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목사직 세습문제를 비롯한 교회 직분문제 그리고  예배 의식의 갱신문제 등에 대해서 공개적인 논의가 시작 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신앙고백과 전통을 가진 교회일지라도 제각기 다른 생각, 다른 길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제도에 대해서 논의할 때는 우리에게 신학의 빛을 준 선배들의 원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대단히 유익하다. 우리는 개혁주의 신학이라는 참으로 소중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복된 유산을 토대로 해서 우리 시대에 제기된 문제들을 좀 더 성경적이고 개혁주의적인 입장에서 밝히고 개혁해서 정착시킬 책임이 있다. 교회의 제도나 예배에 관한 문제는 효율성의 문제 이전에 하나님의 영광에 관한 문제요, 영원한 생명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급격한 개혁보다는 조금 지연되는 한이 있더라도 교회적인 합의를 이룬 다음에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예배의식의 통일이 시급하다.

예배 의식에 대해서 칼빈의 입장은 어떠했는가?

칼빈은 중세의 잘못된 예식을 개혁하려고 했지만 모든 것을 단절하고 새로운 의식을 만들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성찬을 매주일 거행해야 한다고 했을 때도 초대교회에 호소했고, 어거스틴과 크리소스톰의 글에 호소했다(기독교강요 4권17장 44-45). 그러나 그는 신약성경의 관습이나 속사도시대의 관습을 모방하려고만 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하나님의 권위를 근거로 성경에서 이끌어낸 법들 곧 인간이 만들기는 했으나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온 법들만을 인정 할 뿐이다. 예를 들어 엄숙한 기도를 드릴 때 무릎을 꿇는데 대해서 그것이 사람의 전통인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인가? 사도가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라“(고전14:40)고 한 예식의 일부라고 볼 때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다. 그러나 명백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일반적으로 암시된 것을 표시한다는 의미에서 그것은 사람에게서 온 것이다”(강요4권10장30). 이러한 칼빈의 정신에 입각해서 개혁교회는 예배의식의 원리들을 끌어낸다.

첫째, 예배는 성경적이어야 한다.
성경은 정해진 예배순서를 규정해 주지 않지만 예배의식은 성경에 충실해야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예배할 것을 명한다. 하나님이 누구이시며, 그래서 예배자는 어떤 자세와 동기로 예배해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예배의 요소들은 회당예배와 성만찬을 제정하신 주님의 행위에서 도출된 것으로 믿는다. 기도, 신앙고백, 성경봉독, 아론적 축복, 찬송, 헌금, 십계명 공포 등. 그러나 그 순서들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둘째, 예배요소는 일치해야 한다.
성경이 예배순서를 규정해 주지 않기 때문에 긴 세월동안 예배의식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어왔고 여러 가지의 제도가 결정되었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항상 과거에 교회가 어떻게 했는지 살펴야 한다. 그리고 오늘의 교회는 어떻게 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개혁교회는 과거의 교회와 함께 오늘의 교회와의 일치를 해야 하는 보편교회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의 예배의 요소는 일치해야 한다.

셋째, 예배요소는 신앙고백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예배요소의 일치와 균형을 이루는 원리다. 예배자는 하나님과 교회 앞에 정한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한 신앙고백은 양면성이 있다. 한편으로는 예배의식을 규정하게 된다. 예배 의식은 그들이 무엇을 믿으며, 무엇을 바라며, 그 생명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준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예배 의식을 통해서 예배자들의 믿음과 소망과 생명을 강화시켜준다.

넷째, 목회적이어야 한다.
이 원리는 예배 의식은 항상 어떤 특정한 시기와 문화를 가진 백성들을 위한 의식이란 것을 고려하는 것이다. 다른 예배 원리들이 예배의 안정성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이 목회적 원리는 융통성(Flexibility)의 필요를 강조한다. 목회자는 예배의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며, 하나님 앞에 세우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 있는 백성들이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다는 것을 인정할 때 가능하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적 원리를 강조했던 칼빈이 교회의 자유에 대해서도 강조한 점을 기억해야 한다. 칼빈은 전통주의를 배격했다. 뿐만 아니라 급격한 개혁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민족과 시대의 풍속에 순응해야 하기 때문에 교회의 유리한 쪽으로 전통적인 관습을 변경 또는 폐지하고 새로운 것을 제정하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물론 충분한 이유 없이 경솔하고 갑작스러운 개혁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강요4권10장30).

다섯째, 삶의 모든 영역이 예배적이어야 한다.
이것은 칼빈과 카이퍼를 비롯한 개혁주의자들에게서 발견되는 폭넓은 개념이다. 주일에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게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활동(예배적 삶)하게 하는 목적도 있다. 그래서 헤르만 리델보스는 “삶 전체가 영적인 예배이고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다. ... 교회의 모든 회원들이 하나님께 나아가며 성령에 참예한다. 삶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고 속된 영역은 없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 다섯 가지 원리에 충실한 교회는 개혁교회의 전통 안에 있는 교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교회는 그들의 예배의식의 전통을 개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은 예배의식에서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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