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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에 대해서(1)모든 성경의 기도는 약속을 믿고 구하는 것이다
#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에 대해서
   
대상4:10절은 야베스의 기도라고 알려져 있다. 이것은 2001년도 출판된 책 제목 때문이다. 내 삶을 기적으로 채우는 기도의 원리라는 부제목이 있다.

필자도 이 책에 대해서 소문을 익히 들었는데, 얼마 전에 한 성도가 책을 빌려 주어서 읽게 되었다.

야베스 기도는 2001년에 첫판이 나왔고, 필자가 받은 책은 2002년도에 153쇄의 책이다. 엄청난 판매를 기록한 책이다. 미국에서 출판 해당년도인 2001년에 800만권 이상이 팔린 책이다. 한국에도 엄청나게 팔리고 소개가 되었다.

늦게나마 야베스의 기도의 영향력을 알고 싶어서 인터넷을 뒤졌더니 야베스의 기도라는 찬양도 다양하게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서는 워십 댄스도 유행했다. 또한 미국의 경우 야베스의 기도가 하나의 상품 로고가 되어서 엄청난 부산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실제로 뺏지 목거리, 장식 등이다. 또한 야베스의 기도 출간 이후 후속 책들도 많이 나온 것 같다. 대단한 영향력이다. 야베스의 기도가 브랜드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의 가치는 실제로 기도가 가지는 힘과 능력을 성도들에게 소개하고 기도하도록 만들었다는 사실에 있다. 한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부담되지 않는 분량의 내용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저자는 야베스의 기도에 나오는 내용을 도약대로 삼아, 자신의 삶에서 이루어진 기도의 응답을 간증 형식으로 연결해서, 저자가 이해한 야베스 기도를 증명하고 이런 기도를 드리도록 격려한다. 필자도 늦었지만 읽고서 나름의 감동을 받았다. 기도를 통해서 삶을 더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좋은 메시지를 받았다.

필자가 이런 나름의 인상을 가지고 야베스의 기도가 있는 본문을 함께 나누어 보려고 한다. 물론 책에 있는 내용을 소개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본문을 해설하면서 야베스의 기도의 본질에 충실하게 소개하려는 것이다. 복에 복을 더하사 지경을 넓히시고 모든 환란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 야베스가 누구인가?
먼저 야베스의 기도의 주인공인 야베스에 대해서 살펴보자.

야베스는 형제보다 존귀한 자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어머니가 지어 주었다. 야베스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는 그 어머니가 수고하면서 아이를 낳았기 때문이다. 수고라는 단어는 고통이란 단어이다. 고통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야찹이다. 그런데 야베스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야차브라는 말의 자음 순서를 뒤바꾸어 놓은 것이다. 야차브가 아니라 야베츠이다. 두번째와 세번째의 자음을 교환했다. 성경에는 야베스라는 이름이 이곳 외에는 나오지 않는다. 길르앗 야베스라는 말과 한글은 같지만 자음의 구성이 다르다.

고통스럽게 낳은 아들이기에 야베스라고 했다. 그리고 그 이름은 어머니가 지었다. 성경에서 자녀의 이름을 어머니가 지어주는 경우는 흔하지는 않지만 드물지도 않다. 야곱의 열 두 아들의 경우 그들의 이름을 모두 레아와 라헬이 지어 준다.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특수한 경우이다. 엘리 제사장의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아내가 아이를 낳고, 그때 그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었다.

한나가 아이를 낳고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지었다. 서원의 적용과 관련된다. 모세라는 이름은 애굽의 공주가 지어준다. 이렇듯 어머니가 이름을 주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아주 보편적인 현상은 아니다. 보편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적지 않기에 야베스의 이름을 짓는 경우도 그렇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야베스의 이름을 짓는 경우가 아주 특별한 경우가 되는 것은 이름을 짓는 어머니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다른 성경의 경우를 살펴보면 자녀의 이름을 짓는 어머니의 이름이나 신분이 분명히 제시된다. 그리고 남편이 누구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야베스의 경우는 어머니의 이름도 모른다. 그리고 그의 남편 즉 야베스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다. 또한 야베스가 형제들보다 존귀한 자라고 소개하는데, 형제들의 이름도 언급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아주 독특한 이름 짓기라고 할 수 있다.

야베스는 고통 가운데 이름 모르는 한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다. 부모가 있지만 이름도 모른다. 형제도 있지만 이름을 모른다. 그리고 그의 아내나 자식들도 모른다.

이런 사실들을 의미있게 만들기 위해서 조금 더 생각을 해 보자.

