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우목사의 지중해에서 본 한국과 유럽 이야기[9]

   
지구 온난화를 다룬,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에서 한 남자가 남극의 추위에서  얼어죽지 않기 위해 모든 책들을 벽난로에 던져 불에 태운다. 그런데 한 권의 책만은 결코 태우지 못하고 껴안고 내놓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여자가 빈정대듯이 “왜 그 책은 못 태운다는 거죠?”라고 하자, 남자는 “이 책은 금속활자로 찍은 최초의 구텐베르크 성경”이라고 대답한다. 1999년 말, 세계언론들은 새로운 천년을 앞두고 지난 1천년 동안 인류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발명품으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를 선정했다. 구텐베르크는 “지난 1천 년간 10대 인물”중 2위로 선정되었다. 구텐베르크와 인쇄술이 이처럼 큰 의미를 갖게 된 것은 그가 만든 인쇄기로 가장 먼저 성경을 출판했고, 출판된 성경은 잠자고 있던 중세기 유럽을 깨웠기 때문이다.


신의 목소리를 전달한 사람, 구텐베르크


유유히 흐르는 라인강의 뱃길을 따라 내려 가다보면 유람선의 종착지, 마인츠에 도달하게 된다. 이곳에 세계가 자랑하는 구텐베르크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에는 인쇄술의 창시자, 요한네스 구텐베르크(Johann Gutenberg, 1397-1468)가 제작한 인쇄기와 활판으로 인쇄된 각종 서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그 가운데가장 돋보이는 것은 세계 최초로 인쇄된 라틴어 성경이다. 1455년, 구텐베르크 성서는 총 1282쪽으로, 각 페이지는 2단, 42줄로 만들어졌기에 일명 “42행 성서”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구텐베르크 성서는 모두 48부 정도가 이 지구상에 남아있으며, 그 가운데 12부는 양피지에, 36부는 종이에 인쇄된 것이다.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한 사람이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필사를(筆寫)하려면 무려 3년이 더 넘는 세월이 걸려야 했다. 수도사나 수녀들이 이렇게 공들여 필사한 성경은 로마교회 일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고, 일반신도는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성경을 펴서 읽는 행위는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라 여겨질 정도로 금서 품이었고, 닫혀진 책이었다. 성경뿐 아니라 다른 책들도 아무나 볼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다. 책이 활판으로 인쇄되기 전 영국에서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하고 있던 캔터베리 대성당 도서실에 소장 된 책이 2,000권 정도였고, 케임브리지 대학 도서관에는 겨우 300권의 책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런 가운데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인쇄기는 3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180부나 되는 성경을 찍어냈다. 당시 사정을 감안할 때 실로 엄청난 분량이 아닐 수 없다.


구텐베르크 성서가 출판된 이후 두드러진 현상은 각 나라말로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1525년, 윌리엄 틴데일이 로마교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신약성경을 영어로 번역하였고, 1534년에는 루터가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1611년은 킹 제임스 성경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이전까지 수십 개로 난립해 있던 유럽 영주국가들이 서로다른 방언을 사용했지만 성경이 번역, 출판됨으로 통일된 표준언어가 생겨나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표준언어가 보존될 수 있었다. 구텐베르크가 죽은 지 30년이 지난, 약 1500년대에 전 유럽, 250여 개 도시에 1000여 개의 인쇄소가 생겨났고, 1000만 부 이상 되는 인쇄물이 출판되었다. 성경은 더 이상 비밀의 책이 되지 못했다.



그림이 지배하던 시대에서 책이 지배하는 시대로


“역사의 가장 위대한 사건, 개혁의 어머니, 인간의 표현 수단을 철저히 바꾼 혁신”이란 구절은 프랑스 낭만주의 최고 작가, 빅토르 위고가 인쇄술의 발명에 대하여 평가한 것이다. 1517년 10월 30일 루터는 로마교회의 잘못된 교리에 대한 “95개조 논제”를 비텐베르크의 교회당 정문에 게시했다. 놀라운 것은 “95개조 논제”는 구텐베르크가 만든 인쇄기로 말미암아 불과 2주만에 전 독일로 퍼져 나갔고, 두 달만에 전 유럽에 배포되었다. 이런 위력을 눈으로 목격한 루터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을 가리켜 “복음 전파를 위해 하나님이 내리신 최대의 선물이다”라고 극찬했다. 인쇄술은 잠자고 있던 백성들의 눈을 뜨게 했고, 착취당한 농민들을 향해 횃불을 들게 했다. 그 횃불이 바로 종교개혁과 문예부흥, 나아가 시민전쟁으로 연결되어 나타났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고, 유럽사회를 확 뒤집는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했다.


종교개혁이 인쇄술의 발달과 맞물려 일어났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쇄술의 보급으로 유럽사회는 그림문명 시대에서 활자문명 시대로 바꾸어졌다. 로마교회는 오랜 세월 동안 책이 아닌 그림을 통해 모든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중세교회는 영원하며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이고 감각적인 그림으로 모두 바꾸었다.


