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평세 (트루스포럼 연구위원) 영국 킹스컬리지런던(KCL)에서 종교학과 전쟁학을 공부하고 고려대학교에서 북한학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현재 트루스포럼 연구위원으로 미국에 거주하며 보수주의 블로그 <사미즈닷코리아> (samizdatkorea.org)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건국의 기초문서인 독립선언문을 보면 모든 사람이 창조주로부터 생명권과 자유권과 행복추구권이라는 양도 불가능한 권리(unalienable rights)를 부여받았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리고 인간 정부의 목적이 그 천부인권(God-given rights)을 보호하는 데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세계 최초의 민주공화국인 미국의 기초문헌에 많은 권리 중 생명권과 자유권과 행복추구권이 명시된 것, 그리고 그 순서대로 적힌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 천부인권 중 첫 번째인 생명권과 국가의 양심을, 한국 사회에 너무도 만연한 낙태문제를 중심으로 조명해본다.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 태아생명권

4월 11일이면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헌법불합치”(재판관 4인 불합치의견, 3인 위헌의견, 2인 합헌의견)로 판결한 지 1년이 된다. 입법부인 국회는 올해 말까지 낙태죄 조항(형법 269조 1항, 270조 1항)을 개정해야 한다. 개정하지 않는다면 2021년 1월 1일부로 낙태죄 규정은 자동 폐지된다. 엄연한 생명인 태아의 생명권이 이제 합법적으로 침해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입법 권한을 가진 300명의 국회의원이 선출되는 이번 4.15총선이 더더욱 중요한 이유다.

지난 2018년 1월 24주만에 태어난 302g의 사랑(좌)이가 서울아산병원에서 169일 치료받고 자란 모습(우)

많은 낙태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낙태의 명분은, 임신 유지가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강간 혹은 준강간 때문에 임신한 경우, 또는 부모가 유전학적 질환이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등 매우 특수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한 경우의 낙태는 이미 모자보건법 제14조에 의해 합법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특수상황은 한국에서 매년 최소 10만에서 많게는 100만까지 추산되는 낙태 건수 중 매우 극소수에 해당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낙태는 경제 사회적 이유로 인해서 시행된다. 특히 태아의 생명을 산아제한 혹은 가족계획의 이름으로 희생시키는 한국사회의 관습과 풍조는 이미 한세대 이상 진행되며 우리의 양심을 시커멓게 태워놓았다.

이렇게 그 양심이 무뎌진 국가는 왜곡된 페미니즘 운동 때문에 “여성의 권리”라는 이름으로 가장 근본적 기본권인 생명권을 해치기에 이르렀다. 작년 헌재의 헌법불합치 판결도 낙태죄 조항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연법적 기본권이자 국가가 보호해야 할 생명권보다 자기 결정권을 우선시한 것이다. 그러면서 입법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듯 “태아가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주 이전”의 시점에서는 “국가가 태아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할 수 있다”라고 덧붙인다. 즉, 임신 22주가 도달하기 이전의 태아는 그 생명권이 여성의 자기 결정권에 의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체를 떠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태아의 생명이 아직 그렇지 못한 태아의 생명보다 그 존엄성의 정도가 더 크다거나,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으므로 덜 보호받아도 된다는 논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상 갓 태어난 아기도 부모의 끊임없는 보호와 관심 없이는 생존할 수 없다. 또 어떤 장애나 일시적인 신체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보호자나 의료인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면 이들의 생명권은 보호 책임자의 자기 결정권에 의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인가?

태아의 독자생존이 22주라는 기준도 유효하지 못하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의 의회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행사에는 21주에 태어났던 초미숙아 엘리 슈나이더(Ellie Schneider)가 건강한 두 살 아이가 되어 어머니와 함께 참석해 주목을 받았다. 한국에도 2013년에 21주 5일(152일) 만에 태어난 ‘오삭둥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의학발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일 수 없다.

인간 생명 중 가장 작고 연약하며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에 대한 권리 보호는 국가와 우리 모두의 책무다. 아이들의 비명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의 소멸이 덜 패륜적이거나 우리의 부담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올해 안에 반드시 관련 조항 개정을 이루어 내년에 무분별한 낙태가 합법화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좌측의 사진은 21주에 태어났던 초미숙아 엘리 슈나이더(Ellie Schneider), 우측의 사진은 건강한 두 살 아이로 의회 국정 연설에 참석한 엘리 슈나이더

 

성경이 말하는 태아 생명의 존엄

우리 크리스천들은 인간의 생명이 언제 시작하는지와 그 생명이 그 자체로 동등하게 존엄하며 신성하다는 분명한 판단 기준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 바로 성경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창세기 1장 27절 말씀과 모태에서부터 인간을 만드시고 아셨다는 표현들(욥 31:15, 시 22:10, 시 139:13~16, 사 44:24, 사 49:1, 렘 1:5, 갈 1:15 등) 그리고 살인하지 말라는 창조주의 뚜렷한 명령(창 9:4~6, 출 20:13)이 있다. 이 외에도 태아의 생명 됨과 인격적 존엄성을 보다 명백하게 증언하는 다음의 5가지 본문이 있다.

1. 먼저 태아도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인격체다.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자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눅 1:41~44).”

2. 인간은 수정 때부터 죄성을 품고 있는 인격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다윗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하면서 그가 어머니 뱃속에서 잉태할 때부터 죄인이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3. 인간은 모태에서부터 독자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인격체다.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 (창 25:22).” 쌍둥이 에서와 야곱은 리브가의 뱃속에서부터 각자의 성질대로 서로 다투고 장래가 나뉘었다.

4. 낙태가 살인이라는 가장 분명한 성경 구절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규율 중에 명시되어 있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조산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벌금을 내되 …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 (출 21:22~23).” 이 구절에서 ‘조산’은 사실 모든 한국어 번역이 ‘낙태’로 잘못되어 있어서 한글 성경만 보면 오해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영어 성경(NASB, NIV, ESV, NKJV)은 낙태(aborted)나 유산(miscarriage)이 아닌 조산(premature birth)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 구절의 히브리 원어도 ‘[아이가] 나오다’를 뜻하는 얏사(yatsa)로 되어 있고, 다른 본문(창 31:38, 출 23:26, 욥 21:20, 호 9:14)에서 ‘유산’을 뜻하는 의미로 사용된 네펠(nephel)이 아니다. 오히려 ‘얏사’는 보통 정상출산을 표현할 때(창 25:26, 38:29, 렘 1:5) 쓰였다. 이 구절은 태아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것과 같은 급의 범죄라고 말하고 있다.

5.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레 17:11).” 이 구절이 함의하는 것은 늦어도 태아의 핏줄이 생기고 심장이 뛰어 피가 돌기 시작하는 5, 6주째부터 태아가 이미 엄연한 생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정부터 5주 이전까지는 생명이 아니라는 변론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산모가 임신 사실을 인지하게 되는 것은 5, 6주 차 이후이기 때문에 어차피 낙태허용의 여지는 없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여러 주에서는 태아의 심장박동이 감지되는 6주부터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일명 Heartbeat bill)이 입법되고 있다.(2편 계속)

 

※월드뷰 2020년 3월호에 기고된 글을 허락을 받아 전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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