야베스를 소개하는 대상4장의 말씀은 1절에 유다의 자손들을 소개함으로 시작한다. 야곱의 아들인 유다에게는 5명의 아들이 있었다 (대상2:3-4). 그 중에서 베레스의 직계 계보를 대상4:1-7절에서 다시 소개한다(다시라 함은 2-3장에서 이미 소개가 되었다). 그리고 8-20절까지는 베레스의 계보에 들어와 있기는 하지만 그 뿌리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의 명단이 기록되었다. 8절의 고스는 그 아버지의 이름이 소개되지 않았고, 다른 족보와 연결이 없다. 9절에 야베스도 위에서 살핀대로 부모의 이름을 모른다. 11절은 글룹, 14절은 므오노대, 15절은 갈렙, 17절은 에스라가 삽입형식으로 소개된다. 이들은 모두 부모의 이름은 모르지만 베레스라는 유다 지파에 소속하게 된 이름들이다. 그래서 유다 지파가 대상2-4장에 소개되는데 제일 마지막에 언급된다 (대상4:21-23절의 셀라은 유다가 다말이 아닌 가나안 여자 수아의 딸에게서 얻은 생존한 아들이다. 따라서 족보가 형성된다. 이에 대해서는 윌리암슨이 쓴 유다 가문의 대칭 구조적 구조 이해를 참고하면 도움이 된다).

우리가 야베스의 기도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야베스가 누구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야베스는 고통 중에 낳은 아들이고, 부모의 이름은 모르고 조상을 유다 지파 안에서 추적할 수 없지만 그러나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이다. 현재까지의 야베스에 대한 관찰 결과이다.

# 야베스가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에 귀화한 겐 족속의 후예일 가능성

그런데 야베스에 대해서 추정할 수 있는 한 가지 정보가 더 있다. 대상2:55절의 말씀이다. 야베스에 살던 서기관 종족 곧 디랏 종족과 시므앗 종족과 수갓 종족이니 이는 다 레갑 가문의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종족이더라.

여기에 언급된 야베스는 겐 종족 출신의 서기관들이 살던 지역 명칭이다. 그런데 이 야베스는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지명 길르앗 야베스와는 다른 단어이다. 야베스의 기도의 야베스와 같은 단어이다. 성경에는 지역 이름을 사람 이름과 동일한 경우가 많다. 가까운 예로 삼손이 태어난 지역이 소라와 에스다올 지역인데, 이 지역 이름은 대상2:53,54절에 소라와 에스다올 종족과 연결된다. 따라서 야베스란 지역 명칭이 야베스란 인물과의 연결의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야베스에 살던 겐 족속이 누구인가?

모세의 장인이 누구인가? 이드로 혹은 호밥이라고 부른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결혼을 했다. 모세의 장인은 이드로라는 미디안 사람이자 겐 족속이다. 삿4:11절에 보면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 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그리고 삿1:16절을 보면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 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하니라.

겐 사람은 원래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다. 그들은 미디안 자손이고, 이방 사람이다. 그런데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사회에 편입된 사람이다. 출애굽 이후에 편입이 되어서 유다 지파와 함께 거했다. 실제로 겐 족속들이 살던 야베스라는 지역이 소개되는 대상2:55절은 유다 지파의 거주지를 소개하는 문맥에 들어있다. 대상2-4장은 유다 지파의 족보이다.

이런 사실들은 우리가 야베스가 누구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그의 기도 내용을 이해하는데 조명을 준다.

야베스가 유다 지파에 속했지만 그러나 그 부모의 이름이 소개되지 않았다. 그의 형제들의 이름도 모른다. 야베스라는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발견할 수 도 없다. 또한 실제로 그의 족보를 유다 지파에서 보기는 하지만 족보의 뿌리를 찾을 수 없다. 이런 사실들에 덧붙여 야베스라는 지명이 이방 사람으로서 유다 지파에 편입된 겐 사람들의 거주처라는 사실은 야베스가 이방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많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야베스의 정체성을 정리하였다.
야베스는 유다 지파의 뿌리가 없는 이방인 즉 겐 사람으로서 유다 지파에 편입된 사람일 가능성이다.

# 지경을 넓힌다는 의미에 대해서

본문 10절을 보자.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이것은 개역 개정 번역인데, 이전에 쓰던 성경이 친숙한 분들이 많다.

거기에는 이렇게 번역이 되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야베스의 기도가 관심을 끌었던 중요한 부분이 이 부분이다.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혀달라는 기도다.

"복에 복을 더하사"를 개정 번역은 "복을 주시려거든"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조건절의 문법은 강화되었지만 뜻은 약화된 번역이다. 다르게 번역을 하자면 "복에 복을 주시려거든" 혹은 "정말 복을 주시려거든"이 좋겠다 (영어로는 bless me indeed).

복을 준다는 말을 강조한 것이 히브리 문법적으로 사실이다. 문제는 복이 무엇인데 그렇게 강조해서 말했는가가 중요하다. 이 복 자체의 개념은 좀 더 나중에 살피기로 하고 우선 복의 내용으로서 지경을 넓힌다는 것을 살펴보자.

지경을 넓힌다는 말이 개정역은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라고 했다.

지경은 땅의 경계를 말한다.

이런 번역을 그대로 놓고 보면 사람들로 하여금 이렇게 생각하게 만든다. 야베스라는 사람이 물려받거나 가지고 있는 땅이 있는데, 이것을 더 넓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문자적인 전달이 그렇게 만든다.

