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게 닥치는 시련 도전이고 훈련이죠”

오은해(27)씨는 억척녀다.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 대신 가장 역할을 하면서도 학업과 취미, 신앙생활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는다.

은해씨는 서울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그의 전공은 바이오 엔지니어링, 연구 분야는 후각 센서다. 후각 센서는 냄새를 맡는 센서로, 입냄새로 질병을 알아내거나 냄새로 독성물질을 구분해내는 데 쓰인다. 4명이 팀을 이뤄 연구를 진행 중인데 개발에 성공하면 한국 과학계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을 만들게 된다.

실험실 내에서도 노력파로 소문난 은해씨는 매사에 열심이다. 2006년 부천순복음성광교회 담임목사였던 아버지가 교통사고에 따른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한 지 올해로 3년째. 대학원에 입학한 이듬해 사고로 은해씨는 하루아침에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가장이 됐다. 어머니는 아버지 병간호에 매달려야 했기에 가장 역할은 그에게 돌아갔다.

"원래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어요. 제 용돈은 제가 벌어 썼지만 지금처럼 아버지 병원비에 가족 생활비까지 부담해야 할 금액이 많았던 건 아니었어요."

불행 중 다행인지 그녀에게 과외 제의가 쏟아졌다. 예전에 가르치던 한 학생이 서울대에 합격하면서 '과외선생'으로 몸값이 뛴 것. 덕분에 5개의 과외 자리가 났다. 저녁 8시 실험실을 나와 부천에서 과외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는 시간은 12시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15시간을 일한다.

지칠법도 한데 그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은해씨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동영상을 보여줬다.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이분이 저희 아버지고, 이분이 어머니예요. 처음엔 알아보지도 못하셨는데 지금은 이렇게 걷는 연습도 하시고요. 의사들이 다 돌아가신다고 했는데 이렇게 살아나셨으니 기적이죠. 하나님이 하신거예요."

그는 다른 환자들까지 보살피는 어머니와 차츰 병세가 호전되는 아버지를 보면서 '희망'을 가졌다. 일상의 피로는 희망을 떠올리는 순간 잊혀지게 마련이다.

그녀에게 닥쳐오는 시련은 모두 도전이고 훈련이라고 했다. 힘든 시기를 극복해내면 단단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은해씨.

지난 시간을 돌이켜봐도 '시험' 뒤에는 늘 열매와 축복이 뒤따랐다.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할 때도, 아버지의 사고로 대학원을 그만둘 뻔했을 때도 도움의 손길은 그에게 닿았다.

아주대 화학생물공학부에 다니던 그에게 서울대 대학원 진학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타대학 출신이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좁았다. 게다가 자신이 지원한 '협동과정'의 선발 인원은 고작 7명이었다. 하지만 대학 1학년 때부터 목표로 했던 서울대 대학원 진학을 위해 학점을 관리하고 기도해온 그에게 하나님은 길을 열어주셨다. "나중에 교수님이 그러시더라고요. 면접 점수가 좋았다고. 구술면접 때 사흘 전 공부한 내용이 나왔거든요."

아버지가 쓰러지신 뒤 대학원을 그만둘 생각도 했다. 교수님을 찾아가 이런 저런 상황을 설명한 그에게 돌아온 답변은 "공부를 계속했으면 좋겠다"였다. 그 일로 은해씨는 장학생이 돼 등록금 걱정을 덜었다. 그리고 교수님은 용돈 벌이를 할 수 있는 일거리들을 찾아다 그에게 줬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이끄시는 길'이라는 확신을 얻었다는 은해씨. 그는 남은 논문을 마무리하고 박사학위를 따면 꼭 강단에 서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아닌 필리핀이나 다른 나라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가 세운 '비전'이다.

은해씨는 지난 6월부터 높은뜻숭의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28년간 아버지가 시무하던 교회가 다른 개척교회로 넘어가면서 처음 교회를 옮겼다. 찬양 인도에 주일학교 교사로 1인다역을 맡던 그는 이제 청년부 한 일원으로 성경 읽기에 몰두하며 참여할 수 있는 봉사 프로그램을 찾고 있다.

아버지는 여전히 반신불수 몸으로 누워계시고 병원비는 눈덩이처럼 쌓여간다. 은해씨는 하지만 울지 않는다.

"하나님이 모두를 사랑하시지만 저희 가정이 정말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저희 가정을 통해 정말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으면 좋겠어요."(국민일보제공 글·사진=이경선 기자 boky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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