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고신 총회는 개역개정판 성경과 새찬송가를 공인하고 이를 예배용으로 채택하였다. 개역개정판 성경에도 번역상의 오류가 많다는 이유로 일부 반대자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사용해온 개역판 성경보다는 낫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좀 더 획기적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대어로 번역하되 평범한 구어체로 하고, 그 기준은 청소년들이 읽기에 알맞도록 하자는 주장이다. 이유는 전도와 교육 때문이다.

이런 주장을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신학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되묻고 싶다. 교리와 신학에는 그렇게 관심이 많으면서 대관절 영혼 구원과 교육에는 얼마나 관심이 많은지 의심스럽다고 말이다.

현대어로 성경을 번역하다 보면 본문을 해칠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 반대하는 분들의 주장이다. 표준새번역이 나왔을 때 이런 주장으로 교계는 매우 뜨거웠었다. 표준새번역 이후 성서공회에서는 개역판에서 몇 만 단어 정도를 바꾼 개역개정판을 냈다. 이 번역판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가 몇몇 교단들이 이제 겨우 공인하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 번역판도 새 신자나 청소년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번역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래 교회에 다닌 기성 교인들에게 약간 도움이 되고 있는 정도이다.

성경 번역은 전도와 선교, 그리고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 사역이다. 선교나 교육에서 그 어떤 효과적인 정책이나 방법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이 성경 번역이다. 일만 마디 말보다 성경을 번역해서 직접 읽게 하는 것이 백 배나 낫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교지에서는 비록 완벽하지 못하나 선교사들이 미전도 종족들을 위한 성경 번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번역이란 어떤 경우에도 완벽할 수는 없다. 원문의 뜻을 손상시킬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래서 천주교에서는 일찍부터,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까지도 미사에서 라틴어 성경만 읽도록 강요했었다. 하지만 번역상의 오류라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동시대 말로 번역하는 것은 선교와 교육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과업이다.

지금 우리 한국의 청소년들에게는 새로 번역된 성경이 절실히 필요하다. 옛 번역판들이 이들에게는 이미 외국어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성경이 되었다. 이 성경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라고 아이들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언어로 읽을 수 있는 성경을 손에 들려주어야 한다.

요즘 기독 청소년들에게서 현저히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는 성경을 잘 읽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소년들이 성경을 잘 읽지 않는 이유가 많지만 그 중 하나가 성경의 언어 때문이다. 고어같이 느껴지는 현재의 성경 가지고는 안 된다. 우리 어른들이 신학 문제로 다투고 있을 새가 없다. 영혼 구원을 위해 빨리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우리 후세대들이 쉽게 들고 읽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성경학자들의 글을 읽어보면 성경이 기록될 당시 사용된 언어는 결코 고급 언어들이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이 저잣거리에서 사용하던 평범한 용어들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렇다. 성경은 신학자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 시중거리를 다니는 모든 사람들에게 펼쳐진 책이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전도 대상자들, 곧 불신자들과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현대어로 된 성경 번역이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 우리 기성세대가 얼마나 비교육적이고, 비선교적이며 이기적인가라는 생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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