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14)

 

박영기 선교사(KPM 본부장)
박영기 선교사(KPM 본부장)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의 믿음의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로마서를 보냈습니다. 그 당시 로마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의 중심지였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어두움의 도시였습니다.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기에는 너무나도 힘든 곳이었습니다. 우상 숭배와 세상의 유혹과 많은 핍박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그 성도들에게 끝까지 바른 믿음을 가지고 은혜의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가도록 이 로마서의 말씀을 증거하였습니다. 특별히 13장 마지막 부분에서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도들이 믿음을 끝까지 증거하기 위해서 어떠한 삶이 필요한지를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을 벗을 것입을 것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와 성도들도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어둠의 일을 벗는 것그리스도를 입는 것을 바르게 하면 바른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끝까지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리스도를 입기 위해서 알아야 할 벗어야 할 것입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는 살펴보겠습니다.

 

 

1. 창조주 하나님은 사랑이 넘치는 디자이너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최초에 가죽옷을 만드신 멋진 디자이너이십니다. 가죽옷을 만들어서 인류의 대표자인 아담과 하와에게 입혀 주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세기 3:21)

 

하나님께서 언제 가죽옷을 지어 그들에게 입혀 주었을까요? 아담과 하와가 불순종의 죄를 범한 직후 에덴동산에 숨어 있을 때입니다. 그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고 있을 때입니다. 벗었으므로 수치심을 느끼며 두려워하고 있을 때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아플 때라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류의 대표자가 범죄하여 자기의 낯을 피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때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그의 아내 하와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 입혀 준 것은 그들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옷을 만들어 입혀 주는 것은 참사랑의 표시가 아닙니까?

여기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죽옷을 위한 정결한 동물의 희생입니다. 또 그들의 부끄러움과 허물, 약함과 무서움을 덮어주기 위한 정결한 동물의 피흘림입니다. 그 동물의 찢어진 몸과 흘린 피가 바로 십자가 위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들을 대신해서 고난 받으시고 피를 흘려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류의 대표인 아담과 하와의 범죄의 영향으로 온 인류가 타락하고 죽게 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어 주실 것을 처음부터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것이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아닙니까? 이 사실은 인간이 지은 죄의 무게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의 넓이와 높이와 깊이가 몇만 배로 더 크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는 비밀입니다. 우리는 범죄한 인간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지어 입히신 가죽옷을 통해서 이 비밀을 깨달을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16)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8-39)

 

 

2. 여러분! 옷을 입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옷은 육신의 몸을 보호합니다. 추위와 더위, , 바람, , 여러 가지 불결 등에서 육신을 보호합니다. 특별히 전쟁 중인 군인들의 갑옷은 적의 칼과 창과 화살의 공격으로부터 육신을 지켜주는 제2의 생명과 같지 않습니까?

또한 옷은 입고 있는 사람의 신분을 알려 줍니다.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을 보면 그가 학생인지, 군인인지, 경찰관인지, 사회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노동자인지, 여행자인지, 스포츠 선수인지, 예식에 가고 있는 자인지, 쉴 준비를 하고 있는 자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옷은 사람들의 부끄러움, 수치심, 상처, 허물 등을 덮어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위하여 만드신 가죽옷과 아담과 하와가 자기들을 위해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만든 치마를 비교해 보십시오. 완전히 차원이 다르지 않습니까? 이 가죽옷을 통하여 아담과 하와는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두려움, 수치심, 부끄러움, 죄책감에서 해방되는 기쁨을 회복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 평안, 용서, 소망 등을 느끼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동물의 희생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금 하나님을 향하여 일어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 가죽옷의 은혜를 통하여서 여인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두고 살게 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오.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세기 3:15)

 

 

3.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옷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옷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성도들의 옷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표현이 아닙니까. 한국어 본문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라는 명령형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14)

イエス・キリストをなさい

のためにいてはいけません(-13:14)

Rather, clothe yourselves with the Lord Jesus Christ,

and do not think about how to gratify

the desires of the sinful nature.(Romans 13:14)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는다는 영적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빛의 열매인 착함과 외로움과 진실함을 삶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품을 삶 속에서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삶이 그리스도를 입는 것입니다.

 

밤은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로마서 13:12)

 

너희는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에베소서 5:8-9)

 

또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세례란 영적으로 그리스도와 결혼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같이 모든 삶을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합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삶이 그리스도를 입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라디아서 3:27)

 

또 주님의 성품을 삶으로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닮아가는 삶입니다. 주님께 순종할 때 주님의 성품이 우리의 삶을 통하여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서,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삶으로 보여 주신 성품입니다. 이 성품들을 나타내는 삶이 그리스도를 입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골로새서 3:12-14)

 

또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란 주님을 믿기 전 육신의 욕심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면서 자기 중심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새 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의 왕, 자기의 주인으로 영접하고 주님과 그 가르침에 순종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옛 사람을 벗어야만 새 사람을 입을 수 있습니다. 새 사람을 입으면 새 사람의 왕이요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원하시는 삶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를 입는 것입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에베소서 4:22-24)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입는 것은 빛의 자녀로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와 일체가 되어서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자기의 왕과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입니다. 왕과 주인 되신 그리스도께 언제나 순종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사는 삶입니다. 새 사람으로 사는 삶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입게 되면 우리의 옷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언제나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더라도 우리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 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진리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위기로부터 지켜주실 것입니다. 죄의 유혹과 악에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죽음에서 다시 살려 주실 것입니다. 내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하여서 옷 되신 그리스도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소원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내 삶의 이유, 목적, 원동력이 됨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립보서 1:20-21)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가 가장 좋은 옷이 아닙니까? 가장 빛나는 옷이 아닙니까? 가장 안전한 옷이 아닙니까? 가장 능력 있는 옷이 아닙니까? 가장 가치 있는 옷이 아닙니까? 이 예수 그리스도 만이 우리가 언제나 어디서나 입고 살아야 할 영광스러운 옷입니다.