그런데 지경을 넓히시고 라는 표현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이해하게 해 주는 구체적인 문맥이 없다. 복의 내용으로서 지경의 넓어짐이다. 이것을 통해서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에서는 저자 부르스 윌킨스는 독자들에게 더 많은 꿈을 꾸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사업을 확장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만일 야베스가 월 스트리트에서 일을 했더라면 그는 아마도 "하나님 제가 투자한 주식의 가치를 올려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 이런 것이 하나님의 계산 방법이라고 소개한다.

야베스 시대가 대체로 사사 시대라고 인정을 한다. 비교되는 시점을 통해서 그런 결론에 대체로 인정한다. 사사 시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지파 별로 자기들에게 기업으로 준 땅을 얻던 시대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베스의 복이 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맞다.

그런데 문제는 지경을 넓혀 달라는 표현이다. 성경에 보면 사54:2에 보면 네 장막터를 넓히라는 표현과 어울리는 말로 기억된다.

지경을 넓혀달라는 말의 문자적인 첫 인상에 충실하기 보다는 좀 더 성경적인 표현에 관심을 가져보자.
신19:8절을 보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네 지경을 넓혀 네 조상들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신 땅을 다 네게 주실 때

신19장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해서 광야에서 일 세대가 모두 죽고 이 세대가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모압 평지에 있을 때 주신 말씀이다. 그때 네 지경을 넓혀, 조상들에게 약속한 땅을 다 네게 주신다는 말씀이다. 이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을 두고 하신 말씀이다. 네 지경을 넓혀 라고 말하는 시점에 그들이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이다 (물론 2지파 반이 요단 동편을 정복했다. 그러나 나머지 9지파 반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이다). 모압 평지에 있다. 이제 그들은 요단을 건너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야 한다. 여기서 "네 지경을 넓혀"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모두 너에게 주시는 것과 같은 표현이다. 히브리어의 전형적인 병렬 어법이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한 약속의 땅 전부를 얻는 것 그것이 지경이 넓혀지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 거기서 여호수아와 갈렙의 인도아래 땅을 얻었다. 그러나 여호수아 세대가 모든 땅을 얻은 것이 아니다. 일부분이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죽기 전에 도면 분배를 하였다(수13-21장). 12지파에게 도면 분배를 하고, 12지파들이 스스로 약속의 땅을 얻도록 세겜에서 격려하고 언약을 맺었다(수24장). 그런데 12지파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무서워하고, 그들을 몰아내지 못하고 오히려 지배를 당하는 사사 시대를 맞았다. 실제로 사사 시대가 얼마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난을 주었던 시대인지 모른다. 사사 시대는 불순종의 시대의 대명사이다. 쫓아내지 못하였고 라는 표현이 도배를 하고, 배반하며, 또는 부르짖었다는 말이 난무한 시대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야베스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가 기도를 한다. 내게 정말 복을 주십시오. 그리고 지경을 넓혀 주십시오.

야베스는 겐 족속의 이방인 출신으로 유다 지파에 속했다. 그가 유다 지파가 분배 받은 땅을 앞에 놓고 기도를 한다.

특히 역대기 기자는 이렇게 야베스의 기도를 소개한다. 야베스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기도하여 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란 표현은 언약적인 표현이다. 이스라엘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하나님 칭호이다. 야베스가 기도를 시작할 때 그 기도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근거해서 기도를 시작했다는 말이다.

언약의 하나님! 약속의 하나님!
제게 복을 주십시오.
그리고 저 약속한 기업의 땅을 주십시오.

저는 비록 연약하지만 이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주님이 주신 이 젖과 꿀이 흐르는 이 땅을 차지하도록 해 주십시오.

야베스는 그렇게 기도하고 그 땅을 얻었다. 그는 족보에 언급되지 않는 연약한 가문에 속한 자이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했다. 그리고 기도를 했다. 그리고 10절 끝에 보면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이렇게 기도 응답을 받은 야베스이다. 그래서 야베스는 자신의 이름을 유전할 수 있는 기업을 얻었다. 이렇게 얻은 기업을 야베스라 이름하고 거기에 자신의 가족과 종족이 살게 된다. 그렇다면 앞서 말한 2:55절의 지역 명칭 야베스와 4:9-10의 야베스란 인물의 연결이 좀 더 자연스럽게 진행이 된다.

여기서 야베스 기도에 대한 중심은 하나님께서 약속한 것을 따라서 기도했고 응답을 받은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한다. 다음에 이 기도의 더 넓은 측면을 다루어 보자.


# 글을 마치면서
야베스의 기도에 관심하면서 그동안 교회 역사가 잊고 있었던 새로운 어떤 기도가 등장한 것 같이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는 모두 동일한 가치와 질서를 가지고 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 앞에 서는 것이다. 나의 뜻을 하나님께 관철 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을 나의 뜻으로 삼고 내 뜻을 하나님의 약속 앞에 내려 놓는 것이다. 그 약속을 이루어야 하는 나의 처지, 나의 환경, 나의 삶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약속을 신뢰하고 맡기고 나아가는 것이 성경적인 기도이다. 여기에 야베스의 기도가 벗어나지 않는다.

모든 기도가 이런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것이다.

이세령  leesr6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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