죽을 때도 유언처럼 암송하는 쉐마본문이다(신6;4-9). 이 쉐마명령은 대대손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순종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뜻이다.

쉐마본문을 볼 때, 그리고 신구약 성경의 다른 근거들을 살펴볼 때, 하나님의 원래 생각은 교회에서 목사가 성경을 교인들에게 가르치는 것 이전에, 가정마다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가정이 인성계발의 장이요, 가정이 신앙형성의 장이기 때문이다. 이미 8살 이전에 인격과 지성의 80% 정도가 형성된다. 신앙도 결국 인성과 지성의 그릇에 담아지는 것이기에 가정이 신앙형성에서도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어릴 때 신앙교육을 가정에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받아야, 어른이 되어서도 신앙을 안 떠날 수 있는 법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우리 속담도 어린 시절의 습관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이론을 뒷받침한다.

가정과 괴리된 채로 교회에서만 신앙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고등학교 졸업하면, 조금 더 나아가서 대학 졸업하면 90%가 교회를 떠난다는 것이 현대의 솔직한 통계이다. 교회들마다 다음세대가 신앙을 떠난다는 아우성이 들리는데, 그 가장 근본 원인은 가정에서 부모가 신앙교육을 책임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해온 결과인 것이다. 그러나 가정예배를 착실하게 드리면서 부모가 직접 신앙훈육을 책임지는 가정의 아이들은 거의 청년시절뿐만 아니라 어른이 되기까지 신앙에서 떠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한 사람의 신앙이 자라서 그다음 자식들 대에까지 이어지기 위해서는, 교회 이전에 먼저 가정에서의 신앙훈련이 기초석인 것이다.

수천 년 동안 가정을 중심으로 신앙 계승이 확실하게 이루어지는 정통파 유대인들의 경우를 보더라도 가정예배가 신앙의 계승, 교회 부흥의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임을 잘 알 수 있다. 정통파 유대인들은 3대가 함께 회당에 가고, 3대가 함께 안식일에 모여서 온가족예배를 드리면서, 신앙이 흔들림 없이 대를 이어오고 있다. 오늘날 가정예배가 거의 고대 유물처럼 사라져가고, 아버지가 가정의 제사장 역할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부모가 자녀의 신앙을 책임지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임을 망각하기에, 교회마다 교육에 집중투자를 해도 다음 세대가 떠나고, 전도는 쇠퇴하며, 교회의 미래가 점점 어두운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타의에 의해서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을 안 가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부모들도 역시 재택근무 등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런 데다가 많은 교회들이 주일예배뿐 아니라 평일 모임도 쉬거나 줄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시기가 어쩌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일 수도 있다. 어쩌면 그동안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서 필수적인 척추와도 같았던 ‘신앙의 가정중심성’을 회복하라고 주시는 하나님의 결정적인 싸인일 수도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가정이 신앙의 중심센터라는 성경적 진리를 도외시한 채 오로지 교회당건물 중심의 기독교로 운영되어오지 않았나 하는 성찰을 해야 할 시점이다.

지금까지 주로 목회자들은 교회당에 모이라고 하면서, 교회당에서 운영되는 예배와 기도회와 각종 교육 프로그램과 봉사활동들을 열심히 이수하면 신앙은 잘 자란다는 사실만을 가르쳐왔는데, 그 가르침이 틀린 건 아니지만, 그 모든 것들의 기본토대인 가정 중심성은 소홀히 교육되어져온 것이 사실이었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 건물은 조만간 지진과 태풍에 흔들리듯이, 가정에서 신앙훈련이 확실하게 되어져있지 않는 신앙은 오래 못가서 바람 앞에 낙엽처럼 흩날리고 마는 법이다. 초대교회를 봐도 주 후 4세기까지는 교회당 건물이란 게 없었고 집에서 모이는 가정 연합예배 성격이 오늘날의 주일 공예배의 원형이었던 점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주일예배 시간에 공예배로 못 모이는 경우, 집에서 아버지가 인도하거나, 아버지가 못할 상황이면 어머니가 인도해서라도 가정예배를 주일 공예배로 드리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 목회자들은 가정예배를 드리지 못할 가정들을 위해서, 혹은 노령층이나 환자들을 대비해서 영상예배를 송출하는 서비스는 해야겠지만, 가장 기본적으로는 가정예배를 우선적으로 드리도록 가르치고 강조하며 가정예배 모델을 제안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평일에도 요즘처럼 가족들이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다면, 그 시간을 활용하여 함께 성경을 읽거나, 큐티 나눔을 하거나, 코로나 사태의 종식을 위해서 가정기도회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끝날 때까지 가족이 함께 성경1독하기 이벤트를 할 수도 있고, 매일 큐티나눔을 가족 단톡방을 활용하여 올릴 수도 있으며, 아이들과 함께 성경, 신앙서적 낭독회를 해볼 수도 있다. 온 가족이 릴레이 성경쓰기를 할 수도 있으며, 함께 동네나 동네 뒷산을 걸으면서 ‘걷기 중보기도’를 할 수도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가 가정이 신앙의 중심센터임을 기억하고, 교회 이전에 가정에서부터 예배가 이루어져야 함을 재인식하는 기회로 선용되기를 소망해본다. 그래서 파편처럼 흩어져가는 사회 유지의 기초인 가족 간의 유대감과 교회 유지의 기초인 가족 간의 영적 통일감이 회복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더 나아가서 이번 코로나 사태가 그간 한국교회가 유지해오던 교회당건물 중심 목회 패러다임을 가정예배와 부모신앙훈련 중심 목회 패러다임으로 대전환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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