 

4. 새 옷인 그리스도를 입기 위해서 낡은 옷을 벗어야 합니다.

새 옷을 입기 위해서는 먼저 낡은 옷을 벗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새 옷 되시는 그리스도를 입고 새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옛 사람인 낡은 옷을 반드시 벗어야 합니다. 낡은 옷, 옛 사람을 벗는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그 의미를 명백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어둠의 일을 버리고 사는 삶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않고 사는 삶입니다.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고 사는 삶입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고 사는 삶입니다. 반대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삶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사는 삶입니다. 성령의 인도와 지배를 받으면서 사는 삶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로마서 13:12-14)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라디아서 5:16-17)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19-23)

 

성도가 벗어야 할 어둠의 일,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는 것, 육체의 욕심, 육체의 일은 성령의 열매와 반대가 됩니다. 하나님의 성품과도 반대가 됩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타락한 이 세상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가복음 7:20-23)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한일서 2:16)

 

이 같은 것들은 자기도 다른 사람들도 어두움 속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주위의 사람들을 힘들게 할 것입니다. 사회도 교육도 문화도 가정도 국가도 어둡게 할 것입니다. 좋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을 세우고 살리고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죄짓게 하며, 괴롭게 하며, 죽이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한 마음과 이 세상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것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일시적, 충동적, 중독적인 것입니다. 특별히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의 힘과 노력과 지혜로는 잘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주인, 마음의 왕이 바뀌지 않으면 정말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마음의 주인이 그리스도로 바뀌게 될때에 주님의 은혜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왕이 되시는 주님을 높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게 되면 어둠의 일, 육체의 욕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주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5. 그리스도를 입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입기 위해서는 이 시기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이 어떤 때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지금의 때를 바로 알게 되면 영적 잠에서 깨어나게 될 것입니다. 어둠의 일을 벗고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완성될 구원을 소망하면서 어둠의 일을 벗게 될 것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게 될 것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미래를 기쁨으로 대비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로마서 13:11-12)

 

특별히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여기에 나오는 구원은 종국적인 구원, 완전한 구원,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실현될 영광의 구원, 주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 완성된 구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지만, 그 구원은 아직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완전한 구원이 아니기 때문에 이 땅에 살 때 고통도, 시련도, 질병도, 죄를 범함도, 실패도 있습니다.

구원에는 몇 가지 과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 부르심, 회심, 거듭남, 칭의, 성화, 영화의 과정이 있지 않습니까? 예정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정하신 것입니다. 부르심, 회심, 거듭남, 칭의, 성화는 이 세상에서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이 세상에서 통과해야 하는 구원의 과정입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주어지는 구원이지만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영화는 주님의 재림 때에 영광의 몸으로 부활해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완성된 구원을 의미합니다. 처음 믿을 때보다 완성될 구원의 날, 주님의 재림의 날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로마서 8:29-30)

 

이 완성될 구원을 아는 성도들은 자다가 깰 때가 된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음을 영적으로 깨어서 알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기록된 은 죄악의 밤을 의미합니다. 은 모든 죄가 다 끝이 나고 의가 충만하게 되는 날,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의미합니다.

밤이 깊었다는 것은 아침이 동틀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자다가 깰 때가 다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밤에 있었던 죄악은 낮이 되면 다 나타나게 됩니다. 인간의 그 어떤 죄악도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는 100%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점점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영적 눈이 열려서 이 진리를 알게 되면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다운 품위와 인격을 가지고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시대, 이 시기를 아십니까? 지금은 영적 잠에서 깰 때입니다. 어둠의 일을 벗어야 할 때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벗어야 할 때입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할 때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좌절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죄악의 밤이 깊어도 영광의 새 아침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밤은 낮을 이길 수 없습니다. 낮이 되시는 주님은 영원토록 살아 계십니다. 반드시 밤을 심판하기 위하여 재림하실 것입니다. 옷 되시는 주님도 영원토록 살아 계십니다. 우리를 영원토록 사랑하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입는 것은 우리의 일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입은 자들을 위기에서, 환난에서, 죄악에서, 불안에서, 유혹에서, 두려움에서 구원해 주시고 이 세상에서 저 천국까지 인도해 주시는 것은 옷 되시는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이 말씀은 로마 교회뿐 아니라 오늘 우리 교회에 주시는 하나님 말씀입니다. 로마서는 이신칭의의 교리뿐만 아니라 성도의 생활과 선교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선교에는 ‘Doing의 선교‘Being의 선교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그리스도를 입는 것은 Being의 선교, 삶의 선교에 속합니다. Being의 선교가 바로 되어야 Doing의 선교도 바로 될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어둠의 일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를 입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면 주님의 능력, 복음의 능력, 성령의 능력이 회복될 것입니다. 옷이 되시는 그리스도는 교회와 성도들의 영원한 안전보장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옷이 되시는 그리스도께 영광과 존귀와 찬양과 감사를 영원무궁토록 돌려 드립시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로마서 8: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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