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의 한 해를 돌아보며

   
2008년의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참여정부’를 끝내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 사회는 통과 의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 촛불로 온 나라를 뒤덮더니 기름 값 폭등, 미국 발 금융위기로 불어온 경제한파, 정부의 종교편향에 대한 시비, 남북관계의 긴장, 우리 근대사 인식 등에 대한 상반된 생각과 이론들이 분출한 해였다.

 

그런 가운데 기독교 역시 제자리를 찾지 못한 듯 우왕좌왕하는 모습들이다. 얼마나 많은 사상과 철학들이 거리에 몰려나와 소리를 지르고 있는지 모른다. 이에 기독교는 좋은 게 좋다는 논리가 밀려오면서 복음의 본질이 흐려지는 위기를 맞고 있다. 필자는 한 해를 돌아보면서 이런 다원종교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개혁주의 신앙인들이 취해야 할 자세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다원 종교 사회


국가와 사회적인 면에서 볼 때 모든 종교는 대등한 관계 속에서 공존한다. 다원주의 시대에 사는 영향력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진리가 하나라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고, 혹은 서로 다른 종교와 문화와 가치관을 가진 여러 세계가 한 사회에 공존하므로 다른 종교에 대해서 관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대에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내전이 종교․문화간의 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종교적 다원주의야말로 인류를 전쟁으로부터 보호하고 사회를 통합하기 위한 실질적인 대안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이후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전통으로 고수해 온 우리 민족은 기독교의 독선과 배타성이 우리 사회의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라는 인식이 자유주의 신학자들 중에 팽배해 있다. 그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유일성을 공개적으로 부인하는 종교다원주의 신학자들도 있다. 그들은 기독교와 다른 종교가 동일한 신적 실재를 추구하는 서로 다른 상징의 체계라고 주장하며, 모든 종교는 결국 비슷한 영적 체험을 가능하게 해준다고 한다. 유일한 진리의 기반을 부정하고 전통적 기독교의 진리를 하나의 가능한 진리체계로만 받아들이는 소위 ‘포스트모던 신학’이 지금 우리의 전통적인 신앙을 도전하고 있다.

  


다원주의자들의 주장


다원주의자들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류의 생존은 모두가 조화를 이루며 함께 사는 것과 공동의 선을 위해 협력하는데 있다고 보고 종교를 포함해서 무엇이든 인류를 분열시키는 것은 배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타당하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국제적 화해, 인권신장, 환경에 대한 책임, 새로운 국제 경제질서의 추구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특히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종족들이 이러한 사회적 활동에 협력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거나 진리를 희생해가면서 까지 연합과 화해를 추구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연합시킬 뿐 아니라 또한 불가피하게 분리시키시기도 하시기 때문이다(눅12:51).


다원주의 자들은 “기독교 신학은 그것이 절대적이거나 최종적인 진리라는 어떤 주장도 포기해야 하며 그 대신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삶의 방침을 발견할 필요성을 갖게 된 인간이 상상력을 동원해 만들어낸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하며 “성경조차도...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점에 대해서 우리도 성경 저자들이 각각 자신의 독특한 문화에 속해 있었고 그 문화 안에서 말했다는 의미에서 성경은 문화적 제약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자신의 진리를 말씀하셨다고 주장한다. 


다원주의자들은 종교는 “가난한 자들과 인간취급을 받지 못하는 자들의 필요를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를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은... 윤리적인 것, 즉 인간의 복지를 증진시키는데 얼마나 효율적인가 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점에 대해서 우리는 사회정의가 기독교의 중대한 관심사가 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해야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회개혁에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던 점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소명에 필수적인 부분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유일한 복음 진리를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않는다.

