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성공하기를 원한다. 그 성공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정치권도 그렇고 경제활동에서도 그렇다. 수년간 많은 시간과 물질적 투자를 하여 공들여 기술을 계발하였는데 그것을 중국에 헐값에 팔아넘기는 일들은 가슴을 칠 일이다.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서 무엇이든 한다. 선한 경쟁은 얼마든지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안타까운 것은 성공주의적 사회구도가 교회 안에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목회도 성공하고 보자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이든가 우리 코닷 게시판에 글이 잠깐 올랐다가 사라지더니 얼마 전 총회 홈피에 올라온 글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읽어보니 어디서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총체적 남감에 빠져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 내용을 잠깐 요약해보면


1. 예수님 재림이 2023년 이다.

2. 여자의 정결 규례기간이 두 배나 긴 것은 하나님께서 여자보다 남자를 두 배나

    더 사랑 하시는 증거이다.

3. 찬송가를 유행가로 바꾸어 부르게 함

4. 라합의 거짓말 사건. 즉 교회를 위해 하는 거짓말은 괜찮다는 것.

5. 부부간이면 집에서는 술 마셔도 된다고 함.

6. 주일 여 선교회 헌신 예배 후 여집사님들과 회식하러 가는 것

7. 성령운동으로 뜨레스디아스를 적극 권장.

8. 건물이 전도한다. 우선 교회 짓고 재정 문제 해결 위해서는 그 때 전도한다.

9. 서재에서 여 집사를 일대일로 있을 때 끌어안는다.

    등등의 글들을 장황하게 쓴 것이다.


물론 목사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잘못도 많고 자세히 보면 허물도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이 허점을 보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는 분명 목회에 성공하고 싶은 의욕이 남달라서 과욕이 정도를 벗어나게 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싶다. 물론 여집사를 포옹하는 일은 공적이나 사적으로나 극히 삼가야 할 일이다.


그 문제와 함께 헌신예배 후 회식하는 것도 덕의 문제이다. 우리는 고전 8장 13절에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 하신 바울의 말씀을 경청하여야 한다.


또한 아무리 결혼식의 즐거움이 컸다고 할지라도 “고요 한 밤 거룩한 밤”을 유행가 노세 노세 로 바꿔 부르면서 후렴에서는 예수님도 예수님도 아니 노지를 못 하리라 차차차! 한 것은 정도에 지나치다 할 것이다.


지적하고자 하는 중요한 문제는 대출을 많이 받아내려는 욕심에 경로당 노인들을 식사대접과 선물로 유혹하여 교회당을 채우고 마치 교인인 것처럼 위장하였다는 것과 건물이 전도한다. 교회 짓고 재정 문제 해결 위해서 전도하면 된다는 식의 발상이다.


이는 분명 성공주의가 만들어낸 산물이 아닐 수 없다. 성공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다는 성공주의는 결코 주님의 방법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 그 중에서도 악한 자들이나 하는 것이다.


단연코 말하건대 건물이 전도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건물이 전도하게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어느 정도 교인 수는 늘어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수평이동을 자극하여 여러 교회들을 혼란케 하는 일일 뿐이다.


먼저 전도의 열기가 일어나 성도들이 뜨겁게 기도하고 말씀에 사로잡혀 전도하다가 교인 수가 늘어나면 어쩔 수 없이 건축을 하는 일이야 자연발생적인 지극히 당연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건물이 전도한다는 식의 발상은 결코 성경적이 않다. 그렇게 되니 건물을 짓기 위하여 대출을 많이 받아야 하고 그러자니 교인수를 늘이기 위하여 경로당에게 까지 협조(?)를 구하는 것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날 노인들까지 500여명이었다니 그 교회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것이다.


이제라도 목사는 정도를 택해야 한다. 우리가 받은 신학을 목회에 잘 적용하고 더디더라도 교회 안에 제자를 길러 전도하게 해서 전도를 통해서 교회가 성장하면 그때 교회당을 건축하여도 좋을 것이다. 다윗은 주님이 원하지 않음을 알고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만 하다가 갔다. 그래도 어느누구하나 다윗을 그 일에 실패한 자로 보지 않는다. 주님이 보실 때 무엇이 옳은 방법인지 깊이 생각해야할 때가 아닌가 한다. 아무리 급해도 목사는 정도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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