중세시대 예술활동이나 그림은 로마교회의 교리를 전달하는 보조수단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체를 지배했다. 소위 “교회의 승리”로 불리는 로마네스크의 육중한 건축양식 또한 세상의 악으로부터 보호하는 전투적 교회의 모습을 담고 있지만 여전히 교리전달의 보조수단으로만 사용되었다. 미술가의 재능 또한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므로 당연히 신에게 바쳐져야 한다고 믿었다. 로마교회가 그림으로 교리를 수호하고 가르쳤다면 종교개혁자들은 책을 통해 진리를 선포하고 가르쳤다. 책은 종교개혁자들이 가진 최대의 무기였고 방패였다. 그림이구텐베르크 이전 중세 시대를 압도했다면 책은 구텐베르크 이후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붓은 칼보다 강하다”


미국의 미디어학자 맥루한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로 구축된 도서문화의 세계를 “구텐베르크 은하계”라고 표현했다. 구텐베르크는 자신도 몰랐겠지만 그가 만든 인쇄기로 말미암아 유럽과 온 세상은 “정보와 지식의 홍수 시대”를 맞이하게 됐다. 인쇄술로 오래 동안 어두움에 갇혀 있었던 그리스, 로마의 고전들도 빛을 보게 되었고,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보고서까지 가만히 앉아서 보게 되었다. 인쇄소가 있는 곳에 대학이 세워졌고, 상업이 발달되었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가, 경제적으로 산업화와 시장 경제가 발전되었다. 이전 사회와 달리 지식이 있는 곳에 사람과 돈이 모였고, 지식이 사회와 조직을 이끄는 통치의 수단이 되었다.


중국의 진(晋)나라 명필 왕희지는 “종이는 진(陣)이요, 붓은 칼과 방패며, 먹은 병사의 갑옷이요, 벼루는 성지(城池)이다”라고 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래서인지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오늘까지 회자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또한 “셰익스피어의 책 한 권과 인도와 바꾸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진실로 책은 사상을 낳고 그 사상은 정치와 문화를 움직이기도 한다. 한 권의 책은 때로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고 지배하기에 충분했다. “리베그다”와 “우파니샬” 그리고 “불경”은 오늘의 인도를 만들었고, “코란”은 오늘의 중동과 아프리카를, 모택동의 “붉은 책”은 과거 10억이나 되는 중국을 유물론자로 만들었다. 책은 이처럼 개인은 물론 국가와 민족의 역사를 강하게 흐르게도, 전혀 다르게도 바꾸어 왔다.


그 중 성경은 어떤 책과 달리 인류의 역사와 문명의 중심에 우뚝 서서 큰 영향을 끼쳐 왔다. 성경은 일찍이 알렉산더나 로마가 정복한 세계보다 더 많은 세계를 정복했고, 나폴레옹이나 히틀러가 감히 지배하지 못했던 인간의 마음을 완벽하고 질서 있게 지배해 오고 있다. 성경은 적게, 오늘의 유럽과 청교도 정신을 낳게 했고, 그 정신은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다. 미국은 지금 청교도 정신이 많이 약화되긴 했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취임할 때는 반드시 성경에 손을 얹고 엄숙히 서약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그 정신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존 밀톤으로 하여금 실낙원이란 걸작을 만들게 했고, 단테의 신곡과 셰익스피어의 걸작품을, 그리고 톨스토이는 부활과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만들게 했다.

  

책이 비싸다고...?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가 발명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책을 얻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책들을 베껴 쓰는 것뿐이었다. 중세시대에 한 권의 성경을 제작하려면 자그마치 200마리의 양을 잡아야 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책 한 권의 값이 얼마인지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책 도둑도 적지 않았다. 오늘날 도서관이 갖춘 도난방지 시스템이 무색할 정도로 감시가 심했다. 책보다 더 크고 무거운 쇠사슬을 달았는가 하면, “이 책을 훔치는 자는 교수형을 당하게 된다”와 같은 섬뜩한 경고문을 책머리에 싣기도 했다.


지금부터 30년 전 만해도 책 한 권의 값은 대략 500원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은 웬만한 책의 가격은 보통 1만원이 넘으며, 2만원에 달하는 책들도 수두룩하다. 하지만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 필사로 만들어졌던 책들에 비하면 요즘 책들은 아주 저렴한 편이다.


지금 우리는 영상이 활자를 압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책이 마음을 부유케 하고, 사고의 폭을 넓혀주는 줄 알면서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안타까운 것은 최근 한국은 연간 수십만 종의 책을 출판하여 세계 10위 권 안에 드는 출판대국이 되었다. 그에 비해 연평균 1인 국민 독서비율은 겨우 1.6권에 불과해 일본의 12.7권, 미국의 10.8권보다 턱없이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프랑스의 문학 비평가 “에밀 포아게”는 “한 위대한 인생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위대한 책과 만나야 한다”고 했던 그의 말은 참으로 옳은 말이다.


- 2008년 9월 코람데오 원고

- 필자 / 김학우[kmadrid@hanmail.net]

- 마드리드 사랑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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