 

 

다원주의에 대한 개혁신학의 입장


첫째, 아무리 정연한 논리와 타당한 적합성을 가지고 사회통합과 종교전쟁을 피하기 위해 대화를 강조해야 한다고 해도, 기독교인이라면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완성하신 복음만이 유일한 진리라고 주장해야 한다. 성경의 어느 구절을 보더라도 여호와 하나님과 그리스도 복음의 유일성에 대하여 강조하지 않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신6:4-5 행4:12). 기독교의 배타적 성격은 유일하신 인격적 절대자, 창조주 하나님, 죄인이 어떤 행위로도 접근할 수 없는 살아 계신 하나님 계시 신앙에 있다. 그래서 기독교의 하나님 외에는 참 하나님이 없다고  하든지, 아니면 기독교의 하나님을 믿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오늘날 다원주의 시대에서 더욱 진지하게 새겨야 할 말씀이다. 기독교가 복음의 배타성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시대와 불화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둘째, 복음만이 진리라고 해서 다른 종교를 무력으로 억압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역사적으로 타종교에 대한 적대적 태도를 취하라는 명령은 주로 구약의 모세 오경에 나타난다. 하나님은 언약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 가나안 종교와 그 땅의 풍습과 함께 사람들까지 모두 멸절 시키라고 하셨다. 그러나 성경을 전체적으로 보면 이 명령은 예외적이다. 구약시대 족장들은 이방사람들과 언약을 맺고 서로의 종교와 문화를 존중해 주면서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황제숭배를 수호해야하는 임무를 가진 빌라도 앞에서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요18:36)고 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왕국이 세상의 신이 지배하는 이 세상의 왕국과 혼동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이들과 대결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다원 종교 사회에서 기독교의 복음을 변증하고 전파하는 것을 사명으로 가지고 있던 바울은 무력으로 충돌하기보다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주고(행19:11-20, 19:37), 그리스도인의 희생적인 삶을 보여주며(고전9:18) 설득을 통하여 복음을 변증하였다.

 

셋째, 전통적 개혁주의 신학에서 타종교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타종교는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하기 위한 마귀의 술책이요, 인간의 노력을 통하여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잘못된 가르침으로 보며(신13:1-5), 또 다른 하나는 죄를 억제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반은총의 하나요, 타락 이후의 인간에게도 희미하게 남아 있는 ‘본성의 빛’에 근거한 것이며, 하나님이 자연인에게 주시는 일반계시의 결과물로 보는 것이다(롬1:18-19). 이러한 성경적, 신학적 원리에 근거하여 다원주의 사회에서 타종교에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다원주의 사회에서 개혁신앙인이 취해야 할 자세


첫째, 그리스도 교회의 정체성에 손상을 주는 경우가 아니면 타종교에 대하여 유연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다니엘은 우상에게 절하는 독재자의 강요에 대하여는 무릎을 꿇지 않았지만,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으라는 말에는 열흘동안 시험하여 보라고 설득하였다. 바울은 우상숭배에 대하여는 강하게 질타하였지만 헬라 신들의 신전에 들어가 신상을 훼손한 일이 없었다(행19:26). 우리 그리스도인은 타종교의 교리에 대하여 그 허무함을 학문적으로 논할 수 있지만, 그 종교인을 모욕하거나 그들의 종교적 심벌을 훼파하는 등의 과격한 행동은 해서는 안 된다. 


둘째, 모든 적절한 방법과 힘을 동원하여 타종교인에게도 기독교를 전파해야 한다.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사회에서는 법과 강제력을 사용하였고, 기독교인이 소수인 사회에서는 개인의 지혜와 경건의 능력을 사용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우리사회는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사회이므로 세속의 법이 허용하는 한도에서 모든 방법과 힘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타종교인에게 복음을 전해야한다.


셋째, 다른 종교와 연합하여 사회운동을 할 때는 극도로 주의해야 한다. 세속적이고 다원종교 국가인 우리나라의 경우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공공의 선을 위해 연합하여 활동해왔다. 삼일 만세운동, 70-80년대 민주화운동, 최근의 환경운동에서도 그런 예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와 다른 종교는 소위 세속적인 영역에서는 협력할 수 있으나 종교적인 영역에서는 협력할 수 없으며, 특히 종교 다원주의적인 메시지가 생산되거나 전해지지 않도록 그리고 기독교의 정체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와 긴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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